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일상이 무기력하고, 매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일도 최소화하고, 매주 3번씩 소품을 만들어 올리던 인스타도, 브런치 활동도 한 달여를 쉬었습니다. 물론 그사이에 한국을 다녀오느라 환경이 바뀐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의욕이 생기지 않아 지속할 수가 없었어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꾸준함으로 평생을 살아온 저 스스로도 이런 감정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무력감은 시간이 지나자 잠도 안 오고, 식욕도 없어지고, 매일 하던 산책도 다 귀찮아지는 우울증세로 나타났습니다. 계속 이렇게 생활하다가는 가족들까지 힘들게 할 것 같았어요. 정신을 가다듬고 뭐가 문제였는지? 마음을 들여다보니, 작은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최근에 그동안 글 쓴 것을 모아 여러 출판사에 투고한 적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키우고, 은퇴한 후 글을 쓰고, 소품을 만들며 새로운 삶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중 한 곳에서 "흥미로운 글이니, 좀 더 원고를 보내주면 좋겠다"라는 답이 왔어요. 웬일인가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유명 출판사여서 너무 기뻤습니다. 한국 여행이 예정되어 있던 차라 가기 전 2-3주를 원고에 집중하고 24편의 글을 추가로 보냈습니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안 되면 독립 출판을 할 생각이긴 했습니다.
원고도 보냈겠다! 마음도 비웠겠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뉴욕을 떠나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풀고, 한국에서의 일정을 컨펌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이멜을 확인했는데요. 하필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글이 2차 투고한 출판사에서 온 거절 통보였어요. 다정한 문장이었지만, 단호해서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어요. 조카의 작은 책상에 앉아 눈물을 찔끔 흘리며 한국 여행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마음 한편에 서운한 마음을 남겨둔 채, 애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지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는데요.
그사이에 꽁꽁 숨겨 두었던 감정이 다시 나타난 걸까요? '나같이 평범한 삶의 이야기가 뭐가 흥미롭겠어?, 어쭙잖은 글 쓴다고 남편 밥도 제대로 안 챙겨주고?, 몸과 마음 온전히 쏟은 시간이 아깝다!' 등등....투고 거절로 시작된 파장이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시차 적응'이라는 핑계로 1주일 여를 두문불출했는데요. 점점 흐트러진 모습에 이건 아니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무력감 탈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한국 여행 등 여러 변화로 한 달여 동안 쓰지 않았던 감사 일기를 펼쳤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루 중 가장 좋아했던 시간이었건만 처음 대하듯이 낯설었어요. 꿈을 가지고 의욕 있게 했던 일들이 냉정한 현실에 부딪히며 겪은 일들을 담담히 적었습니다. 글쓰기 포함해서 매사에 자신이 없고, 나이 듦에 대한 염려, 서운함을 쓰다 보니 글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그만하면 충분하게 잘하고 있다" 라고요.
매일 루틴과 함께 산책과 운동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구입한 예쁜 운동복을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뛰는데, 낙엽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렇게나 경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센트럴파크도 다녀왔습니다. 역시 몸을 많이 움직이고 신체 대사량을 높여야 혈액순환이 잘 되나 봅니다. 밤에 잠도 잘 오고,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했어요. 한국 가느라 중단했던 PT도 계속하려고 체육관에 재등록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작지만, 공적 • 사적 임무에 좀 더 의미를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50여 명이 있는 독서클럽 팀장의 임무를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책 목록을 정리하고, 리더들의 오프라인 모임도 주선했습니다. 매주 3번씩 인스타에 올리는 '소품 만들기'도 저만의 색깔을 좀 더 나타내려고 노력했는데요. 벌써 많은 팔로워에게서 "위로와 영감을 받는다"는 피드백을 받아 얼마나 용기가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보람이 있겠다!' 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 글을 쓰면서 조금 남아 있던 마음의 찌꺼기까지 정리했습니다. 결국 제 마음을 다스리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이더군요. 감사 일기를 쓰고, 운동을 하고, 맡겨진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다시 일상에 평안함이 왔습니다. 소심한 마음, 옹졸한 생각, 끊임없는 걱정은 일단 접고 그 자리를 여유 있는 마음, 너그러운 생각, 그리고 감사로 채워야겠습니다. 조금 길을 돌았지만, 이전에도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잘할 것임을 믿으면서요. 어수선한 집을 청소하니 깨끗해진 내 집처럼, 무력감도 시원하게 클리어!! 했습니다.
무력감 탈출을 위해 노력하던 중, 위안을 받은 기도문입니다.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도문 (Sereniti Prayer)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