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식탁 위의 수저는 유난히 반짝였다. 나는 조용히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남편에게 건넸다.
“병원에 다녀왔어.”
그는 벌떡 일어나 나를 안았다.
“고마워.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야.”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나는 어딘가 멀리 있었다. 입 안 가득, 말하지 못한 질문들이 떠다녔다. 당신에겐 우리의 아이는 누구고, 저 방에서 게임만 하고 지내는 저 아이는 누구냐고. 하지만 나는 끝까지 말을 토해내지 못하고 꿀꺽, 고인 침과 함께 삼켜버렸다.
“시아는, 아마 알고 있을 거야. 아침에 이걸 봤거든.”
나는 임테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읊조렸다. 남편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봤는데, 아마야?”
“말은 안 해 줬거든. 그냥 엉뚱한 행동을 하더라고. 내 배를 만지려고 했어.”
나는 그 말을 하는 내내 내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뿌리쳤어.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
그 순간,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주혜야.”
나는 조용히 그의 눈동자를 맞받았다.
“응?”
“사실,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시아는 함묵증이야.”
말이 얼어붙는 느낌에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을 들어 의문을 나타냈다. 남편은 습관처럼 자기 머리를 흩트리곤 대답을 이어갔다.
“그날부터 그랬지.”
“그날?”
남편은 머리를 쓸어내리다, 갑자기 자기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목구멍 깊숙이 박혀 있던 돌덩이를 꺼내듯 말했다.
“시아 엄마, 애 앞에서 스스로 목을 맸어.”
말은 흘러나왔지만, 시간은 멈춰 있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점점이 선명해지는 퍼즐 조각들. 시아의 고요, 시아의 침묵, 그리고 말 없는 손짓들이 떠오르며 혼란에 갇혔다.
“미안해, 주혜야. 너한테 이 얘기는 안 하고 싶었어. 새출발이니까. 그런데….”
남편은 고개를 숙였다.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아니, 겨우 시작점에 섰을 뿐이었다.
시아는 단순히 게임에 빠진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애는 ‘세상’을 떠나 탈주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외면했던 그 애는, 온몸으로 외치는 중이었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부서진 세계를. 그리고 나는, 그 손을 튕겨냈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
집안의 결정으로 맺어진 사이였지만, 우리는 꽤 괜찮은 부부였다고 믿었어. 아니,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어.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었지. 하지만 돌아보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어.
나는 가정에 충실했다고 믿었어.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살았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지. 그녀 역시 그런 나를 믿어줄 거라 확신했어. 하지만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꿈꾸는 가정’이 있었던 걸까. 어찌 됐든 결혼은 나와 했고, 그 꿈은 나와 함께 꾸는 것이어야만 했는데, 정작 그녀는 한 번도 내 어깨에 기대지 않았어.
웃음도 있었고, 기쁨도 분명히 있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너무 반듯한 풍경이었어. 누군가 그림을 그리듯 조심스럽게 배치한 행복. 나는 그 풍경 속을 걷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그녀는 이미 저만치 그림 밖에 서 있었지.
그녀가 점점 쇠약해졌을 때, 나는 다가가려 했어. 그럴수록 그녀는 더 멀어졌고 나는 그림자의 팔을 붙잡는 기분이었어.
그 무렵 그녀는 조울증을 앓기 시작했어. 아니, 어쩌면 훨씬 전부터였을지도. 나는 그저 외면했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어. 내 방식대로 감싸고 그러면 언젠가는 시간이, 사랑이, ‘의무’가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라 생각했지.
어리석었지. 그런 그녀가 다시 밝아졌어. 시아가 태어난 순간이었어. 말이 많아졌고, 웃음도 진짜처럼 보였어. 나는 그걸 내 ‘노력’의 결실이라 믿었어. 이제 괜찮다고, 끝났다고, 구원받았다고.
그 아이에게 우리가 어떤 부모였는지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어.
*
시아는 오래전부터 말을 멈췄다, 그건 고장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세상이 내민 말의 줄기를 뿌리째 거부하며, 그 애는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파란빛으로 숨 쉬는 유리창 너머, 시아는 거기 존재했다.
그 안에서만은 누구도 시아를 밀어내지 않았다. 이름도, 과거도, 잘못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현실은 불청객이었다. 매일 문을 두드리지만, 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닌, 그 애가 필요로 하는 세계 속에서만 시아는 살아 있었다.
“방 정리 좀 해야 하지 않을까?”
말이 문턱을 넘기도 전에 시아는 소리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 앞까지 다가와 살짝 열린 문을 밀었다. 문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닫혔다. ‘쾅’이 아닌, ‘딱’. 경계선이 하나, 분명하게 그어졌다.
나는 그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뱃속 아이가 조용히 뒤척였다. 시아에게 이 소식을 직접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해도 아무 의미 없을까.
“너랑 가까워지고 싶어.”
들리지 않을 말을 중얼거리다 돌아섰을 때, 문 너머에서 짧은 전자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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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의 세계가 응답했다. 나는, 거절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