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랴 Jun 11. 2024

뭔가를 매일 하면서 들었던 생각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 느꼈다.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더라도 사람은 약속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날 아플 수도 있으며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꺾이기도 하니 이렇게 변수가 생각보다 많아서 습관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어찌어찌하니 이전에 메모해 뒀던 조각 글이나 자료를 백업했던 걸 가져온다든지 정말 대충대충 작고 쉽게 많이 끄적였던 그림을 끌어서 쓰다 보니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아직 글이 자리 잡지 않아서 그림까지 챙기기는 힘들었지만 매일 그리지는 못해도 자주 그리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까지 편법을 썼던 적이 잘 없었다. 퍽 정직하고도 미련스럽게 살았으니까. 내가 한 만큼 받아 가지 않으면 무슨 죄라도 지은 듯이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받지 말았어야 할걸 가져온 것 같은 부채감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뭔가를 받았으면 어떤 식으로든 돌려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썩 내 성에 차진 않았으나 아등바등 노력한 시간이었고, 사랑받고 기대를 받았던 만큼, 나를 좋게 봐주는 분들께 뭐라도 해주고 부응하려고 더욱 착하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더 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주기 위해 잘 되려고 노력했던 인생이었다. 그래서인가 뭔가를 기대받는다는 게, 뭔가가 내 손에 주어지는 게 항상 부담이 됐었나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참고 기다리는 건 많이 해봤으니 이제 조금 다르게 살아볼 때도 된 거 같단 생각이었다. 괜찮은 척도 적당히 그만하고 아플 때는 감추지 말고 아프다고 제때 말하고 무서우면 무섭고 힘들면 힘들다. 제때 말해야겠다고 막 결심하던 차에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주기적으로 쉬어야겠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여태 말해줬던 것처럼 나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줘야겠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노력하고 참고 기다리는 건 뭐였을까? 그냥 좀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하지 말고 좀 쉬는 거. 그건 이상하게도 너무 쉽게 답이 튀어나왔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하겠지만 이럴수록 조급해하지 말고 꼼꼼하게 찬찬히 자신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내가 감정적이 될수록 이성적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좋았다. 그럼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까지 수고하고도 아직도 걷는 게 아니라 마구 달리고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할 거다. 물론 도중에 넘어졌다면 마음이야 급하겠지만 그럴 때야말로 자신을 위해 감수하고 참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닦달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주기적으로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다시 할 맘이 들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지.




어차피 나는 쉴 때도 머리로는 계획을 구상하고 수정할 생각밖에 안 들기 때문에 쉬는 것도 딱히 쉬는 게 아니었다. 지금도 이래도 되나, 너무 게으른 거 아닌가 하면서 돌아보면 나는 그날 대청소를 했고 그날에 해내야 할 건 다 했는데. 이쯤 되면 나 자신에 대한 취급이 그동안 좀 너무하지 않았나? 재평가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항상 다리가 다쳐도 바로 일으켜서 절뚝거리면서 다음 관문을 향해 갔던 것만 같다. 문득 스스로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면 그럴 시간 없다고 하면서. 그러다 보니 아프다는 말도 스스로에게조차 잘하지 않게 됐었다. 어차피 들어주지도 않고 소용없는 말을 삼키고 절뚝이면서도 어차피 기어서라도 가야만 하는 거였으니까. 다만 어느 순간인가 눈물이 한번 터지면 잘 안 멈추기 시작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바로 일으켜 세워져야 했을까 싶기도 하고. 바로 안 갔으면 내가 가긴 갔을까 싶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잘 넘어지는 돌이 많고 험한 경사진 길이 아니라 꽃길까진 아니더라도 흙이 고른 똑바로만 가면 넘어지지 않을 길을 나는 찾아서 가고 싶었다.

이전 22화 과부하가 와서 버튼이 들어먹지 않을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