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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Mar 26. 2024

뭔가 바뀐 부분을 정리해 보자면

(*화요일 연재로 변경되었습니다.)


책을 반절 읽었다. 간단하게 산책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30분 읽고 집에 와서 인상 깊었던 문단 한두 개 정리하면 작업이 끝나는데 문단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책이 복습이 돼서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보면 3일이면 반 정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웠다.




아이패드로 쉽게 그림 그리는 걸 유튜브 영상으로 배우고 있다. 나도 그림을 그린 지 오래되었지만 어렵게 그리는 편이고 실력이 멈춰있는 듯하다. 그래서 방치해 두고 글만 쓰다가 가끔씩 그렸지만 이제는 그림도 본격적으로 그리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림도 매일 그리려면 어떻게 하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무 부담 없이 매일 그리고 올리려면 쉽게 그리는 방법을 더 찾아봐야 했다. 그리고 내가 그릴 수 있는 기대치를 조금 낮춰야 했다. 부담이 가고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면 내가 정한 난이도가 나에 한해서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영상에서 그랬다. 너무 쉬우면 지루하고 재미없기 때문에 하지 않고 너무 어려우면 엄두가 나지 않고 시간이 너무 드니까 안 하게 된다고. 자기한테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은 보통의 적정 난이도를 자기가 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 내가 원하는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더 쉬운 방법은 어디 없나,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확연히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즐겨했던 거라도 나한테 좋지 않은 건 어쩐지 손이 가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이 기점이었냐면 내가 나한테 진심으로 사과한 날을 기점으로 확 바뀌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응어리진 마음이 진심 어린 사과 한 번으로 거의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그 글을 적을 당시만 해도 앞으로도 몇 번씩 되돌아올 감정으로 풀릴 때까지 사과를 하고 해야 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과를 받아들이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응어리졌던 내가 몰라준 마음일 테니. 거듭 미안하다 말하고 잘 달래야겠거니 했다. 그러니까 이건 내면의 정화작업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찌꺼기처럼 잔재한 감정이 몸 여기저기에 붙어있긴 하니까, 그래도 많이 마음속이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다.




몸에 좋지 않지만 좋아하니까 그냥 마시던 인스턴트커피보다 차를 조금 더 마시게 되었고 밥을 그냥 입맛이 없어서 안 먹거나 라면을 자주 끓여 먹었는데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내 몸이 안 좋아져도 지금 당장은 좋으니까 했던 일들이 일정 부분 이상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가 억지로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그동안 나를 많이 싫어했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빨리 죽어.’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웃으면서 네가 미우니까 잘 안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가졌었나, 되짚어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살아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해주면 나도 용서해 주고 다 잊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미워도 그 대상이 정말로 안 좋은 일을 당한다면 마음이 좋지 않을 거란 걸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나도 다 잊어버리게.




그렇게 생각해 왔어도 대상을 몰랐다. 막연히 나한테 괴로움과 트라우마를 남겼던 사람들이나 상처를 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아니었다. 그들이 나한테 사과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나도 별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기대감이 하나도 없으니까 아니었다.




그러면 가까운 사람들인가? 가까울수록 조금 함부로 대하기 마련이고 싸우게 되면 서로 막말을 하게 되거나 오히려 상처를 주고받을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역시 그들한테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런 기대감이 안 생겼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을 나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과를 해봤을 때 알 수 있었던 건 ‘역시 나는 나를 용서하고 싶었구나.’했다. 우리가 서로 어쩔 수 없었구나, 그걸 이해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는 걸 알겠다. 그럴 때마다 이제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기혐오에서 이제야 진짜로 빠져나와지는 것 같았고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제야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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