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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Apr 06. 2024

무작정 나서서 돌아다닌 벚꽃길

일찍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대충 걸치고 무작정 벚꽃을 보러 나갔다. 거의 다 지고 있을지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무작정 집을 나서 뒷산의 벚꽃길을 걸었다. 왕복으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길이었다는 걸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사는 곳과 같은 아파트에 할머니와 같이 사시던 큰아버지는 벚꽃이 피기도 전에 응급실에 실려가셨고 마지막일지도 몰라서 가족들과 다 같이 병원에 방문해서 마지막 말씀도 드리고 손도 한 번 더 잡아드리고 한참 꼭 잡아주셨던 손이 기억이 난다. 눈은 못 뜨셨지만 그날 작게 물 달라는듯한 단발적인 말소리를 다 같이 들었고 다음날에 고모가 방문하셨을 때는 눈도 조금 뜨셨다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아무 일없이 시일이 지났지만 며칠 전 예정되어 있던 일은 일어났고 오늘은 화장이 있는 날이었다.



장례식이나 빈소는 없다. 결혼을 하지 않으신 혼자이시고 올 사람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었다. 화장은 시간이 4시간 이상 걸리는듯하여 할머니와 같이 나는 집 아래층에 있는 할머니 댁에 있게 되었고 나도 그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전에 이미 마지막으로 뵈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마음이 나았다.



오늘은 흐드러지게 벚꽃이 기억보다 더 활짝 피었고 날씨는 좋았지만 선선하고 약간 서늘했다. 가시는 길에 벚꽃 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살짝 들었다. 벚꽃 좋아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던 길에 조금 발이 삐끗하면서 넘어졌는데 제대로 넘어진 거에 비해서 생각보다 별로 안 까졌다.


최근에 뵈었던 모습과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은 이상하게 기억에 거의 안 남고 큰아버지를 떠올리면 예전의 정정하시고 기운차신 모습이나 점잖게 웃으시는 모습, 나중에 하셨던 밴드에 대해 가족모임에서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아른거리듯 떠올랐다. 좋았던 모습으로 모습이 떠올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팠던 몸에서 벗어나셨으니 마지막에 드렸던 말씀처럼 평안하시고 자유로우시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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