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에게
프랑스 리옹에서 주말을 보냈어.
오늘 오후에 돌아왔는데 지난주처럼
눈이 자꾸 감기고 졸음이 밀려온다.
방에 돌아와 짐을 풀었어.
캐리어를 열자마자 풍기던 바게트샌드위치의 향.
냄새가 배서 싫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소한 햄과 치즈의 냄새가 좋아서
금세 배고파지기만 했어.
어제는 뤼미에르 박물관에 다녀왔어. 리옹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 뤼미에르 일가의 맨션을 개조한 공간이었지. 그 일대에 큰 공장을 가지고 있었을 만큼 부유하고 명망 높은 집안이었다는데, 아무래도 우리에겐 최초로 영화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의 이름 덕분에 익숙하게 들리는 성씨이지. 두 형제는 필름 촬영, 영사, 인화가 모두 가능한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했어. 그리고 둘에 의해 1895년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최초의 영화로 촬영됐고, 다음 해 1896년에는 세계 최초로 상영된 영화 <열차의 도착>이 만들어졌지. 빛이란 뜻을 가진 Lumière라는 성을 가족 모두가 자랑스러워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맨션 곳곳에 빛의 상징물이 많았어. 창을 메운 스테인드글라스나 샹들리에, 벽에 걸린 거대한 그림 속 태양. 그리고 어쩌면 영화. 영화도 빛을 모아 주워서 쏘는 일이니 그 상징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되겠지.
1896년 파리의 영화관에서 최초의 대중 상영회가 열렸을 때, <열차의 도착>이 스크린에 투영되고, 한적한 플랫폼과 사람들이 보이고, 그러다 열차가 서서히 다가올 때,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지.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는 공포감에 질려서! 낯선 광경이 불러오는 불안한 환희를 느끼면서! 우리에게 움직이는 이미지는 당연한 문법이고 언어이지만, 고정되고 박제된 이미지만 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영화라는 존재는 꼭 다른 세계의 파편처럼 느껴졌을 거야. 이름을 잊었는데 어느 유명한 평론가였나 감독이었나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아주 리얼리즘적이라고, 혹은 다큐적이라고 얘기했대. 이때부터 우리 세계는 프레임에 담기기 시작했고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게 됐지.
지난 목요일에 세계 여행을 하던 J 군이 마침 암스테르담에 들렀는데, 또 마침 목요일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IDFA가 개막하는 날이기도 해서, 함께 영화를 보게 됐어. 이란 감독 파라나즈 샤리피의 <나의 도둑맞은 행성>이라는 영화. 지난 베를린영화제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니까 어쩌면 볼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이란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란 감독 본인의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났어. 어렸을 때부터 찍어온 필름 사진과 푸티지가 줄곧 이어지는데,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감독이 취미처럼 모아 오던 버려진 필름 푸티지와 교차되기 시작하지. 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주먹을 치켜든 여자.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여자의 주먹에서 함께 외치는 모두의 얼굴로, 거리의 모습으로 영화는 넓어져 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위를 진압하는, 그러면서 누가 구타당하는, 총에 맞는, 쓰러지는, 죽은, 그런 이미지가 병치되기 시작해. 보면서 자꾸 입이 말랐다. 끔찍하고 생생한 이미지.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박수 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떠올렸어.
문학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러쥐게 하는 힘이 있다면, 영화에게는 형언될 수 없는 것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고 믿어. 우리는 이제 지나칠 정도로 많은 걸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 세계를 속속들이 안다고 착각하곤 하지만, 사실 과잉은 결핍과 빈곤만을 불러오지. 멈춰서 바라보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으면 금방 옅어지고 희미해져.
아주 예전에 읽은 정성일 평론가-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 평론가, 나는 예전에 한 번 영화 해설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아 먼저 자리를 뜬 적이 있다-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고, 그게 참 오래 내 마음에 박혀 있었어.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그 영화가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세상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다." 대개 책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 예술에 관해서는 늘 살아보지 못할 인생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따라붙고는 하는데, 글쎄, 나는 간접 체험보다는 관점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거든. 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것. 못난 인물도 잘난 인물도, 그 인물의 선악을 따질 게 아니라, 마주한 삶을 어떻게 풀어가는가를 보아야 하는 거라고.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서의 영화를 사랑하고, 이것은 도리어 내게 돌아와 세상을 살아갈 지탱하는 힘이 되어준다.
다시 영화제. <나의 도둑맞은 행성>을 다 보고 나서 구역질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고통과 폭력에 관한 감각은 잊고 있다가 이렇게 가끔 깨어나고 한동안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는 해. 그리고 다시 뤼미에르. 영화는 말 그대로 정확한 날짜의 기록과 함께 탄생한 몇 안 되는 예술이지. 이제 백 년이 꼬박 넘은 역사. 일 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흑백필름에서부터 시작되는 기록의 역사. 나는 순간을 가로채는 이미지의 병치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무척이나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한주 내내 너에게 고백 혹은 실토하듯이 말하고 싶었어. 나는 영화가 좋다. 너도 모쪼록 주에 영화를 즐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 들어 본 영화가 몇 편 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이런 얘기를 하는 데에 죄책감처럼 마음에 걸리지만… 내일부터라도 한 편 더 보면 되는 거 아닐까.
최근에 개봉한 글라디에이터2가 꽤 괜찮다더라. 난 거기 나오는 폴 메스칼을 좋아하는데, 2편을 보기 전에 1편을 먼저 챙겨 보려고.
오늘은 이만 줄일게. 좋은 하루 보내길.
추신.
너에게 유독 각별한 예술이 있니?
2024년 11월 18일
뤼미에르의 도시에 다녀와서
빛을 쏘는 마음으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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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9 - 2024 OCT 18th
발행인 김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