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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Nov 23. 2024

결정 장애가 생겼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소한 것도 결정을 잘 못하고, 힘들어하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생활 전반에 걸쳐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어요.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고, 미루는 횟수가 빈번해지자 '안 되겠다! '싶어 나름의 훈련을 했는데요. 얼마 전 한국 여행을 하면서 미미하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9월 초였어요. 원데이 클래스에 사용할 소품을 정하려고 작업실에서 샘플 제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소품을 대하는 그룹이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2가지 버전으로 준비했는데요. 화사한 주홍빛 리스와 가을 느낌 나는 열매 리스였어요. 이 중 한 가지를 정해서 수업하는 분들도 고민하지 않고, 재료 준비도 수월하게 하려고 했어요. 근데 이게 뭐라고! 결정할 수가 없어 결국은 두 종류를 준비해 수업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결정 장애' 증상이 수시로 나타났습니다. 핸드폰을 바꾸는데, 무슨 기종으로 할지 몇 날 며칠을 망설였고, 남편과 오랜만에 외식을 하는데 메뉴를 정하지 못해 여러 번 간 곳을 또 갔습니다. 여행계획을 세우다가 장소 선정부터 시작해 수많은 옵션을 결정하느라 가기 전부터 기운이 빠졌고요.


예전에는 완벽한 성격 탓에 조금이라도 실수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젠 신중함을 넘어 '우유부단함'으로 그리고 '이런 거 하나도 결정 못 하나?'란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나이 탓까지 하면서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인터넷,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 수많은 정보 과부하 속에서 선택이 어렵고, 알게 모르게 결정 장애로 이어지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정보가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니 점점 결정하기가 어려워지고, 피로감도 쌓였어요. 어떤 때엔 리뷰가 상반되어 헷갈리기도 하고요. 


더 이상 정보에 휘두르지 않고, 결정 장애(햄릿증후군)를 극복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몇 가지를 다짐하고 실천했는데요. 


우선, 결정을 쉽게 하기 위해 선택할 환경을 최소화했어요. 

지난번 짧은 한국 여행에서도 적용했는데요. 해보고 싶은 많은 것 중에서 '문화 체험'으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쇼핑, 관광, 맛집 등....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한정된 시간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었어요.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까요. 쓸 수 있는 시간 중, '문화생활'을 체험하는 것으로 집중하니 좀 더 쉽게 가야 할 곳, 해야 할 것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예술의 전당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도 보고, 친구들과 '광화문 연가' 뮤지컬도 다녀왔습니다. 김현 문학관과 별마당 도서관도 실물 영접했어요. 요즘 핫하다는 퍼스널칼라 원데이 수업도 받고, 잠수교의 분수 쇼도 즐겼습니다. 확실히 가고 싶은 곳을 최소화하자 범위가 좁아져서 결정이 쉽더군요. 눈에 아른거리는 고터(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와 제평(제일평화시장)에서의 쇼핑은 양보해야 했지만요. 대신 짧은 시간에 다양한 한국의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아주 유익했답니다.      


다양한 문화체험



결정하기 위한 시간도 적절하게 제한하는 훈련도 했는데요.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물론 장기간 생각해야 하고 무 자르듯이 안 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소소한 결정은 고민하는 시간 대비 결과가 비례하지는 않았습니다. 적절하게 생각할 시간을 정하고 지키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더군요. 마치 학교 숙제도 기한이 있어야 집중하고, 원고도 마감 시간이 있듯이요.


그리고 '아니면 말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소심한 완벽주의자인 저도 이미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노심초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 비상계획인 PLAN B 정도는 세우겠지만, 대부분의 일상에 그런 경우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돌다리도 두드리면 간다"라던지, '심사숙고'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려고요. 설혹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다음에 다시 하면 되고, 그도 '아니면 말고'요.





"인생은 B와 D 사이에 있는 C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철학자인 장 펄 사르트르가 그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 남긴 글입니다. 인생이란 Birth(탄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요.   


우리는 태어나는 것도, 죽음도 선택권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삶 속에서 결정해야 할 수많은 선택만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라도 나름의 원칙을 정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스스로 내린 결정에도 자신감을 가져야겠어요. 모든 결정은 '나다운 나'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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