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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큐레이터 Jan 06. 2023

나는 내가 창피한 걸까?

선택에 대한 책임

창피하다는 단어의 정의를 아는가?

비슷한 단어로는 남부끄럽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사전에서 정의하는 체면은 정확히 무엇일까?

왜 우리는 남 앞에서 체면을 차릴까? 왜 떳떳해야 할까? '떳떳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아무런 부끄럽 없이 당당한 자세를 떳떳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창피하다는 감정은 스스로 당당하지 못해 남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은 언제 '창피하다'는 감정을 느꼈는가?




난 그 감정을 오늘 느꼈다. 상황은 이러했다. 요즘 그룹피티센터에서 트레이너로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지점과 소도구를 교환할 일이 있어 건물 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낯익은 사람을 보았다. 함께 주짓수를 겨루던 나름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던 지인이었다. 연락처를 서로 알만큼 친하진 않지만 그래도 만나면 반가운 사이? 


아마 그분은 나를 보았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도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은체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를 몰라봐주길 바랐다. 난 왜 그랬을까? 위에서 말한 대로 떳떳하지 못하게 남을 대할 수 없는 상태. 그랬다. 난 창피했다. 이런 내 상황이 말이다. 




사실 은행에 다닐 때는 일하면서 창피한 감정을 느꼈던 적은 내가 업무상 실수했을 때뿐, 나는 항상 당당했다. 몇 년씩 준비해도 떨어질 만큼 들어가기 어렵고 급여도 많고 정년도 보장된 직장, 무엇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이었다. 항상 새로운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내 직장을 얘기하면 '좋은 직장 다니시네요. 대단하세요!' 라며 나를 추켜세우곤 했다. 


항상 내 직업에 대해 우러러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그걸 다 버리고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려니 창피함을 느꼈던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감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난 내가 잠깐 창피함을 느꼈을지언정 내 선택 자체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인생에 전혀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영향을 끼쳐서도 안된다. 오로지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만 집중해야 한다. 대기업에 종속되었을 당시에는 주변에서 나를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그게 나라는 사람을 대변해 주진 못한다. 그냥 시선일 뿐.


남에게 인정받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가 자신을 부정하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난 3년 동안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내가 20년 넘게 쌓아 올렸던 자존감과 자신감, 자기 확신을 서서히 갉아먹으며 살았다. 끊임없이 나를 잃어갔다. 그 지경에 이르면 사람은 생각이란 걸 한다. 더 이상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고 평생 고통 속에서 살바엔 여기서 모든 걸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여전히 난 도전 중이다. 다시 밑바닥부터 배우며 새로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일하면서 모아둔 돈은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분야에 투자하며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사실 서서히 가 아니고 빠르게...)


비록, 그때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꿈꾸지도 않지만, 오히려 난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 이제야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다. 지금은 즐기면서 일을 하고 있고, 배우고 있는 분야도 흥미롭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자부한다.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다. 사람은 대개 거창한 꿈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 계획들을 세운다. 하지만, 꿈이 너무 크거나,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 실행하길 원하거나,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는 동안 사람은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간다. 그렇게 마음만 먹고, 준비만 하고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한 채 그 꿈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차라리 빠르게 실패하면서 자신과 맞는 직업, 적성, 꿈을 찾으라고 말이다. 


난 빠르게 실패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빠르게 실패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하고 싶은 걸 마음에 담아두기보다 작게 시도해서 나에게 맞는 환경과 일, 사람들을 찾을 것이고, 그런 것들로 내 삶을 채워갈 예정이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살아가는 중이다. 


남들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예전 태도와 성향을 완전히 버리긴 어렵지만, 회복은 빨라졌다. 다음에 그 지인을 만난다면 꼭 먼저 인사할 것이다. 당당하게 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도 함께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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