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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漂流하는 마음

mayol@골계전 25. 사람들과 함께 서 있을 필요는 없다.

by 마욜 MaYol

정말 먹을 게 없다거나 손가락 하나 꼼짝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평소 멀리하던 라면을 끓이곤 했는데, 지방에서 은둔하던 어느날이었다. 새벽 한 시쯤 되었나, 체한 듯 식은땀이 흐르면서 배가 뒤틀렸다. 라면이 주는 속앓이도 있긴 했지만 분명히 뭔가를 잘 못 먹은 게 분명했다. 한 숨을 못 자고 화장실을 오가며 동이 틀 때까지 속을 다 게워내고 나니 하늘이 노오랗고 머리 위로 별이 반짝반짝 돌았다. 식은땀에 팬티까지 다 젖은 몸을 겨우 씻겨서 잠시 살 것 같다가도 속이 뒤집혀 다시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뒤틀리는 배을 꼬집으며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막히는 길을 뚫고 여섯 시간에 거쳐 서울에 들어오니 오히려 안심이 되고 통증도 좀 가라앉는 듯했다. 고향에 들어섰다는 안도감이 주는 위안인지 모를일이다. 다행히 오래된 차 스팅도 익숙한 길로 들어서자 마치 물만 넣어도 달릴 것처럼 힘을 냈다. 부릉부릉 ~~ 내가 나고 자란 도시의 탁한 공기가 이런 치유의 힘을 가졌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던 때도 그렇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앉은 지금도 내 마음은 방향을 잃은 나침판만 같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들어가 아무도 원한적 없는 일을 벌리고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분야를 들여보고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잘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늘 머리를 복잡하게 했기 때문이다. 문득, 유명 화가의 글 하나가 떠오른다. 기차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한 제목이기도 하다.

‘꽃과 女人의 畵家’하면 누가 떠 오를까. 그녀 옥자玉子가 태어난 곳은 1924년 전남 고흥이었다. 전남ㅁ여고의 전신인 광주 공립 여자고등 보통학교에서 미술에 빠져든 그녀는 1941년에 일본 동경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데생과 채색을 배웠다. 이 무렵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경자鏡子로 바꾸었다. 천경자千鏡子. 그녀가 일본에서 인물화를 배워 1944년에 조선 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는데, 그 두 개의 작품은 모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초상이었다. 이 일기를 쓴 1964년은 그녀가 홍익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이었다. 눈길을 걷는 애띈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웃픈 표정이 된 천경자의 낯빛이 눈에 선하다. [미스 홍은 무거운 채색彩色박스를 들고 유달리 미끄러지기를 좋아하고, 내성적內省的인 미스 성은 그를 부축하면서 미끄러질 때마다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상상만 해도 이쁘고 선하고 아름다운 설경雪景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복잡해졌을 화가의 모순된 마음이 보이기도 한다. [장터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 있을 필요는 없다.]는 그녀의 철학은 동생을 잃은 슬픔보다도 어지러운 세파보다도 더 강했다. ‘미인도’를 둘러싼 위작 논란이 불거지자 전시를 마치고 미국으로 날아가버린 그녀는 안타깝게도 2015년 타지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 표류 漂流하는 마음


종강終講이 되자 마음이 가뜬해진다. 외투를 걸치고 교실을 나오는 발걸음도 가볍다. 어느새 눈이 소복히 쌓인 교정은 귀로歸路에 선 여대생들의 발랄한 웃음 소리가 함박눈같이 충만하다. 교문까지 연결된 높은 고갯길을 내려가며 더러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우정 넘어져서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미스 홍은 무거운 채색彩色박스를 들고 유달리 미끄러지기를 좋아하고, 내성적內省的인 미스 성은 그를 부축하면서 미끄러질 때마다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모란꽃잎이 바람에 간지럽게 쏟아지는 모습과 흡사하게 웃는 그들의 틈에 끼어 나는 조심조심 힐굽을 눌러 눈길을 내려가면서 덩달아 얼굴에 구름을 잡으며 신나게 웃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의미없이 웃어 보는 실없는 웃음. 얼마나 오랜만인가. 하늘에선 눈송이가 난무하고 지상에는 청춘이 춤을 추는, 그러기에 주위는 숨가쁘도록 아름답다. 무엇인지 나만 홀로 무인도無人島에 뒤떨어져 있는데, 젊은이들만이 저희들끼리 항해航海를 계속하며 나를 잊고 떠나가는 것 같은 서글픈 생각이 스쳐갔으나, 나는 그들이 부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다. 人間은 十대, 二十대, 三十대, 四十대, 五十대를 향하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마라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ㅁ-……///ssㄴ의지를 살려서 그림을 그리고 살 수 있는 인생, 좋은 배우자, 충실한 인간성, 과연 그렇게 보람있는 인생을 걸어 갈 것인지, 미지未知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 것인지, 젊은이를 보면 젊음의 아름다운 반면에 불안한 마음이 깃든다. 나는 그와 같은 가벼운 불안 속에서 나를 돌아본다. 무슨 아기자기하고 아슬아슬한 곡예曲藝를 한바탕 치르고 난 듯한 안도감에서 휴유- 한숨이 저절로 터지는 걸 막지 않았다. 내가 행복한 반생을 살아 왔던가, 충만된 人生을 지났다던가 하는 속된 문제에 있어서는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까지 붓을 놓지 않고 살아 왔다는 것, 죽도록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는 고된 보람이나마 강렬하게 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마다 세모歲暮가 되도라도 연륜年輪을 헤아려 늙어가는구나 하는 그러한 어리석은 생각으로 서글퍼해 본 일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좋은 그림을 그렸던가, 하는 생각만이 가슴에 차기 때문에 한 해를 돌아보아 일을 보람있게 많이 한 해는 그래도 마음에 여유를 갖게 되고 벅찬 희망도 안게 된다. 그렇지만 그러하지 못했던 올해 같은 해는 무엇인지 허전하고 많은 사람들은 피안彼岸을 항하여 전진을 계속하는데, 나 혼자 표류하는 것 같은 쓸쓸함을 느낀다. 무인도에 뒤떨어져 있는 것과, 고도孤島에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격랑激浪 위를 헤매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장터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 있을 필요는 없다. 정처 없는 항해보다는 차라리 사나운 파도 위를 헤매는 것을 택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一九六四年을 보내는 마음의 한 조각이다. �


표류하는 내 마음이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행보였고 그 노력이 오히려 나를 멀리 떨어뜨려 고립시켰나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을 하며 차창밖의 폭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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