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ol@hairpin #1. 머리핀의 외출
“토실아, 밖에 뭐가 보여?”
“응. 바람에 벚꽃이 날리고 있어.”
“우리 집 벚꽃처럼?”
“응. 우리 집 벚꽃처럼.”
보경이는 얇은 눈꺼풀을 통해 옅하게 들어오는 빛을 향해 앉아 있었다.
창가에는 토실이가 앉아 보경이의 손에 닿을 듯 말 듯 꼬리를 흔들었다.
창밖에서는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창문은 커?”
“아니, 작아. 우리집에 있는 유리창에 비하면 아주 작은 창이야.”
“또 뭐가 보여?”
“마당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아. 자전거는 한 대고 다른 애들은 자전거를 탄 아이를 쫓아다니고 있어.”
“하하. 자전거를 서로 타려고 하는구나.”
“그런 거 같아. 고양이 한 마리가 담 위에 서서 아이들을 내려보고 있어.”
“어떻게 생긴 고양이야?”
“우리 집에도 가끔 오던 고양이 같아. 콧잔등에 상처가 있고 왼쪽 귀가 약간 찢어져있어.”
“아, 그 길고양이구나. 내가 먹이도 주고 그랬는데. 그럼 여기서 우리 집이 가까워?”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여기가 네가 태어난 집이 맞아?”
“응. 맞아. 내가 태어나고 얼마 있다가 엄마가 사라졌어.”
“사라져?”
“응. 여기 주인님이 데리고 나갔는데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어.”
토실이는 꼬리를 흔들다가 잠시 멈추곤 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래층에서 반장의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신입생! 너 내려와. 애들 소개해줄게.”
토실이가 창문턱에서 보경이의 무릎으로 그리고 다시 마룻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보경이의 발목에 꼬리를 갖다 댔다.
벽을 더듬으며 토실이의 꼬리를 따라 조금씩 발을 내디뎠다.
계단이 나오자 꼬리로 보경이의 발등을 탁탁 내리쳤다.
오래된 쇠붙이 냄새가 나는 철난간을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갔다.
‘하나, 둘, 셋, 넷… 일곱, 여덟.’
마음속으로 계단의 수를 세었다.
계단에 내려서자 토실이가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고 반장이 보경이의 팔목을 힘껏 잡아끌었다.
벽에 튀어나온 선반에 여러 차례 머리와 몸을 부딪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끌어당겼다.
마루 끝에 다다르자 철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눈으로 밝은 빛이 연하게 스며들었다.
자전거가 삐그덕 대면서 달려가는 소리와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가 뒤죽박죽 들려왔다.
“자, 여기는 새로 온 신입생이야.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반장은 빨리 대답하라는 듯이 보경이의 손을 잡아챘다.
보경이는 자신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보경이야. 김보경.”
“하하하하하. 어딜 보고 얘기하는 거야. 여기야 여기. 하하하.”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이 아이는 우리 식구야. 그러니까 잘 보살펴 주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주인님에게 혼날 줄 알아!”
반장이 문을 닫고 들어가자 다시 자전거가 달리는 소리와 아이들이 쫓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로는 바람에 흩어지던 벚꽃들이 하나 둘 떨어져 앉았다.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