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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나 Sep 29. 2024

너와 나 우리의 '학습둥지 프로젝트'(6)

엄마는 구원자입니다.

겨울방학 중에 영어캠프를 하려면 일주일 간 종일 토록  공부할 장소가 필요하다.

그냥 영어 캠프를 포기하면 안 될까?


선생님 말씀은 이러하다.

몰입식 교육의 힘.

일만 시간의 법칙이란 개념이 있다.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수련의 시간은 10,000시간

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일 6시간씩 5년가량을 수행하면 그 분야에 있어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인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린 친구들은 절대적인 영어공부 시간이 시골 아이들이라 부족하니 아무리 버겁더라고 용기를 내서 아이들을 위한 장소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매일매일 하루 예닐곱 시간을 영어만 배울 순 없는 노릇이지만 방학 기간 일주일 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종일토록 영어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율동도 배우며 시간을 보내보자는 건데 그 뜻이야 좋지만 도서관 빌런 20명을 이끌고 '앞으로 진격하라'라고 외치지도 못하고 그저 매주 도서관에 찾아가 '오늘도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연발하는 힘없는 애 엄마 입장에선 어디서 어떻게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할지 시작도 전에 이미 질려버릴 참이다.


업무 중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았다.

오늘도 깨발랄 신규 아가씨 혜민이는 즐거운 표정이다.

나: " 혜민아  12월 중에 제천이랑 연계해서 일주일 정도 단양에서 영어 캠프를 열자고 외삼촌이 말씀하신다."


혜민: "이욜~ 멋진 대요~"


나: " 도대체 뭐가 멋지단 거냐?"


혜민: "뭔가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느낌? 아이들도 새로운 걸 접할 수 있고 방학 때 놀이 삼아 재밌게 배우면 애들도 좋지 않을까요?"


나: " 좋기야 좋지. 근데 일주일간 영어 캠프를 하려면 새로운 장소를 구해야 하잖아. 심지어 그 일주일을 통으로 빌려야 한다고... 우리가 원한다고 장소가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지금 수업 중인 도서관 강의실도 애들이 소란스러워서 매번 내가 면목이 없단 말이야."


혜민: "아...  좀 힘들긴 하겠네요.. 하지만 주사님이 어떻게든 구해야죠!"


나: "어떻게든 구하라고?.."


혜민: " 네.. 주사님이 어떻게든 구해야죠. 주사님은 구할 수 있어요! 저번에도 구했잖아요? 주사님은 엄마잖아요. 엄마니까 구해야죠!! 엄마니까 할 수 있죠! 파이팅!"




밑도 끝도 없는 엄마니까 구하라니.. 선문답 같은 저 답변이 응원이자 부담이자 힘으로 다가온다. 이러나저러나 언젠간 닥치고 봐야 할 일이니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 난 엄마니까.

이 세상 구성원이 된 이래로 나에게 부여된 몇 가지 명칭과 역할이 있다. 울 엄마의 딸부터 학생, 아가씨, 아줌마, 공무원 그리고  두 자녀의 엄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여러 직함 중 엄마라는 포지션은 꽤나 독특함이 있다. 아가씨 시절과 비교해 봐도 엄마란 존재는 우선 부끄러움을 모르는 용감한 캐릭터다. 꽃처럼 예쁘고 수줍던 시절엔 누군가 날 아는 것조차 싫어 한 걸음 물러나기 바빴는데 이젠 어디서 그런 뻔뻔함과 용맹스러움이 나오는지 내 자식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사인볼트 보다 더 빨리 달려 나갈 수 있는 순발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맛있는 걸 보든 예쁜 걸 보든 모든 것이 내 새끼에게 먹여주고 싶고 걸쳐주고 싶은 우주적인 이타심을 가진 생명체가 되어 버렸으며, 내 자식의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서야 울 엄마가 밥때마다 하던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만큼  듣기 좋은 소리가 없다는 말이 참 말이었구나 그 뜻을 이해하는 공감능력까지 생겼다. 이 처럼 아주 복잡하고 용맹스럽고 스피드 한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몰려왔다. 이미 자존심이야 우주로 날려버리겠다 결심을 했으니 상대가 요청을 거절한다면 알았다 답하고 넘기면 그만인 것이고 장소를 구할 때까지 여기저기 힘닿는 한 알아보면 되고 그것도 아니면 우리 집 방구석에서라도 하면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군청 문화예술과 과장님을 만나러 간다.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내 심장도 똑똑똑 덜컹 내린다.


나 :" 과장님 안녕하셨어요? 여러 모로 살펴주셔서 아이들과 함께 영어공부를 잘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단양에서 영어 캠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저희가 장소를 못 구해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과장님: "시설을 잘 사용하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누리 도서관에 강의실이 하나밖에 없고 다른 프로그램들도 운영되다 보니 이번은 좀 힘들 거 같아요. 그리고 2월 중순부턴 4월에 올누림 개관준비가 시작돼서 도서관이 굉장히 어수선해질 거예요. 혹시 미래전략과 쪽 평생학습과 관련된 곳에 문의를 해 볼래요? 그쪽도 교육과 관련된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니 확인을 한 번 해보세요."


그렇다... 도서관은 우리만 사용하는 곳이 아니지... 내가 아무리 12년 차 공무원이라 해도 나 역시 민원을 요청하는 입장이 되면 똑같은 민원인의 위치에 서게 된다. 심지어 동종 업종 종사자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노고와 고단함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민원으로서 무언가를 요청하는 상황에 놓이고 보니 내 부탁이 그 들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괜스레 미안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엄마인 것을.


두 번째로 미래전략과 과장님을 만나러 가야겠다. 똑똑똑 하아.. 심호흡도 한 번 하고 문소리에 맞춰 똑똑똑 내 심장은 두 번째 덜컹하고 내려앉는다.


나:  "과장님 안녕하셨어요? 요즘 저희가 단양에 6~8세 아이들을 위해 영어공부를 다누리 도서관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있어 12월 중 영어캠프를 좀 했으면 싶은데 도움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일주일 간 아이들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모여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데 구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사실 내가 미래전략과를 돌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래전략과 안 과장님과 조금 친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초년생 시절 잠시나마 모시던 호랑이 같지만 소녀처럼 귀여운 장님이시다. 안 과장님도 장성한 두 자녀를 둔 엄마이고 생활인이었다.


안 과장님: "평생교육팀장! 혹시 우리 쪽에 여유가 있는 장소가 있을까? 와서 얘기 좀 해보자."


셋이 차 한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길 좀 나눠도 이미  다른 수업을 위해 모든 장소가 풀가동 중이라 연말에 장소가 있을 리 만무하다가 결론이었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는지 과장님이 팀장을 보내고 따로 잠시 얘기를 붙이신다.

안 과장님: " 어윤재 선생님이 가르치신다고? 선생님 참 대단하시다. 우리 아들들도 조금 배웠었어. 근데 말이야 내가 이제 이 나이가 돼서 돌아보니까 그렇더라 공부를 많이 한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 첫째는 내가 공부를 참 많이 시켰었어. 근데 둘째는 첫째를 키우다 보니 여유가 생겼던 건지 그만큼은 안 시켰거든. 장성하고 보니까 각자 개성대로 컸지만 둘째가 사회성도 더 좋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도 더 잘 해내더라고. 그렇다고 너한테 공부를 적당히 시키란 의미로 말하는 건 아니야. 엄마니까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걸 나도 아니까 비록 이번엔 뭔가 방법을 찾기 어려워 보여도 분명 방법이 있을 테니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말고 이 것 저 것 하고 싶은 걸 더  찾아봐. 도와주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구나. 그래도 너 참 대단하다. "


코 끝이 시큰하다. 빈손으로 터덜터덜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오랫동안 엄마였던 과장님께 동지로서 들은 응원 한 마디가 내 빈손 위에 놓인 꽃처럼 위로가 된다.

그만둘까 보다.

그 깟영어 캠프 안 해도 그만이지.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매주 두 시간씩 이미 배우고 있으니 다음 기회를 차근히 준비해서 내년 여름에라도 캠프를 열어주면 되지 않겠어? 이렇게 우울해하고 눈물 흘릴 시간에 아이들 프린트물이라도 챙기고 좋은 정보나 더 찾아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엄마라고 모든 걸 해낼 순 없잖아? 내가 슈퍼우먼도 아니고 말이야.


그날 오후 나는 안 과장님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 희나야 교육장님께 혹시나 하고 문의를 들여봤다. 학교는 방학이라 교실 자체를 열어주는 건 힘들 거 같고 교육청에서 관할하는 상진도서관을 일주일간 이용할 수 있게 말씀을 해 주시겠다는구나. 이번에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아주 근사하게 다시 지었어. 너무 예쁘더라. 잘됐네... 엄마는 다 할 수 있더라고. 엄마니까 없던 용기도 나잖니?  연락 한 번 취해보렴. 그럼 우리 또 만나자꾸나"


수화기를 들고 그 자리에서 눈물이 뚝.


나는 엄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이들은 엄마가 있다. 엄마는 엄마이기에 엄마를 안다. 세상 엄마들이 모든 아이를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고맙습니다.  생활인이자 구원자이자 엄마인 안 과장님!


엄마는 오늘도 힘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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