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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나 Sep 29. 2024

너와 나 우리의 '학습둥지 프로젝트'(9)

왜 하냐고요?

신활력플러스 아카데미 9기 모집

교육기관 24.1.11.부터 2.29일까지 매주 4시간/8회 차 교육 실시

단계를 모두 이수할 경우 추후 심화 단계 교육 진행 시 우선권 부여


8차 시까지 교육 중 80% 이상 출석 필요. 교육 이수 후 교육비 지원됨.

이후 심화과정에 선발될 시 프로그램 진행 및 예산 배정 가능

최소 인원 4명.


신활력플러스 아카데미에 참여하려면 혜영이와 뉴질랜드에서 오신 선생님 외에 두 명이 더 필요했다. 과연 누구에서 함께하자고 제안을 해야 할까? 함께 일하는 진순언니가 그나마 유일한 백수이지만 시어머님이 아프셔서 시간을 빼기가 빠듯하다고 연락이 왔고 시골이라 해도 모두들 직장을 다니는 사람뿐이라 적당한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어윤재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선생님 단양에서 하는 사업 중에 신활력플러스라고... 여기에 아이들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안을 한 번 해봤음 싶은데 혹시 주변에 시간이 되는 분이 계시면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과연 누가 동참했을까?

신활력플러스 아카데미 1단계를 이수하면 사실 300만 원의 교육비가 배정된다. 이 금액이 크진 않더라고 아이들과 영어 숲체험을 할 정도로는 충분했다.

선생님은 이 상황에 대해 고심 끝에 둘째 자제 분과 선생님의 아내분께 교육에 동참하길 요청하신다.

그리고 이번 겨울 자제분과 사모님은 첫 단계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고 심지어 심화과정까지 함께 동참했다.심화과정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라면 과연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무료로 강의를 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가족들에게 함께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무보수로 본인의 시간과 사비를 털어가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

과거의 나라면 절대 절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날 저녁 아이들 수업이 마치길 기다리며 최근에 합류한 성운이 엄마와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성운이 엄마는 두 살 터울 아들 셋을 키우고 있고 2학년 막내가 우리 아들 녀석과 같은 지역 아동센터를 다닌다. 함께 모여 어윤재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운단 소식을 우연히 듣고 정호엄마를 통해 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막내가 2학년인데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영어를 배우고 싶단 요청이었다. 우리 학습둥지라는 것이 오픈형 교육프로그램이라 인원이 너무 과하지 않다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라 2학년인데 1학년과 함께 하기에 수준이 너무 낮을 수 있으니 몇 번 참여해 보시고 결정하시라 답변을 드렸다. 이후 성운이는 2학년이지만 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혹여나 수준이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까지 학년 간 큰 격차가 나지 않음을 이번에 알게 됐다. 성운이 수준은 재현이와 별 반 차이도 없었고 오히려 1년 간 서당개 모냥 풍월로 들은 1학년 아이들이 더 적응력이 좋았다. 그렇게 참여를 시작하게 된 성운이 엄마가 나랑 마주 앉아 아이들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다 나에게 불쑥 질문을 했다.


" 저기 재현엄마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 뭔데요?"

" 근데 이 수업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고 본인 자녀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집 아이들까지 픽업을 하고 데려다주고 왜 이렇게 까지 하나 궁금해서요."


왜일까?

과거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그러나 지금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미래엔 분명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을 일. 내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 그러나 이젠 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아이를 위한 일.


시작은 분명 내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아이를 위한 일이다.

처음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이 시골에서 배울 곳이 전무하니 어떻게든 영어를 가르쳐서 좋은 성적도 얻고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도 얻고 돈도 많이 벌고 호위호식하며 내 자식이 잘 살길 바라는 1차원적인 엄마의 욕심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모습이 바뀌었다.

어 선생님이 사비를 털어 영어 원서와 프린트 물을 챙겨 오고 가족에게 읍소하며 프로그램에 동참시키고 없는 시간을 내면서 까지 아이들 수업에 매진 하는 모습을 보면서 1차원적인 엄마는 2차원적인 엄마로 거듭나기 시작했달까?

성운엄마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 첨엔 나도 아이가 영어도 잘하고 높은 성적도 얻어서 부자가 되길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1년 가까이 수업을 하면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현재 나는 재현이와 아연이에겐 꼭 영어를 잘 하란 입장은 아닙니다. 그저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 함께 봉사한다. 이 험난한 여정이 너희들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고 너희들이 있으니 엄마들이 견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풍요롭다는 것.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나와 친구 그리고 모든 이들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엄마와 친구와 너희 자신이 시작과 끝을 완성하고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기고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참여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엄마가 응당 해 냈듯이 내 아이들 역시 두려움 없이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고 해결책을 찾아가고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마무리해 내길, 그것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복감으로 충만해질 수 있으며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지금껏 놓지 못하고 있어요."




다누리에서 마지막 수업이 임박해지자 새로운 교실을 알아봐야야 했다. 비록 겨울 캠프를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펼치긴 했으나 이 시점 도움을 요청할 곳은 단양도서관뿐이었다. 강의실을 구하러 갈 때마다 밀려오는 생각이 있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비난당하면 어쩌지... 사실 나란 사람은 거절에 매우 취약하다. 거절에 대한 어떤 트라우마가 깔려있는진 모르겠지만 큰 마음을 먹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땐 백 번 천 번 생각하고 예행연습을 거친 뒤 ' 할 수 있다'를 다짐하고서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성격이 이렇다 보니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부탁을 거절당하게 되면 상대방과 편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런 내가 오직 엄마라는 이유로 불편을 감내하고 자존심을 낮춰가며 어딘가, 누군가에 불편한 마음을 쥐어짜 내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로 아직도 이 부분은 해결이 쉽지 않다. 단양도서관 담당자를 찾아갔다. 지난 겨울 관리자분들을 무진장 애를 먹였지만 이번 영어프로그램이 분명 좋은 취지이니 사정을 봐주십사 머리를 조아리고 새로운 도서관이 완공되기 전 두어 달만 이용할 수 있게 도와달라 간청했다. 간절함이 통한 것인지 생각 외로 담당자분이 난색을 표하진 않았다. 아마 새로 오신 담당자가 우리 빌런들의 상태를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나는 추측한다.

우선 이것으로 급한 불은 껐다. 엄마들에게 4월 첫째 주부터 단양도서관애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공지사항을 단톡방에 남겼다. 다누리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아이들 중 단양 도서관으로 장소를 옮긴단 공지에 거리가 멀어 나오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들과 일정 조정에 따른 학원 문제가 발생해 중도 포기하겠다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줄어들수록 나의 의지도 줄어들어 갔다.

하지만 새로운 도서관으로 옮기자 새로운 아이들 역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을 오고 가던 아이들 중 강의실에서 흘러나오는 알파벳 소리와 아이들의 흥 넘치는 노래에 발걸음을 멈추고 빼꼼 강의실 문을 열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의 아이들이 사라지고 또 몇몇의 아이들이 새로이 등장하고....


 오픈형 수업이란 것이 참여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온전히 주인 노릇을 할 수 없단 단점이 있지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을 함께한 우리 아이들은 학습둥지 프로젝트 안에서 그 누구보다 강력한 주인의식을 가진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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