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4. 겨울나기

by 가을

_ 에게


잘 지냈지?

십일월도 다 끝이 났다.

기분이 괜히 뒤숭숭해. 모든 게 정리되어야 할 것만 같고 그래. 하지만 아직도 일을 벌이기엔 늦지 않았어.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어. 이불밖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못 할 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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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날이 오락가락했어. 비가 왔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천둥번개가 치고 그러다 첫눈까지. 아무리 네덜란드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해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바뀔 줄이야. 가뜩이나 해가 짧아져서 흐린 날엔 해가 거의 온종일 가려져 있다가 져서 온종일 커튼을 닫아 두기도 했어. 쏟아지는 비와 바람까지 헤치며 자전거를 탈 취미는 없어서 바깥에 나갈 생각을 했다가 금방 접고 말았지. 자꾸 낮잠이 당기고 그래서 자고 나면 해가 이미 지고 없고 그럼 하루가 이미 끝난 거만 같이 느껴졌어. 여름엔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늦게까지 해가 떠 있어서 뭐든 당장 시작해도 늦지 않았는데 말이야.

계절성 우울증에 관해 들어 본 적 있어? 햇빛의 양과 일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활동량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고 슬픔을 느끼는 것. 당연하게도 해가 잘 들지 않는 지역에서 더 흔히 나타난대. 극야를 겪는 북유럽 쪽 나라에선 감기처럼 흔하다더라. 인터넷에선 아예 햇빛과 같은 효과를 주는 UV 조명을 사다가 집에다 두는 게 기본이라는 말도 봤어. 나는 지난주에 기분이 어쩐지 울적하진 않지만 처져 있었고 오늘 아침에도 오래 게으름을 피우다가 겨우겨우 침대서 벗어났어. 곰이나 거북이 같은 동물은 동면을 위해 먹이를 저장하고 동굴로 땅 아래로 들어가서 한숨 자고 나오잖아. 우리는 동면할 수 없으니 차라리 우리만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하겠지.

너에게 내 (새로운!) 겨울나기 방법을 소개할게. 해가 들질 않는 암스테르담에만 유효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점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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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 마시기

하루가 끝나갈 때쯤에 물을 끓여서 차 한 잔을 내려 마시기 시작했어. 숙면에 좋다는 카모마일 라벤더 티백이 제법 괜찮아서 자주 마셔.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함이 움츠러드는 몸과 기분에 도움이 된다. 밖에 나가서도 커피 대신에 차를 마시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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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리하기

겨울만큼이나 챙겨 먹는 게 중요한 때도 없지. 매일 하는 게 요리 아닌가 싶겠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약간의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한, 뜨거운 음식을 요리하자는 거야. 짧아진 낮만큼이나 흐려진 시간 감각으로 아예 일찍이 오후 다섯 시부터 주섬주섬 시작해도 좋아. 재료를 썰고 다지고 쌓고 굽고 찌고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지. 요리의 최고 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다 하고 나면 수저에 듬뿍 올려지는 보상! 누군가와 함께해도 즐거운 시간. 나는 평소에 해볼까 하다가도 미루던 라자냐, 피자, 그리고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사진엔 없지만) 오늘은 카레를 한 솥 끓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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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자 놀기

혼자 방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결국 SNS에 빠져들고는 하지만- 하기 위한 노력.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나 자신에 짜증을 느끼게 되는 그 아이러니한 상황 있잖아. 딱 눈 감고 이불밖에 나서서 무엇이든지 시작하면 되는데, 그냥 그건 싫고, 이것저것 재다 보면 하루가 다 간 것만 같고. 여름엔 산책이라도 다녀오면 마음이 비워졌었는데 이제 그건 어려우니까 혼자라도 잘 놀아야겠다 싶었어. 규칙을 세우는 게 중요해. 선물 받은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조립이 여러 팩으로 나뉘어 있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정했지. 하루에 딱 한 팩만 조립하기. 그 시간 동안에는 다른 무엇도 겸하지 말기. 음악을 틀어 두고 조립만 하기. 그 외에도 외국어 공부와 독서도 하려고 애쓰는 중. 여기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어디서든 간에 혼자서 단지 그것만 하면서 집중한 채로 시간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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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움직이기

밖에 도무지 나가기 싫다면 스트레칭이라도 하기. 마음이 먼전지 몸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몸이 굳고 뻣뻣하면 마음도 굳어지고 뻣뻣해지는 기분이 들어. 잠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던 지난주의 어떤 하루처럼 말이야. 오늘 간만에 테니스 수업에 다녀왔는데, 이주 연속으로 빠졌다가 돌아간 거라 영 실력에 진전은 없었지만, 그래도 몸이 풀리는 것만 같더라. 바지런히 움직일 순 없더라도 시간이 나면 바짝 움직여야 하나 봐.


한국에서 눈이 내릴 때면 꼭 다음 날 하늘이 개서 햇빛이 내리비칠 때, 온몸이 춥고 폐도 차가운 공기로 가득한데, 그 볕 때문에 느껴지는 사르르 녹는 듯한 느낌을 좋아했는데… 여기선 그걸 기대하긴 어렵겠으니 또 다른 나만의 겨울나기 방법을 찾아보려고. 겨울만큼 편지 쓰기 좋은 계절은 또 없는가 싶기도 하다. 책상 앞에서 혼자 들어앉아할 일은 무수히도 많겠지만, 누군가에게 실컷 떠들 수 있는 건 편지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다가올 겨울에 마음을 단단히 준비하자.

외출할 때 장갑과 목도리를 잊지 말길.

그럼 안녕.


추신.
너만의 겨울나기 방법이 있니?


2024년 11월 25일

암스테르담에서

온기를 담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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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9 - 2024 NOV 25th

발행인 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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