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ol@골계전 24. 살리에리와 탈모도脫毛圖
딸아이의 우상이 된 오상욱.
어떤 프랑스 관람객은 펜싱 결승전의 오상욱을 보고는, '나는 애국을 버렸다!'라고 했고 또 어떤 여자는 그를 보고 '이 행성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라고 했다던데, 내 딸도 예외는 아니다.
내 딸만 그랬을까. 아마도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오상욱에게 이미 마음을 팔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The Winner Takes It All (the woman in our planet)!!
아바 ABBA의 노래 첫 소절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어쩌면 나 같은 범부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여자들의 위장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필이면 내가 존경하는 남자의 탄생일 즈음에 오상욱 같은 우월한 유전자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다니.
오늘은 나를 대변하고 세상의 모든 평범을 대변한 한 남자의 날이다.
1750년 8월 18일 우리의 위대한 범부凡夫 안토니오 살리에리 Antonio Salieri가 태어난 거다.
평생을 존경받으며 궁정음악가로서 생을 마감했지만 모차르트라는 신생아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하고 완전히 폭망한 이미지로 세상에 남겨진 불운의 사나이.
하지만 매년 오늘이면 그의 탄생을 축하한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의례다.
영화의 대사였지만, 그가 마지막에 휠체어에 떠밀려가며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지른 소리가 항상 마음에 남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아버지다!"
그런데 한 가지 밝혀야 할 일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4차선 넓이로 초토화된 대머리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묘사를 했는데 사실은 이와 다르다. 그의 초상은 마르티즈 같이 꼬불하고 빽빽한 머리가 이마까지 덮은 헤어스타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1700년대는 로코코 양식이 문화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여서 초상화를 그릴 때 화려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는 하지만 대머리에 육모나 식모는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초상화에서처럼 머리숱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순전히 영화감독의 설정이었던 거지.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내 두피에 각질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왜일까.
영화 속 인물의 탈모현상이 내게 전이되는 특별한 경험은 그를 잊지 못하게 하는 어떤 힘이 되기도 했다.
모차르트 = 살리에리 = 탈모 그리고 나
이런 상관관계가 고착화되면서 외출 전에 한껏 머리카락에 힘을 주어 닭벼슬처럼 세우는 버릇이 생겼다.
이 징크스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나의 탈모극복 노력은 또 다른 한 남자에게로 눈이 몰리면서 해결됐다.
한밤중에 '유레카'처럼 찾은 남자다.
잠이 들기 전에 뒤척이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화들짝 놀라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일이 있었다.
요실금이라던가 혹은 과음으로 인한 오버잇 over-eat 현상이라서가 아니라 탈모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던 중에 심각한 탈모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신체적 증상의 사례를 읽고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이런 문구였다.
[만약, 여러분의 신체 중에 머리를 제외한 다른 부위의 모낭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무럭무럭 자라는 현상이 생긴다면 탈모를 의심해 봐야 한다.]
헐... 설마...
손바닥만 한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의 여러 부위를 자세히 살펴봤다.
거울이 작아서 까치발을 디디기도 하고 허리를 숙이기도 했다.
머리카락만 제외하고 나머지 신체부위 곳곳에서 약간 흥분한 듯한 나의 털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서서 관찰하던 그때, 순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와 내 몸이 오버래핑되는 것을 느꼈다.
다시 침대로 돌아온 나는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평소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다빈치의 이름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Leonardo Talmodo Davinci 레오나르도 탈모도(脫毛圖) 다빈치!!
‘뭐야, 인체 탈모도였어?’
이마가 훤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조각가, 음악가, 발명가, 지리학자, 해부학자의 반열에 올랐다니.
비교적 머리카락이 부족하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평범함 속으로 빠지는 건 아닌가 보구나 싶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날 이후 신기하게도 살리에리에서 비롯된 나의 탈모 현상은 다빈치의 미들네임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멈췄다고 했지 빠진 게 다시 난다는 말은 아니다.
오늘은 내게 그런 날이다.
머리숱이 많으면서도 세상의 모든 평범을 대변하게 된 한 남자와 대머리면서도 세상의 모든 위대함을 상징하는 또 다른 남자를 동시에 기념하는 날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