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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Nov 06. 2024

병정개미

mayol@hairpin #4 외출

엄마는 언니들과 오빠를 등교시키고 나서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입을 씰룩거리고 있던 보경이는 토실이와 함께 마당으로 내려서는 계단 앞에 섰다.

평소 같으면 꼬리를 감추고 방으로 도망가버렸을 토실이가 웬일인지 보경이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토실아, 너는 내 편이지?"

"멍멍!"


하늘은 불에라도 덴 듯이 빨갛게 달아올라 주변을 붉게 물들였고 연분홍의 벚꽃들은 더 짙은 색을 띠었다. 토실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다시 한번 짖었다.

마당 구석에 있는 작은 화단에는 잡초와 꽃이 되는대로 자라고 있었다.


"당신은 왜 잡초까지 키우는 거야?"


아빠가 묻자 보경이의 손을 잡고 있던 엄마가 웃었다.


"호호호호. 나는 일본식 정원보다 영국식 정원이 더 좋아요. 우리나라도 그런 식이잖아요. 자연이 뿌린 씨앗이 그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정원의 모습인 것 같아요."

"허허, 참. 못 말리겠구먼."


보경이는 그때부터 '우리 집 정원은 영국식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뭐든지 엄마를 따라 하는 '따라쟁이'였다. 또래의 친구들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보경이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화단 옆으로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봄이 되면 연분홍 색의 꽃을 피우다가 며칠 만에 꽃잎을 떨구어 버리는 나무였다. 그게 벚나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듣기는 했지만 입에 잘 붙지 않아 그냥 '나무'라고만 불렀다.

보경이는 여전히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나무 옆에 있는 작은 돌 위에 앉아 우두커니 땅바닥을 내려보았다. 바람에 떨어진 벚꽃들이 넓게 흩어져 있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벚꽃 잎을 보던 보경이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뻗뻗해진 목젖이 아파 훌쩍거리기만 했다.

순간, 얌전히 보경이 옆에 엎드려 있던 토실이가 갑자기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토실이의 머리를 만지며 다독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으르렁 거리던 토실이가 이번에는 짖기 시작했다. 눈물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눈을 돌려 보니 흐릿하게 개미떼가 보였다.

머리가 큰 개미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보경이가 앉아 있는 나무 아래로 다가오고 있었다. 개미들은 담벼락 사이에 벌어진 틈으로 계속해서 따라 들어왔다. 토실이가 개미들의 냄새를 맡고 이리저리 뛰면서 짖었지만 보경이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맺힌 눈물이 눈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무릎을 감싸 안고 발아래까지 다가온 개미들을 내려보기만 했다.

보경이의 맺혔던 눈물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뭐야! 화단에 그렇게 큰 눈물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해!"


깜짝 놀라 눈물을 훔치며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토실이만 으르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어딜 보는 거야! 여기야, 여기!"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난히 머리가 큰 우두머리 병정개미였다. 뒤를 따르던 병정개미들은 보경이의 눈물 웅덩이 주변을 빙빙 돌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기다란 더듬이로 자신의 머리에 떨어진 눈물을 닦았다.


"지금 네가 말한 거야?"

"그럼, 여기 우리 말고 누가 있어. 너 때문에 우리가 길을 잃어버렸잖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 미안해."

"미안하다면 다야! 우리가 길을 잃었으니 책임을 져야지!"


우두머리가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자 토실이가 뒤로 물러나 꼬리를 감췄다. 깜짝놀란 보경이의 눈에도 눈물이 다시 맺히면서 뚝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 마이! 제발 그만 울라고!"


병정개미들은 보경이의 눈물폭탄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러더니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하나 둘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인 우두머리가 보경이를 올려보며 더듬이를 길게 뻗었다. 그러자 병정개미들이 보경이의 발등에 올라서서는 하나 둘 다리를 타고 얼굴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보경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점점 더 많이 쏟아져 내렸다. 병정개미들은 눈물에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지면서도 계속 기어올랐다. 그러더니 어느새 보경이의 뺨에까지 다다랐다.

보경이의 눈까지 기어오른 병정개미들은 커다란 이빨을 벌려 위아래의 눈꺼풀을 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이 감기면서 나오던 눈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병정개미들의 이빨은 아주 강력했다. 마치 바늘로 터진 이불을 꿰매듯이 천천히 그리고 아주 단단하게 물었다. 드디어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는 두 눈이 모두 붙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토실이는 낑낑대며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눈물자국이 선명한 뺨과 감긴 눈에는 병정개미들이 달라붙어 우두머리의 명령만 기다렸다.

병정개미들은 보경이의 눈을 꼭꼭 물어 쏟아지는 눈물을 막았다.

"우리가 다시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우두머리가 소리를 지르자 개미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따끔거리던 눈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두 눈은 개미들의 집게가 그대로 물고 있어서 뜰 수가 없었다.


"길을 찾으면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해 줄게."

"알았어. 아무튼 미안해."


바람이 불더니 보경이의 머리 위로 벚꽃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벚꽃잎에 맞아 떨어지는 병정개미도 있었고 빠른 속도로 기어내려 가는 개미들도 있었다. 병정개미들은 우두머리의 뒤를 쫓아 담벼락에 난 틈으로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두 눈은 병정개미들의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어서 떠지지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땅바닥을 더듬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어어, 그리로 가면 안돼!"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어? 넌 누구야?"

"나야, 나."


토실이가 보경이의 뺨을 핥으며 말하고 있었다.


"토실아."


토실이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왠지 토실이가 커진 느낌이었다.


"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어떻게 하지?"

"다 병정개미들 짓이야. 우두머리를 찾아야 해."


토실이가 보경이의 치맛자락을 물고 당겼다.


"왜, 어디로 가려고?"

"개천가에 개미들이 많았잖아. 거기 가서 물어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너 밖에 나가는 거 싫어하잖아."

"괜찮아. 네 눈을 뜨게 하는 게 더 중요해. 어서 내 꼬리를 잡아."


무릎을 털고 일어나 살랑거리는 토실이의 꼬리를 더듬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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