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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19. 2023

포기하기 vs 버티기

이별 후 혼자 남겨진 시간에 무얼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시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랐다. 돌아보면 대부분 나는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썸을 타고 있거나 연애 중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항상 옆에 누군가와 함께였다. 물론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기 전 텀은 있었지만, 아픔의 정도가 이 정도까진 아니어서 그랬을까.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별,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더 감당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간에 이런 슬픔을 다룰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가진 적이 없었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 일종확실한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쓰는 그런 시간.


이별 극복 방법에 대한 단상:


여행? 그렇다고 갑자기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진 않았다. 이별한 채로 여행을 가면 혼자 감정적여지고 그 사람과 좋았던 추억을 곱씹으며 생각만 많아질 것 같았다.

소개팅?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소개받고 싶진 않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이 있지만, 특히나 나도 감당하기 힘든 이 불안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이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이 시간을 혼자서 이겨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시험 준비..? 웬 공부인가 싶어도 내 딴에는 이것저것 잡생각 들어오는 그 어떤 것보다 그냥 공부에 모든 걸 집중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생산적으로 이별을 승화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부터 여러 번 고민만 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항상 곁에 있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공무원을 준비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 길로 부모님께 공무원을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한다면 하는 딸'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그렇게 입사 8개월 , 잘 다니고 있던 출판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벚꽃이 흩날리던 26살의 봄, 나는 이별 에너지를 모두 공부에 쏟아붓기로 마음먹고 공시생의 길을 택했다.




‘이러다가 계속 커트라인 근처만 나오는 거 아니야?’

‘그래도 커트라인 근처인데 조금만 더하면 되지 않을까?’


공시생에게 1년이라는 기간 유난히 빠르게 느껴졌다. 대부분 1년, 빠르면 단기 합격인 6개월을 목표로 시작한다. 1년을 공부하고, 4월 국가직과 6월 지방직 시험을 메인으로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점수로 판가름 난다. 그리고 불합격생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굴레를 매년 반복하면서 보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야속하게도  점수는 커트라인 근처에만 맴돌았다. 지난 2년 동안 시험 몇 개 본 기억밖에 없는데 벌써 20대 후반이 되어버렸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심 없이 나를 믿고 공시생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26살.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결국 해낸다길래 자신 있었다. 대부분 영어가 발목 잡기 때문에 영어가 기본이 되어있으면 수월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모든 걸 두루두루 평균 이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하나만 잘해서도, 어느 하나가 쳐져서도 안 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지역 선택. 본가와 멀어지고 싶지 않은 나름의 소신으로 내 지역만 고집해서 지원했다. 문제는 경쟁률이 제일 쎈 경기 남부라는 걸.

어느 누구의 강요도 아닌 온전한 내 결정으로 시작했고, 20대에 하고 싶은 모든 걸 뒤로 미룬 채 자발적인 사회적 고립을 택했다. 합격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 생각하며 청춘을 바친 수험생에겐 "포기를 고민한다"라는 건 유난히 아프고도 좌절스러운 순간이었다. 결단을 내리고 준비한 공무원 시험이기에, 28살이 되어버린 나 역시도 쉽사리 포기를 결정할 수 없었지만 고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포기를 하려면, 일단 지금까지 투자한 2년이 온전히 날아간다고 보면 되는 것이었다. 수험 공부한 2년은 취업만 준비한 2년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 그럴수록 나는 포기하기와 버티기 사이에서 명확한 기준이 안 섰고 어느 순간부터 시원하게 답을 내려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내 고민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상에서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질문이 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공시생을 포기해야 할까요? 더 공부해야 할까요?"


사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에 대한 기회비용은 본인의 상황에 맞춰 스스로 따져보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였다. 성인인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아무도 본인에게 맞춰서 시원한 답을 내려줄 순 없다는 걸. 그렇다면 애초에 명확한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나를 포함해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토록 정답을 찾아 헤매던 이유는 뭐였을까?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누군가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었다는 것. 포기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2년의 세월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웠다. 청춘을 바치고 아무런 결과가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선택이 잘못 됐음을 받아들이고,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나를 책임져야 하는 . 그리고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 두려움의 크기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국어(85) 영어(100) 한국사(95) 사회(80) 행정학(80) -1년 공부하고 불합격한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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