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삶은 청량한 빛으로 가득하다. 감사하게도 뭐하나 부족할 것 없이 지내고 있으니
세상이 따뜻한 색으로 보일 수 밖에. 하지만 서른 살 내 삶은 온통 회색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위해 미뤄둔 병역까지 마치니 서른살이 되어 있었다. 아무런 스펙도, 경력도 없이 오로지 대학 졸업장 한장만 들고 사회 진출이라는 문을 두드리니 쉽지 않았다. 좌절을 느낄 때마다 술을 찾았고, 부모님의 원망을 수백번씩 토해내며 혼자 시간을 삭혔다. 재학 기간에 경험했던 교육 분야로의 진출도 생각해봤지만,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평소 친하게 지낸 선배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자신이 회사를 창업하려는 데, 한번 일해보지 않겠는 내용이었다. 당시 관련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했기에 망설였지만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 제시한 급여도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일단 배우는 데 의의를 두고 고심 끝에 수락했다. 그렇게 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경제적으로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기에 다만 얼마라도 저축하려 노력했다. 가계부도 쓰는 등 계획적인 소비에 힘쓰며 경제 관념을 잡아나갔다.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도 하나 만들었다. 파산 면책 후 통장 하나도 제대로 못만들었던 내게, 신용카드는 제대로 된 금융 생활을 시작하는 증표 같았다.
나름대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어지러웠다.
부모님은 여전히 가난했고, 각자 재혼해 가정을 꾸렸으나 얼마 못가 헤어졌다.
새가정에서 생활할 때나, 다시 헤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도 어머니는 몇번씩 돈을 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런 말을 들으면, 20대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떠올라 칼같이 거절했다.
하지만 자식된 도리와 왠지 모를 가책 등이 머리와 마음에 얽혀 괴로웠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아주 가끔 전화로만 소통할 뿐 별다른 교류는 하지 않았다.
졸업 후 잘나가는 동기나 선후배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위축되는 느낌도 들었다.
나도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며 인생을 긴 안목에서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솟구쳤다.
그렇게 화살은 다시 부모님과 과거, 그리고 나 자신을 향했다.
언젠가부턴지 마음을 닫고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지도 않았다.
원랜 그렇지 않았는데, 풀리지 않는 마음의 짐 때문인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갈수록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분명 회사도, 나도 성장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 삶은 회색이었다.
아니, 마음이 잿빛이라 그리 보였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