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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나 Sep 29. 2024

너와 나 우리의 '학습둥지 프로젝트'(10)

다시 그 자리에 꽃이 피었다.

여덟 살 아들은 지역아동센터를 다닌다.  학교를 마치면 아동센터로 이동해서 놀이도 하고 수업도 듣고 저녁도 먹고 일과가 끝나면 아동센터 앞 아파트 놀이터에서 조금 더 놀다 집으로 돌아온다.

아동센터에서 아들이 자리 잡기까지 눈물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

올 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돌봄 교실 신청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입학 예정 아이들이 적다 보니 돌봄 교실을 한 클래스만 개설한다 연락이 오면서 신청한 아이 중 6명은  돌봄을 이용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선발기준은 건강보험료 납부금액, 부부공무원의 경우 합산 소득이 높을 경우 돌봄 이용이 쉽지 않아 보였고 결국  우리 집 첫째도 3월 입학 전 돌봄을 이용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갈 곳 잃은 여섯 아이 엄마는 합심하여 학교에 문의를 하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개학 전 어린 자식 여섯의 머물 곳을 찾아 투사처럼 함께 다녔다. 그러던 중 학교 앞 지역아동센터장님의 도움과 군의 배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전화 한 통으로 우선 힘겹게 아동센터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선 2학기 땐 본격적으로 늘봄 수업이 시작될 테니 한 학기 정도만 견뎌주면 탈락한 아이들 모두 학교 돌봄이든 늘봄이든 수용해 주시겠단 입장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어린 자식을 기관에 맡겨두고 노파심으로 직장으로 나셨던 엄마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돌봄 교실 탈락이 신의 한 수였다. 아이는 생각 외로 적응을 잘했고, 바쁜 엄마가 짓는 밥보다 훠~얼씬 맛있는 저녁을 챙겨 먹고 시즌 별로 재미난 프로그램과 야외활동을 살뜰히 즐기며 다니고 있다.

원래 아동센터라는 장소가 저소득, 한가족부모의 아이들, 다문화 친구들처럼 도움이 절실한 친구들에게 우선적으로 제공되는 곳이다 보니 군에서 지원되는 내용이나 프로그램 구성이 학교보다 좀 더 친밀하고 풍부했다. 가끔은 저소득층을 위한 자원을 우리 아들이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이 귀하다 보니 여분의 자리를 일반 아이들이 채우는 것이라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는 센터장님의 말씀이 조금 위안이 됐다.



아들은 방과 후 프로그램을 하고 3시경 지역아동 센터로 걸어간다.  도착한 후엔 바로 스마트올 학습을 시작하는데 빨리 끝낼 경우 잠깐 쉬는 시간 스마트폰 게임이나 보드게임 등을 즐기고 4시경 자체 프로그램을 배우고 5시경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어느 날부턴가 아들이 집으로 와선 가끔 징징 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나 스마트올 너무 어려워. 그걸 빨리 끝내면 놀이할 시간이 많은데 문제가 어려워서 푸는데 오래 걸리면 놀이 시간이 끝나버린다 말이야."

" 뭘 배우길래 그리 어렵단 거야?"

"첨에 더하기 빼기 했는데 이제 곱하기하고 나누기해. 근데 나누기가 너무 어려워서 빨리 안돼. 그래서 그걸 다 하고 나면 놀이 시간이 없단 말이야. 잉잉잉잉"

"넌 1학년인데 왜 나누기를 해? 선생님보고 엄마가 너무 어려우니 좀 더 크면 하래요라고 해봐."

"안돼 엄마 그 걸 풀어야 다음 놀이를 한단 말이야 그렇게 말을 못 해. 지호샘이 옆에서 알려주는데 푸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잉잉잉."


공부도 좋다만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인 녀석이 곱하기를 하고 나누기를 하는 건 과한 게 아닌가? 그러던 중 노파심에 아동센터 선생님께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아들이 스마트올 곱하기 나누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니 아직 어리니까 천천히 알려주셔도 되고 안 가르쳐주셔도 서운하다 얘기 않을게요"

" 어머님 저희가 올해 처음으로 큰돈을 들여 아이들 디지털 교육을 시작하고 있어요. 부담스러우시겠지만

함께 동참해 주시면 저희나 센터 측은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재현이도 잘 따라오고 있고 재현이가 워낙 수학 쪽으론 이해력이 빨라서 다른 친구들보다 속도도 빠르고 진도도 빨리 나가다 보니  그런거 같아요. 조금만 더 지켜보시고 결정해 주세요."


그렇게 아동센터를 이용한 지 벌써 6개월째다. 아들은 더 이상 울지 않더니 어느 날 뜬금없이

" 엄마 분수 알아?"


나 어린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때나 배우던 분수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넌 이걸 누구한테 이렇게 배워오냐 물어본 적이 있다.

"지호 선생님이 가르쳐 주셔. 그날 그날 꼭 배우고 놀러 가야 돼. 선생님 무섭단 말이야."

공익 근무요원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남자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이 스마트올 수업마다 옆에서 도움을 주시나 보다 생각을 했다. 며칠 전에 나에게 분수를 가르쳐주겠다며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 엄마 분수 정말 알아? 진분수, 가분수,... 어쩌고저쩌고.. 소수점 계산하는 거 알아? 내가 그거 엄청 빨리 풀어서 젤 먼저 놀았어. 근데 엄마 지호샘 서울대 학생이래 그리고 고등학교에 간대 그래서 집에 갔어."

" 그게 도통 무슨 소리야? 지호샘이 서울대 학생이라고? 대학생이 왜 고등학교를 가? 선생님 제대하셨니? 도대체가 무슨 소린지 원."



이야기인즉슨 이러하다.

지호샘은 서울대를 졸업했다. 물리학과로 입학했으나 지구과학으로 전향을 한 뒤 졸업을 하셨다고 한다. 고향인 단양에 공익으로 배치됐고 이번에 제대와 동시에 고등학교 교사로 임용돼 2주 뒤부터 출근을 위해 단양을 떠났다. 정말 서울대 출신 과학교사가 내 아들을 끼고 앉아 우는 녀석을 달래 가며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분수 소수까지 알려주었단다. 정말 그랬단다.

아동센터 선생님과 대화를 해보고 이 모든 것을 알아냈는데 아들 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유달리 수 감각이 빨라 선생님도 가르치니 재미나 같이 앉아 놀고 배웠단다.

불현듯 궁금증이 생겼다. 지호선생님이 단양출신이고 물리학과를 갔다?

어선생님께 여쭤봐야 했다. 지호학생을 알고 계는지 단양에서 물리학과를 지원한 아이라면 분명 선생님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지호선생님은 예측처럼 어선생님의 제자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영어로 물리와 수학을 가르쳤던 많은 제자 중 하나였다. 욕심 많은 아이로 기억하셨다. 지호샘의 엄마도 열심히 활동에 동참하였고 학교 수업 이외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동참하셨다 말씀하셨다. 지호학생 본인이 원해서 물리학과를 지원했다는 얘기도 선생님 본인의 영향은 전혀 없음을 못 박으셨다.


아동센터 한 귀퉁이에서 내 아들과 장성한 누군가의 아들이 궁리와 몰두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상상해 본다.

이제 지호샘은 더 좋은 교사가 되고자 떠나셨지만 이곳 어린 친구들에게 좋은 추억을 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꽃이 피었고 다시 그 자리에 꽃이 피었다. 내 아들도 한 송이 꽃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 좋은 꽃이 되길 엄마로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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