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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Oct 30. 2024

토실이

mayol@hairpin #3. 유기견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던 엄마가 우산을 들고 홍제천으로 나간 날이었다.

 빗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느 때보다는 한산한 산책길이었다.

 홀로 그리운 것들을 떠올리기 좋은 시간이었다.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나지막한 안산을 타고 비를 옆으로 몰아갈 때였다.

 어디선가 강아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산책로 옆 돌틈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우산을 어깨에 기대고 허리를 숙여보니 젖도 안 뗀 강아지 한 마리가 떨고 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아지를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곧 죽을 것처럼 쳐져있던 강아지에게 거실 한편에 이불을 깔아주고 우유를 먹이니 며칠 만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개털이 자라면 집안이 난리가 날 거라며 싫어했지만 엄마는 완강했다.

 제일 좋아한 것은 보경이었다.

 강아지가 낑낑 거리며 일어서려는 모습만 봐도 모두가 신기해서 강아지에게 몰려가 턱을 괴고 엎드렸다.

 하얀색의 털에 까만 점이 너무 이뻤다.


 “야, 우리 강아지 이름 지어주자.”


 큰 언니가 먼저 이름 하나를 말했다.


 “점박이 어때?”


 그러자 오빠가 나섰다.


 “아니야. 얘 이름은 마징가야.”

 “야, 얘가 무슨 로봇이냐. 나는 베토벤. 어디 영화에서 나온 큰 개 이름이 베토벤이었어. 나는 그 이름 좋더라.”


 작은 언니가 베토벤에 대해 떠들고 있는 사이에 보경이는 강아지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만 쓰다듬고 있었다.


 “엉덩이가 토실토실하니깐 토실이가 좋아.”


 보경이가 강아지의 엉덩이를 만지며 웅얼거리듯이 말을 했다.


 “오, 우리 보경이가 지은 이름이 좋은데. 토실이. 너무 좋다.”


 엄마가 칭찬을 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강아지의 이름은 토실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토실이는 보경이를 유난히 따랐다.

 보경이가 움직이는 대로 졸졸졸 쫓아다녔다.

 아빠는 토실이가 안방으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기겁을 하며 뛰쳐나왔다.


 “여보, 여보. 개가 침대에 올라갔어. 얼른 털 좀 치워줘.”

 “아니, 당신이 애예요? 그리고 아직 털 빠질 시기도 아니라고요.”


 아빠는 엄마가 침실 청소를 하고 나올 때까지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토실이를 피해 서성거리기만 했다.

 토실이는 서성거리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으아아. 얘가 왜 이래. 보경아, 보경아!”


 보경이가 토실이를 끌어안고 소파에 앉자 그제야 아빠는 침실로 다시 들어가셨다.

 침실로 들어가신 아빠는 오래된 소형 티브이를 탁자에 올려놓고 전원을 켰다.

 안테나를 올려야 채널이 잡히는 골동품 티브이였다.

 화면이라고 해봐야 크기가 어른 손바닥보다 작았지만 아빠는 그 작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했다.


 “여보, 나 드라마 보니까 토실이 못 들어오게 해.”


 엄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안방문을 닫아주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토실이가 오고 나서부터 달라진 분위기였다.

 그런데 토실이가 크면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자꾸만 여기저기에 머리를 찧거나 불러도 턱을 괴고 엎드려 눈만 찡긋거리며 달려오지 않았다.

 벽에 머리를 찧는 일이 빈번해지자 엄마와 보경이는 토실이를 안고 동물병원에 갔다.


 “토실이 눈에 이상이 있네요. 망막에 문제가 있어 사물을 또렷이 보지 못해요. 더구나 귀도 잘 들리지 않고요. 더 심해질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지켜볼 수밖에요.”


 수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보경이는 큰 소리로 울었다.

 품에 안긴 토실이가 보경이의 눈물을 핥았다.

 토실이가 점점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자 보경이는 토실이를 부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손바닥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발을 굴러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여러 방법을 궁리했지만 토실이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보경이가 엄마가 머리에 끼워준 머리핀을 만지작 거리다가 빼는 순간이었다.


 “똑딱!”


 베란다에 턱을 괴고 밖을 바라보고 있던 토실이의 큰 귀가 번쩍 들리는 게 보였다.

 보경이는 머리핀을 다시 한번 눌러 소리를 냈다.


 “똑딱똑딱.”


 그러자 토실이가 고개를 돌려 보경이를 쳐다봤다.

 보경이가 두 팔을 벌리자 토실이가 보경이 옆으로 다가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신기하게도 토실이는 보경이의 머리핀 소리에만 반응을 했다.

 밥을 줄 때도 씻길 때도 보경이의 머리핀 소리가 필요했다.

 이상하게도 언니들이 가지고 있던 머리핀 소리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실이를 부를 때마다 머리핀을 누르는 통에 군데군데 칠이 벗겨졌지만 머리핀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핀은 언제나 보경이의 머리카락에 안전하게 보관되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귀가 먹먹해져서인지 토실이는 외출을 싫어했다.

 홍제천을 지나다가 다른 개들을 만나면 보경이 뒤로 숨거나 낑낑거리기만 했다.

 고양이를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토실이가 나가서 마음 편하게 뛰어노는 곳은 마당뿐이었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만 나도 기겁을 하고 집으로 뛰어들어오는가 하면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보경이 방으로 숨어버렸다.


 “아니, 이 집에 개가 있긴 해요?”

 “호호호. 그러게요. 토실이가 낯을 많이 가리네요.”


 가족을 제외하고 토실이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가족들 앞에서만 허세를 부리는 토실이였다.


 “나 원 참, 토실이가 집은 지킬 수 있겠어!”


 토실이를 보면서 눈을 흘기는 아빠였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정기적으로 병원에 좀 데려가요. 힘들겠어.”

 “당신이 웬일이래요. 호호호.”


 아빠는 부엌 앞에 뻘쭘하게 서서 토실이를 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가 소형티브이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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