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3. 떠남과 도착

by 가을

_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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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잘 지냈니?

인천 도착을 40분쯤 남기고 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암스테르담을 11시간 전쯤 떠났다는 얘기를 하려고 해.

그곳에서의 마지막 사흘은 안개로 가득했어.

세상이 멀리 사라지는 것처럼 높은 빌딩은 코앞에서도 그 정상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날이 뿌옇고 흐렸지.

꼭 지난 일 년이 그렇게 미스테리하게 잔상처럼 남을까 싶더라

1년간 지냈던 방을 모조리 비우고 나서던 마지막 순간

빈방은 꼭 내가 처음 도착한 날의 그것과 같아서

도리어 암스테르담으로부터 내가 흐리게 뿌옇게 사라지는 것만 같았어.

정든 나날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으려나.

기나긴 숲길을 통과한 기분. 다음 숲으로 넘어가야 할 때.

일 년짜리 하이킹이라 생각하니 하니 길기도 하다.

도로를 두고 서로를 향해 기운 나무들, 풀숲을 지나면 나오던 연꽃,

거리 위를 스치듯 낮게 날던 비행기, 맑은 날 빛나듯 흐르던 운,.

넘어질 듯 앞쪽으로 쏟아지는 뾰족하고 세모난 건물들, …

많은 풍광이 스치고 그 뒤로 어떤 얼굴들이 선연히 보여.

언제고 다시 떠올릴 순간이란 걸 알면서 보낸 시간들.

따뜻하고 다정한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와중에도 몇은 사라지지 않고 내 삶에 남았기를 기도해야겠어.

곧 착륙이다. 다시 편지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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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비워내면서 과거로부터 온 작은 알갱이 혹은 부스럼을 종종 마주쳤어. 녹슬어 결국 타지 못하게 된 첫 자전거의 열쇠나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여름옷도 찾았지. 하나의 박물관처럼 그 방을 박제하고 떠나는 상상을 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을 머리카락 한올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러면 이곳을 영구적으로 (불법) 점유하는 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모두 정리했지. 꽉 찼던 책상 위 보드도 황량해졌어. 조각조각 수집해 온 것을 다시 눌러 담아서 짐을 챙겼지. 마지막 날 플랫메이트들과 포옹으로 인사하고 중심가에서 떨어진 운하 옆을 걸으면서 도시와도 담담하게 작별했어. 언젠가 암스테르담에 돌아온다면 적어도 서먹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열두 시간을 날아 돌아온 집은 여전해. 시차 적응으로 자다 깨길 반복하다 일어난 아침. 너무나 당연한 풍경에 지난 일 년이 지어낸 얘기처럼 느껴졌어. 다행히 그간 써온 편지가 증거물이 되어 주겠지. 아직 산더미처럼 남은 짐도 풀어야 하는데 막막하다.


낮잠에서 일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네게 쓴다.

다음 주면 작별이야.

아직은 이렇게 인사해도 되겠지?

다시 편지할게.

안녕.


추신.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면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까?


2025년 1월 20일

집으로 돌아와서

애정을 담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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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11 - 2025 JAN 20th

발행인 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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