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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Oct 23. 2024

갈비찜

mayol@hairpin #2. 머리핀의 외출

잘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보경이는 은은한 조명을 받아 보일 듯 말 듯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는 천정의 그림자들을 손가락으로 그려가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갈비찜을 먹을 수 있겠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음식이었지만 엄마는 일 년에 고작 서너 번만 갈비찜을 해 주셨다.

아빠의 생일에 한 번, 오빠의 생일에 또 한 번 그리고 추석이나 설날에 한 번씩이 다였다.

정작 보경이의 생일에는 며칠 전부터 졸라야만 겨우 얻어먹을 수 있는 갈비찜이었다. 하지만 내일은 분명히 갈비찜이 나올 게 뻔했다. 오빠의 열 번째 생일이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운 보경이가 입맛을 다시며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자 토실이가 졸다 말고 고개를 들어 보경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보경이의 팔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게 보였다.

토실이도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엄마는 음식장만을 하느라 부엌에서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출근하시는 아빠의 간식까지 한꺼번에 해야 해서 더욱 분주했다.

소파에 앉아 동화책을 펼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갈비찜 생각뿐이었다.

마루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토실이가 통통한 엉덩이를 들이밀며 소파로 뛰어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옮겨 토실이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으이구, 토실이."


엄마가 평소에 토실이에게 하는 말을 흉내 내며 토실이의 엉덩이를 만졌다.

하얀색의 토실이었지만 오른쪽 귀와 꼬리로 연결되는 엉덩이 부분에만 까만 털이 자라나 있어 자꾸만 만지게 되었다.

토실이는 보경이에게 엉덩이를 내어주고는 가만히 엎드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인데도 하늘은 노을처럼 빨갛게 번지고 있었다.

바람이 한 차례 불더니 벚나무에 열렸던 연분홍의 벚꽃들이 마당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비가 오려고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하네. 하늘이."


엄마는 혼잣말을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넥타이를 고쳐매며 안방에서 나오시던 아빠는 토실이를 보자 게걸음으로 거실 구석에 놓인 1인용 소파로 갔다. 그리고는 옆구리에 끼고 나온 신문을 펼치며 앉았다.

부지런한 큰 언니는 벌써부터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아빠 옆에 달라붙어 앉아 신문을 뚫어져라 보았다.

오빠와 작은 언니만 아직도 자고 있었다.


"여보, 애들 좀 깨워요."


아빠는 토실이를 피해서 작은 언니를 깨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큰 언니는 아빠가 놓고 간 신문에 코를 파묻었다.


"언니, 신문에 뭐라고 쓰여 있어?"

"몰라."

"그런데 왜 신문을 보고 있어?"

"신문 냄새가 좋아."


신문지에서 갈비찜 냄새가 난다면 모를까 고작 종이기름 냄새에 열광하는 큰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오늘 갈비찜 할 거야?"


부엌을 향해 몇 번이고 물었지만 엄마는 보경이의 말을 듣지 못하고 이리저리 주방을 옮겨 다녔다.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아빠에게 떠밀려 작은언니와 오빠가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빠, 오늘 우리 갈비찜 먹어요?"


아빠는 토실이를 견제하며 작은언니와 오빠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언니, 언니. 오늘 우리 갈비찜 먹어?”


신문에 코를 파묻고 있는 큰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대답은 않고 대뜸 욕실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 금리가 뭐야? 금리가 오른데. 금리가 뭔데 올라?"


큰 언니의 말을 들은 아빠가 황급히 욕실에서 나와 큰 언니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선채로 신문을 받아 부채 펴듯이 확 펼쳤다.


"허… 이게 벌써 몇 번 째야."


큰 언니는 아빠가 보고 있는 신문 끝을 잡고 되물었다.


"아빠, 금리가 뭐야?"

"어,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주어야 하거든. 원금과 함께 이자까지 갚아야 하는 거지. 그 이자가 금리라고 생각하면 돼. 그게 높아진다는 얘기야."

"원금이 뭔데?"

"음… 만약에 네가 아빠한테 천 원을 빌린다고 생각해 봐. 그 천 원이 원금인 거야. 그러면 너는 아빠한테 얼마를 돌려주어야 하지?"

"당연히 천 원이지."

"그런데 아빠는 너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천백 원을 갚으라고 하는 거야.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백 원의 이자를 붙여서 말이야."

"왜?"

"어… 그러니까…"

"천 원을 빌렸는데 왜 백 원을 더 받으려고 하냐고!"

"음… 어… 아… 그니까… 그럼 십원만 더 받을까?"

"아니야. 안 빌릴래. 아빠, 나빠!"


아빠는 토라져있는 큰 언니를 달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보경이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엎드려서 눈을 감고 있던 토실이도 보경이를 따라 꼬리를 흔들며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엄마, 엄마. 우리 오늘 갈비찜 먹냐고!"


엄마는 당겨지는 치맛자락을 보면서도 과일만 자르고 있었다.

출근 전에 아빠가 꼭 드셔야 할 사과였다.

화가 난 보경이가 이마로 엄마의 허벅지를 들이받았다.

토실이도 꼬리를 연신 흔들어대며 엄마와 보경이 주변을 맴돌았다.


"아니, 얘들이 오늘 왜 이래. 엄마 일하는 거 안 보여!"


엄마가 핀잔을 하자 토실이가 짖었다.


"야, 넌 왜 부엌에 와서 짖는 거야. 얼른 나가지 못해!"


보경이는 엄마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씩씩 거렸다.


"여보, 보경이랑 토실이 어떻게 좀 해 봐요. 이러다가 다치겠어요."


그제야 아빠는 펼쳐 든 신문을 큰 언니에게 주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부엌으로 들어왔다.

언니는 다시 신문에 코를 박았다.

아빠는 토실이를 피해 보경이를 번쩍 들어 안고 거실로 나왔다.

토실이는 아빠의 양말을 앙증맞은 이빨로 물으며 쫓아 나왔다.

아빠가 보경이를 소파에 다시 앉혔을 때는 보경이의 눈에 맺힌 눈물이 금세라도 터질 듯했다.


"어? 너 왜 울어?"


아빠가 커다란 엄지손가락으로 보경이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보경이의 콧구멍이 더 커지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두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와중에도 보경이의 표정은 엄숙하기만 했다.

아빠가 출근하자 엄마는 학교에 갈 큰 언니의 가방과 유치원에 갈 작은 언니와 오빠의 가방을 챙기느라 또 한 번 전쟁을 치렀다.

보경이의 다리에 턱을 괴고 엎드린 토실이가 보경이의 빨개진 눈을 바라보았다.

낮아진 구름 사이로 노란 볕이 거실로 밀려 들어오자 소파에서 뛰어내린 토실이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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