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문명 앞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
하늘은 가까이 있는 듯 멀리 있으며
푸름은 곁에 있으나 더 먼 곳에 있네
빗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적시지만
하얀 손님은
콘크리트 틈새를 차갑게 메우네
젖은 길 위로 비는 흘러내리고
쌓인 눈은 묵묵히 그 위에 겹쳐 앉아
따스한 숨결 위에
차가운 입김이 얼어붙네
고개 숙인 곡식도 인사를 하건만
인색한 회색 낫은 거침없이 베어버리네
불 켜진 창문 수백 개가 떠 있어도
공허한 자의 밤하늘엔 별이 없으며
힘없는 자의 손아귀엔
재조차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