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야했다.

by 원솔
"시련은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인생은 참 얄궂다. 압도적인 장애물과 시련이 있어도, 일단 살아가야 하니까. 니체의 말처럼,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만듦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겪는 시련은 이겨내기도 힘들 뿐더러 좌절과 정말의 심연으로 사람을 빠뜨린다.





'졸업만 하자'


생활비와 고시원비를 벌고, 빚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주말에도 쉼없이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미래를 준비할 여유도 시간도 부족했다. 대학 입학 때 품었던 꿈은 온데간데 없이 희미해지고 무사히 졸업하는게 제 1목표가 되어버렸다.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지만, 넉넉하지 않았다. 하루에 두번은 고시원에서 나오는 라면과 김치로 허기를 달랬고 핸드폰 요금을 내지 못해 수시로 끊기기도 했다. 등록금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에 극도의 절약을 실천할 수 밖에 없었다. 방학 때도 휴일없이 일하며 돈을 모았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면 늘 통장에 10만원도 채 남지 않을때가 많았다.


"솔아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안돼?"라는 동기의 조언은 상처로 돌아왔다.


당장 먹을 밥값이 없는데 공부에 신경쓸 새가 있겠는가. 물론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생각해서 한말이었겠지만 그땐 야속했다. 등록금이 부족하면 휴학했다 돈을 모아 복학하길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재학 기간이 늘어났다.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등 동기들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을 때 난 생존을 위해 쉼 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학교만은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졸업장이라도 없으면 정말 난 실격된 삶을 살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일렁였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큰 짐이 있었다.


1억이 넘는 빚.


아무리 노력해도 한달에 갚을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자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 개인 파산을 신청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간의 사정을 자세하게 제출한 덕분에 사유가 참작되어

면책까지 한번에 받아들여졌다.


그 때가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빚은 털었지만, 5년간 금융활동 및 신용에 제약이 있었다.

그보다 20대를 힘겹게 날려보냈다는 생각에 힘이 들었다.

특히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응어리가 단단히 굳어진 채였다.


하지만 난 그래도 살아야했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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