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희나 Sep 29. 2024

너와 나 우리의 '학습둥지 프로젝트'(7)

선녀와 함께한 영어캠프

단양교육도서관은 내가 어린 시절 자주 가던 장소이다. 상진초등학교 뒤편에 낡은 도서관이 하나 있다. 지금은 아주 예쁘게 리모델링이 됐으니 도서관 하나가 있었다가 맞겠다. 교육청에서 관할하는 도서관이란 걸 이번에 알게 됐는데 저 낡은 도서관이 과연 제대로 수리가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날려버릴 정도로 멋지게 새 단장을 마쳤다.

'이곳에서 첫 캠프를 할 수 있단 말이지?'

도서관 2층으로 올라간다. 관리 사무실은 그곳에 있었다. 처음 뵙는 직원과 통성명을 하고 그 간의 간략한 사정을 설명했다. 관장님께 내용은 전달받았으니 캠프 장소 관련 협조 공문 하나만 부탁한다 요청하신다. 이야기를 정리하고 돌아셨다. 2층엔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소회의실 두 곳과 대회의실 한 곳이 있었다.  아무래도 큰 강의실을 미리 예약해 놓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하리라. 몇 명의 아이들이 이번 캠프에 동참할 진 몰라도 제천 친구들까지 같이 배워야 한다면 큰 강의실을 선점하는 것이 운영 면에선 여유가 있으리라 판단됐다.




선생님께서 제천 쪽에서 예정된 프로그램 안내문을 보내주셨다.


청풍 영어 몰입 교육캠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1차 교육

1월 22일부터  1월 26일까지 - 2차 교육

1월  29일부터  2월 2일까지 - 3차 교육(단양에서 )

최소한의 이탈을 막기 위한 참가비 5만 원은 원서교재 1권과 프린트물로 제공 예정.

이후 참가비는 걷지 않고 돌려주었지만 참가비의 첫 의도는 이탈을 막기 위한 화폐적 부담이었다.


단양에서 마지막 한 주를 책임지기 위해선 함께 동참할 아이들을 모아야 한다.

현재 함께 수업하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동참한다면 충분히 채워질 거라 믿으며  기존 아이들 외에 추가로 너무 많은 아이들이 신청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려면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까지 홍보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오만한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땐 어떤 부모도 2월 엄동설한에 종일토록  미취학 아이를 교육이란 이름 하에 장시간 앉혀둔다는데 동의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부모로서 당연한 판단이다. 아침마다 일터로 뛰어가 치열한 전쟁터에서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나와 우리와 닮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보다 오늘 하루 무탈히 보낸 뒤 따뜻한 저녁 한 끼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족으로서 가장 행복한 마무리인 것을 나는 간과한 것이다. 영어캠프가 작은 시골마을에 너무도 필요하고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나만의 판단으로 다양한 가정에 다양한 부모의 의견을 고려하지 못한 내 오만함의 결과물로 생각 외로 저조한 신청서를 받아 들어야 했다.


추운 겨울 낯선 장소에서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 영어를 종일토록 배울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많아진 내 생각보다  한 템포 빠른 내 무모함이 아니었던가. 이제와 모든 것을 접기엔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기존에 함께 하는 아이들 조차 캠프 참여에 난색을 표했으니 첫 캠프의 부족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선 결국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공략해야 다.

어린이집 원장님과 아들이 다니는 반 담임선생님께 이번 캠프의 취지를 설명해야만 했다.

3주 차는  상진에 위치한 단양교육도서관에서 일주일 간 영어수업을 시작하니 관심 있는 엄마들을 위해 신청서를 아이들 편으로 부탁드린다 전했다.

인사를 꾸벅하고 나오는 길에 원장님이 따라 나오신다.


원장님:" 재현어머님 종일토록 수업하면 아이들 점심은 어쩌실 생각이세요?"


나: " 우선 참석하기로 한 엄마들끼린 각자 도시락을 싸거나 아니면 점심시간에 잠깐 집에 다녀오는 게 어떨까 얘길 나눴습니다."


원장님: " 많이 번거롭지 않으실까요? 아이들 공부도 좋지만 엄마들이 번거로우면 참석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불편하지 않으시면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공부를 하는 건 어떨까요?"


나: " 그럼 감사하긴 하지만... 여기 어린이집 외에도 유치원 친구도 몇 명이 있어요. 그 친구들 때문에 그러긴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원장님: " 그쪽 친구들도 같이 밥 먹는 건 어떨까요? 같은 어린이집이 아니라도 모두 예쁜 친구들이고 조금 더 준비해서 아이들과 같이 나눠먹으면 됩니다. 대신에 저도 어머님께 제안 하나 드려도 될까요? 캠프하는 주에 우리 어린이 집 6세 아이들도 1시간만 같이 배워볼 수 있을까요?"


나: " 6세 아이들이요?" 선생님께 한 번 여쭤볼게요."


 원장선생님은 우리에게 함께 하고 싶은 의지를 전해주셨다. 어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기꺼이 내어주신다니 당신도 도움이 된다면 함께 하시겠다 하신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이동하기엔 번거로우니 선생님이 직접 이동을 하시겠다 결정하셨다.


"그럼 도서관에 있을 아이들은요? "


" 아, 우리 집 둘째 아들이 있어요. 제대하고 집에 와 있는데 우리 집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나랑 같이 영어캠프하면 같이 동참하고 돕고 그랬어요. 아들이랑 둘이 병행해서 수업하면 됩니다."




어린이집을 통해 배포된 신청서가 도착했다. 첫 캠프를 같이 하기로 한 아이는 모두 여덟. 초창기 다섯 아이를 빼곤 세 명의 아이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여덟 아이의 엄마들은 시간을 나눠 아이들 인솔을 맡았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하루 정도 휴가를 얻어 오전 오후 아이들 이동을 담당하고  점심 식사를 어린이집에서 먹을 수 있게 루트를 정리했다. 막상 캠프를 시작한 이후엔 유치원 친구들은 따로 식사를 하겠단 의사를 밝혀 원장님의 자상한 배려가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6세 아이들도 처음으로 영어 수업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에 6세 아이를 둔 부모이자 다른 부서에 근무 중인 나예 엄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 언니, 우리 나예가 이번에 영어를 배웠잖아요. 근데요, 그때 오신 선생님이 누구세요? 어떤 언니가 왔대요. 그 수업 일주일 듣고 와선 집에서 자꾸 울어요. 그때 온 언니가 너무 보고 싶대요. 그때 배운 영어가 다시 하고 싶대요. 그 수업 또 언제 해요?"


아마 그때 선생님이 같은 시간 병행 수업이 힘들어 가르치던 제자이자 함께 공부 중인 고등학교 학생을 도우미 삼아 어린이집 수업을 들어가신 걸로 기억한다. 그 아이가 예쁜 6세 꼬마들과 놀이도 하고 아이들을 살뜰히 챙긴 모양이다. 모든 일이 헛되지만은 않았다. 한 겨울 오전 오후 교류도 없던 엄마들과 품앗이 인솔을 하고 말썽쟁이들 소음이 걱정스러워 교실에서 함께 감시를 하고 때 맞춰 따뜻한 밥 한 끼를 원장님이 제공했다. 작고 따뜻한 시골 마을엔 엄마와 아이들과 퇴직한 과학 선생님과 어린이집 원장님까지 함께 십시일반 내 아이와 모두의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길러냈다.


일주일간의 수업은 글쎄.. 이 녀석들이 과연 무엇을 제대로 배우긴 한 건지, 사실 확신은 없다.

그러나 처음 영어를 가르쳐야겠다 결심한 순간의 나는 이제 다른 포커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영어보단 우리 마을 각각의 아이들이 마을 구성원으로 대우받고 행복해지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값진 경험을 위해 엄마와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일주일이었다.


어설픈 영어 캠프가 막을 내린 뒤 단양 어린이집 원장님이 나에게 제안하나를 하셨다.

" 재현어머니 우리 어린이집 친구들도 내년부턴 어선생님과 함께 어린이집 정규 프로그램으로 영어를 같이 배워보면 어떨까요? 이번에 일주일 영어를 배워봤잖아요. 제가 엄마들에게 개별적으로 영어를 배운 뒤 평가를 좀 부탁드렸어요. 이걸 근거로 내년에 7세가 될 친구들에게 신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같이 배워봤으면 싶어요."


"정말요?"


" 생각해 보니까 선생님께선 강의료도 안 받으시고 무료로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시잖아요. 좋은 취지는 알겠지만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또 수업도 아이들이 좋아하니 정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는 게 제가 도울 수 있는 최선인 거 같아요."


해를 넘겨 2024년 우리의 영어 수업은 단양 어린이집 6세와 7세 아이들의 정규 프로그램 속으로 둥지를 틀었다. 이제 예쁜 내 딸아이도 주 2회 영어를 배우고 있으며 씩씩하고 침착한 7세 조카도 주 2회 영어를 배우고 있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둥지의 도우미로서 현재까지도 든든한 조력자이다.


어린이집 원장님의 성함을 밝히고 싶다. 예쁜 이름 김선녀 원장님.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아이들이 커 가는 길에 선녀의 날개옷 보다 더 빛나는 가능성을 아이들 앞에 깔아주셨다. 마을을 살피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각 자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리고 영역에서 어린것들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식이 아이들을 오늘 또 하루 키워내고 있다.

아들의 댄스 실력은 나날이 늘어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