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서전 2
『행복한 가드너씨』 뉴욕에서 은퇴 후 새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무서웠다. 다정하기보다는 엄격했다. 자식들 뒷바라지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철저했고, 엄마의 생각과 조금만 빗나가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향한 집념과 애착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더 심해졌다. 무슨 옷을 입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 대상이었다.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이야." 알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모든 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빨리 결혼을 결심한 것도 엄마에게서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지칠 줄 모르는 엄마의 에너지가 숨 막히듯 답답했다.
그런데 자서전을 대필하는 동안, 자주 목이 메어왔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얼굴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19화
엄마의 어린 시절은 겉보기에는 유복한 삶을 살았지만, 그 안에는 텅 빈 슬픔이 있었다. 엄마는 세 살 때 친엄마를 여의었다. 육 남매 중 막내였던 데다 영특해서 유난히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세 살배기 아이가 매일 엄마를 찾으니 열 살 조금 넘은 큰 언니가 대신 엄마 노릇을 했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머리숱이 많아지라고 매일 머리를 빗겨주었다.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왔다. 머리를 다정하게 빗겨주는 엄마의 손길. 그 따뜻함을 엄마는 평생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우리들의 사진을 보면 흐트러진 모습이 없다. 머리카락은 언제나 단정했고, 늘 예쁜 옷과 모자, 심지어 잠옷까지 다리미로 다려 입혔다. 엄마는 채워지지 못한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내며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셨을까.
결혼 후, 어렵게 첫딸인 나를 출산하고 엄마는 다짐했다고 한다. "내 딸만큼은 그런 슬픔을 겪게 하지 않겠다"고. 엄마는 바쁜 가게 일과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는 재미에 힘든 줄을 몰랐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낳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하루 종일 일하다가도 아이들만 보면 기운이 나서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또 했다. 간절히 꿈꾸던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막내동생이 한 살, 내가 여섯 살 되던 해였다. 행복하던 어느 날, 엄마는 다시 삶의 기로에 섰다. 머리가 아프고, 어질어질해 그대로 쓰러졌는데 정신이 드니 병원이었다. 의사가 뇌암 진단을 하며 "위중하니,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다.
친정과 시댁 식구들, 그리고 어린 삼남매가 누워있는 엄마를 빙 둘러앉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의 눈에는 젖먹이 막내와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만 들어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아이들도 엄마 없이 자라겠구나"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도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울며 불며 매달렸다. 엄마의 기도가 상달되었을까.
엄마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힘든 치료 과정을 오로지 삼남매를 생각하며 이겨냈다. 사진을 베개 옆에 두고 보고 또 보면서 버텼다고 한다. 그때 엄마 나이 스물아홉. 젊은 엄마와 고만고만한 삼남매는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이야기를 옮겨 적는 나 역시 가슴이 저려 한동안은 글을 이어 쓰지 못했다. 자세히 듣고 쓰며 엄마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도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결핍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지켜낸 삶의 에너지였다. 자서전을 대필하면서 오래 묻어둔 물음을 엄마와 함께 풀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알았다. 과한 집착조차도 결국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음을.
딸은 자서전의 에필로그 "할머니의 빛나는 이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할머니를 떠올리며 생각나는 단어를 딱 한 개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사랑'을 선택할 것이다. 때로는 사랑의 크기나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달라서 오해하기도 하고. 오해가 깊어져 아픔과 상처가 될지라도 또 사랑을 하시는 분이다. 모든 게 무너지는 절망의 순간에도 다시 또 일어나 사랑하신다. GRACE YOO
구순이 지난 엄마는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가 않다. 자주 아프시고, 기력도 없으시다. 자식들을 향한 그 뜨거운 관심도 이제는 희미해졌다. 그런 엄마를 보며 "오늘은 어디 가냐, 무슨 옷을 입었냐?" 묻던 성가신 목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은 꽃이 되어 내 삶에 뿌리내렸다. 이제는 무슨 상황이 오더라도 돌려드릴 차례다. 사랑이란 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