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 입동

by 가을

_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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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떻게 지냈니?

또 다른 한 주에 또 다른 편지를 쓰는 건데,

달의 첫 편지를 쓸 때면 지난 편지가 먼일처럼 까마득해.

시월 마지막 날 밤은 유독 길게 느껴지니까

먼일 같단 게 거짓은 아닐지도 몰라.


네덜란드는 매달 첫 월요일 정오마다 사이렌 점검을 하는데,

지금 막 창 바깥으로 사이렌이 울려와.

어떤 징조. 무언가 벌어질 것만 같은 경계.

아마 새로운 계절의 문턱을 넘어서는 소리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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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면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요즘. 겨울에 들어서고 있어.

화창한 날에도 외투를 두텁게 입지 않으면 온종일 춥다고 몸서리를 치지.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옷도 점점 길어지고 점점 두꺼워지고 산책하는 강아지들도 옷을 한두 겹 걸쳐 입어. 연말에만 장사한다는 튀긴 도넛 트럭이 동네 곳곳에 널려 있어.

요즈음의 중독. Oliebollen이라는 네덜란드 전통 길거리 간식인데, 우리로 말하면 붕어빵 같은 겨울 간식이랄까. 꼭 튀긴 단팥 도넛이나 꽈배기 맛이 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멀리서 트럭의 불빛이 보이면 한 번 보기나 할까 하는 변명을 대면서 방향을 돌려. 그리고는 갓 튀겨서 따끈따끈한 도넛 하나를 사고 만다. 하나에 1, 25유로 비싸면 2유로. 늘 마음을 두둑하게 하기 위해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 다녀야 해. 사실 맛도 여러 갠데, 아무것도 들지 않고 반죽만 튀긴 Oliebollen이 기본이라면, 건포도가 박힌 Krentenbollen도 만만치 않게 인기 있고, 간혹 가다 야심 찬 트럭에는 Oreobol부터 Nutellabol, Dubaibol까지… 그냥 이름 붙이기 나름인 거 같다.

가끔 한참 전에 튀겨 식어버린 걸 받아 들 때가 있는데 그때의 기분은 슬프고 참담하고 절망스럽다고밖에. Oliebollen 하나를 사면 슈가 파우더를 뿌려줄지 묻는데 그래서 바람이 많이 부는 암스테르담 운하를 걸으면서 먹고 나면 외투엔 수상한 하얀 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있고 얼굴에는 꼭 바보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코나 입가에 흰 얼룩이 남아. 그러면 서로 보면서 깔깔 웃고 사진을 한두 장 놀림감으로 찍어 두고 털어준다. 혼자 먹을 땐 털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최대한 깨끗하게 먹으려고 노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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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제철 음식은 계절감을 일깨워주지. 우리가 겨울의 문턱에 있다는 건 내 생일이 오고 있다는 뜻! 왜냐면 내 생일은 늘 입동 바로 전날, 혹은 입동 당일이거든. 가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 그건 엄마와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기 때문에 내 이름이 이렇게 지어진 건데, 이즈음이면 다시 논란이 불거져서, 내 이름이 가을이어도 되는 건지, 겨울이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 정당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곤 해. 올해 2024년의 입동은 11월 7일이라고 하네. 다소 자기중심적이지만 이렇게 생각할래. 내 생일날 세상은 겨울로 들어선다!

한 해의 마지막 두 달은 헤아릴 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 버려. 그렇지만 아직 대낮 바깥에서 크게 숨을 쉬어도 입김은 보이지 않을 만큼 충분한 온기와 시간이 있다고 믿어.


따뜻한 포옹 혹은 간식이 필요한 시기야.

집 가는 길에 갓 구운 무언가를 포장해 가렴.

그리고 그 온기가 식기 전에 집에 도착하길!


이번 생일날 나는 아일랜드로 가.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면 좋겠다.

다시 편지할게.

안녕.


추신.
미리 생일을 축하해 줄래?


2024년 11월 4일

암스테르담에서

온기를 담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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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9 - 2024 OCT 4th

발행인 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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