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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Dec 14. 2024

뉴욕식물원에서 따뜻한 기억을 선물 받았다  

뉴 식물원에서 보낸 동화 같은 하루

뉴욕에는 연말이 되면, 다양한 연례행사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센트럴파크에서 스케이트 타기,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 구경, 라디오시티 뮤직홀....등은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인데요. 올해에는 도시의 화려함보다, 자연의 소박한 정서를 느끼고 싶어서 '뉴욕 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에서 하는 연말 기차 쇼(Holiday Train Show)에 다녀왔습니다.





뉴욕식물원 NYBG

1888년, 콜롬비아 대학의 지질학/식물학과 나다니엘 브리튼(Nathaniel L. Britton)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요. 뉴욕주 의회의 결의로 브롱스파크 부지를 수용했고, 1891년, 현재의 부지에 뉴욕식물원을 건립하게 됩니다. 당대의 대재벌인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밴더빌트, 금융왕 JP 모건이 매칭펀드 방식으로 거액을 기부했다고 해요.


그 후, 여러 차례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조성된 30만 평의 대지에는 50여 개의 주제 정원 (수선화 언덕, 라일락 컬렉션, 로즈가든 등)과 수목원, 그리고 전시 온실이 있는데요. 미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식물원으로 연간 백만 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수준 높은 정원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매해 연말에 하는 트레인 쇼입니다.  



트레인쇼 Holiday Train Show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트레인 쇼는 식물원 온실에 1.5km 길이의 미니어처 철로를 중심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양키 스타디움, 쿠퍼 유니온 등.... 뉴욕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180개의 건축물을 축소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는데요. 자연과 예술이 합해져 식물 건축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쿠퍼 유니온과 양키 스타디움



놀랐던 점은, 이 모형에 쓰인 모든 재료가 일 년간 식물원의 땅에 떨어진 것들이라고 해요. 나뭇가지나 나무껍질, 낙엽은 물론이고, 솔방울, 도토리, 계피 조각, 체리, 씨앗과 열매 등도 쓰이는데요. 이른 봄부터, 늦가을에 이르기까지 초록의 향연이 끝나면, 정원사들은 이런 재료들을 모으고, 연결하고 붙여서 건물을 완성합니다. 식물원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철도, 호수, 집, 학교, 건물 등을 만듭니다.   





건축물의 디자인과 정확성에도 감탄했는데요. 설치된 뉴욕의 랜드마크는 그냥 모양만 비슷하게 한 게 아니고, 정확한 비율과 크기를 반영하여 설계합니다. 이를 위해 건축가와 미니어처 전문가들이 실물 건축물의 설계도와 사진을 참고하여 축소비율을 결졍한다고 해요. 여러 작은 터널과 다리를 지나가는 트럭과 기차도 실제상황처럼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더군요.





그리고, 꼼꼼한 디테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 제작에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수십 명의 장인이 팀을 이루어 작업을 했다는데요. 그런 만큼 사소한 부분까지 섬세했어요. 건축물의 벽면은 나무껍질로, 지붕은 솔방울과 이끼로 장식했는데 아주 정교했습니다. 집 발코니, 센트럴파크의 보우 다리에 놓인 꽃과 다리의 문양까지 실제와 똑같아 신기했어요.




트레인 쇼를 보며, 창조적인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특별한 경험을 했는데요. 기차가 달리는 모습에서 이젠 반세기도 넘어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부모님은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딸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습니다. 엄마와 기차역에서 울면서 헤어지고, 고모 손을 잡고 탔던 기차, 엄마가 싸준 온기가 남아있던 찐 달걀을 먹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녔던 달달했던 시간도 소환했고요. 아쉬움, 설렘, 두근거림까지 함께 느껴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 행복한 얼굴을 하며 각자의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습니다.


시국도 어수선하고, 뭔가 위로받고 싶은 요즈음,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잠시나마 순수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어쩌면 이런 '따뜻한 기억을 선물하는 것'이 작품을 만든 작가분들의 바람일지도 모르겠어요. 바깥 날씨는 매서웠지만, 추억을 선물로 받은 따스한 하루였습니다.




 따스한 기억을 살려 만든 이끼 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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