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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Nov 11. 2024

많이 먹어야 찐다

mayol@골계전 36. 미래를 위한 시행령

아침나절에 골목길에 나가보니 아이 하나가 투정을 부리며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지난밤의 숙취로 머리가 띵했다가 아이를 보자마자 활짝 개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싫은 모양이었다. 엄마는 자꾸만 아이의 손을 낚아채고 아이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유치원 가기 싫어. 엄마랑 놀고 싶단 말이야!"

"얘가 오늘 왜 이래. 얼른 따라와."


'엄마는 혼자 놀고 싶다.'


웃음이 나오는 모녀의 실랑이었다.

작업실로 들어서면서 내 머릿속의 시계는 자꾸만 뒤로 돌아갔다.


1953년 6.25가 끝나고 휴전선이 그어지자 체제를 달리 한 남북은 희망을 꿈꾸며 척박한 환경에서도 애를 낳기 시작했다. 이때가 베이비붐 시대의 서막이었다. 조금 안정되자 1958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이로 인해 인구조사를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등교를 하면 선생님께서 가정환경조사서 같은 것을 나누어주어 빈칸을 채우게 했다.


1. 집에 TV가 있나요? (있음 / 없음)

2. 집에 전화기가 있나요? (있음 / 없음)

3. 아버지의 학력은 어찌 되나요? (국졸 / 중졸 / 고졸 / 대졸)

4. 어머니의 학력은 어찌 되나요? (국졸 / 중졸 / 고졸 / 대졸)

5. 아버지의 직업은? (회사원 / 교사 / 공무원 / 무직 / 기타)

6. 형제자매는 몇인가요? (한 명 / 두어 명 / 서너 명 / 대여섯 명 / 일고여덟 명 / 그 이상)

등등.


그 아이들이 조금 커서는 이발소에 다녔는데 이발소마다 이런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다.

이발 후 머리를 감기 위해서는 타일을 붙인 시멘트 세면대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는데 그 위에 걸려있던 그림들이다. 청진동 이발소에 단골로 다니던 역대 대통령들도 이 그림 앞에서는 항상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돼지가족의 수가 몇인지 세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냥 평범한 우리들 가족의 모습이었으니까.

새끼들이 죄다 어미 배에 달라붙어 젖을 빨고 있는 풍경이 각 가정마다 벌어지고 있던 현실이었다. 보통 사 남매에서 많으면 예닐곱명의 자식들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면 엄마와 아빠는 이마의 땀을 씻어 내리면서도 미소를 짓던 고래 쩍 풍경이었다. 그저 먹는 게 남는 거다 싶어 형제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먼저 반찬에 젓가락과 숟가락을 찔러 넣어야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행복은 일용한 양식에서 시작되니까.


청마의 애인이자 아름다운 시의 모델이 되었던 시조시인 이영도가 1975년 경에 [모범부락의 아이들]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四月의 하루를 택하여 우리 일행은 어느 모범부락을 보려 길을 떠났다.

    포장이 되지 않은 시골 길을 반나절 동안이나 달려서 닿은 그 곳은 농가農家 오십호五十戶 안팎의 아담한 마을이었다.

    소나무보다 잡목이 더 많은 뒷산은 신록이 한창 피어 오르고, 높다란 나무가지 사이엔 마을 청년들이 만들어 달았다는 새둥주리가 고운 인정으로 눈에 와 닿았다.

    마을을 찾아 든 우리들은 먼저 그 곳 동사洞舍로 안내를 받았다.

    흡사 학교 교실만하게 세운 洞舍엔 칠파도 의자도 준비되어 있고, 정면 벽에는 마을 운영에 관한 여러가지 계획이 도표로 작성되어 그 마을 지도자의 세련된 설명과 아울러 마을의 실태와 미래상未來像이 한 눈에 보이듯 선명했다.

    뒷쪽으로 나즉히 山을 엎고, 앞으론 江을 바라보는 그 마을은 많지 않은 人口와 더불어 자연조건이 이상향理想鄕을 꾸미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집집마다 깨끗한 부엌시설과 정결한 골목길과 하수도 시설, 그리고 몇 군데 설치된 공동변소까지 세심하게 짜여져 있고 축우畜牛와 양잠養蠶의 부업에서 생산되는 퇴비가 전답田畓을 비옥하게 할 뿐더러 하천河川을 쌓아 농토農土를 넓히는 등, 실로 그 고장 농민들의 피나는 노력과 단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질서 정연한 마을의 모습과 뒷산 나무가지에 달아 놓은 새둥주리의 고운 마음씨와 사랑이 정작 그들의 자녀子女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귀하고 소중한 어린이들! 장차 조국祖國을 맡겨야 할 子女들의 양육에는 얼마나 등한했든지 그 마을 운영 계획을 설명하는 속에도 未來의 설계에도 거기(에) 대한 언급言及이 없었다.

    마을을 가꾸기에 지쳐 子女를 돌볼 여력餘力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으나 마을보다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인간상人間像이 창조되지 못한 곳에 새로운 마을은 무의미 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오밀조밀 물려 나와서 서울손님들을 구경꺼리처럼 바라보는 까칠한 어린것들을 본 나는 먼저 그들의 교육에 마음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 청년을 부뜰고 어린것들이 책보와 도시락을 들고 먼 길을 걸어야 되는 통학길, 비바람이 잦은 여름철이나 눈보라 치는 겨울철의 고생이 얼마나 힘 겨웁겠는가 생각하니 기가 차 오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렇게 해서 배우는 글공부가 과연 얼마만큼의 능률로서 그들의 슬기를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子女들의 교육문제를 뒷전에 돌려 두고 마을 美化와 농토 개발에만 정력을 쏟드리는 그 부락 어른들의 사고思考! 조상祖上 대대代代로 물려 받은 ㄱ난을 씻는 길이 아무리 급하고 고달플지라도 우리는 먼저 우리의 후세後世 양육養育에 정성을 써야 할 것이며, 畜牛와 養蠶에 못지 않게 아이들의 건강헤 최선最善을 쏟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진정 모범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오늘의 우리에게는 子女 養育의 이상적理想的 실행實行보다 더 급하고도 귀貴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느 국가 민족도 자라나는 後世들의 교육에 그 理想과 희망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침 그 부락에는 교실로 써도 될 만한 洞舍가 이미 마련되어 있으니 만큼 조금만 시설을 보충하면 국민학교 三學年 까지의 교육은 마을 자체에서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四學年 쯤의 나이가 될 때, 읍내 학교에다 편입을 시킬 수도 잇지 않겠는가?

    나는 우리를 안내하는 靑年에게 올해의 계획에는 위선 二學年짜리 간이학교를 계획하여 연차적으로 시설보충을 하도록 하면 어떻겠느냐 물었더니 그 일엔 미처 생극을 돌리지 못했다면서 앞으론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기우려 보겠다고 의견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 靑年의 동의同意가 진정 어린아이들을 관심關心함에서 였는지 아니면 손님의 關心에 대한 대접에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마을이 참다운 뜻의 새로운 발전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간이학교 설치부터 서둘러야 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교육대학 졸업을 하고서도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교사 자격 보유자들이 많다고 신문에서 읽었다. 당국에서는 그런 분들에게 농촌의 봉사를 권유하는 뜻에서도 임지 배당을 해서 위선 사랑방 서당식이라도 간이학교를 서둘러 주었으면 싶어진다.

    생애生涯의 半을 교직敎職에 관계한 나의 생리生理는 우리 농촌의 어린이 교육엔 집착같은 관심關心이 늘 가슴에 고여 있는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모범부락의 어린것들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기만 하는 것이다.


이 글은 국가가 장려하는 모범부락에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정책이나 양육정책은 미흡했던 원시시대의 글이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치인들은 교육보다는 포퓰리즘을 우선시하고 국방이니 복지니 해가며 예산을 나누기는 하지만 정작 양육과 교육정책 세부안에 있어서는 획기적인 변화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뒷북도 제대로 못 치고.

과거의 어떤 최고위직 선출직 공무원은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중점을 두고 학원사업이 무궁한 발전을 이루도록 협력하는 바람에 공교육과 교권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게 만들어서 지금은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 버렸다. '바다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려주는 바람에 도박게임에 물든 아이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 이후 학생들은 학교 가서는 자고 학원가서는 일타강사에게 배웠다. 사교육비가 감당이 안 되는 부모들은 온갖 아르바이트에 내몰리기도 하고 아예 아이 낳는 걸 포기해 버린 세대가 지금의 청장년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자녀 수, 학력, 국적 등에 연계한 웃지 못할 입안에 관심을 기울였고 일부는 그런 혜택을 스스로에게 주기도 했다.


1975년과 2024년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져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걸까.

이러면 어떨까.

선거로 선출직 공무원을 뽑기 전이나 그 이후에 아래의 사항을 필수로 준수하게 하는 거다.


1. 대한민국 정치인의 자녀는 임기중에 대한민국 국적을 ... (메모 중 의구심이 생겨 이후 문구 삭제)

2. 대한민국 정치인은 한국인의 정서를 최대한 이해할 만한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국내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3. 대한민국 정치인은 교육부문과 사회/복지 부문에 대한 일정한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4. 대한민국 정치인은 분야와 상관없이 1년에 30시간 이상 교육기관에서의 기간제 근무를 해야 한다.

5. 양육과 교육부문에 실효성 있는 법안을 낸 정치인에게는 정치적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차기 선거에 유리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가점한다.

6.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그 배우자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고도의 정신과 상담을 먼저 통과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검사에 임하고 그 결과물을 공개하여야 한다.

7. 당선 이후 축적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킨 정치인은 연임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단, 이런 행동이 공황장애나 정신질환에서 기인한 발작적 행동은 아닌지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을 첨부하여야 한다.

8. 대한민국 정치인 중 교육부에 종사하는 선출직 공무원은 체육/미술/음악 등의 교양과목을 포함한 고등학교 전 과목 평균 5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 교육부 장관은 55점 이상.


이러면 출산이나 교육부문에 있어서 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이러면 정치인들의 머리가 좀 맑아질까.

이영도의 시선에서 잠시 산책을 해 본 아침이다.

나는 오늘도 따스한 햇볕이 드는 골목길의 잔잔한 풍경과 교권과 교육의 질이 듬직한 학교와 대학가의 향긋한 냄새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풍경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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