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실력 살아 있네
다음 날 아침.
딸내미 출근시키고 한숨 놓으며 지난 시간들을 복기해 본다.
가을이 시작되며 반갑지 않은 절친께서 찾아오셨다.
늘 다니던 집 앞, 의원에 가서 치료받기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나 있었다.
선생님께선 더 이상 항생제를 쓸 수 없다며, 2차 병원을 추천하셨지만,
병상생활에 넌더리를 내는 나는 '고작 감기일 뿐인데'하며 계속 미루고 있었다.
결국, 선생님께선 강제집행에 나섰다.
직접 전화해서 입원 요청을 해놓으시고, 내 등을 떠미시면서 토를 다셨다.
"폐에 뭐가 조그맣게 보이니, 꼭 폐시티 찍어보세요."
링거줄의 속박은 시작됐고 입기 싫은 환자복을 입은 채 각종 검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치료가 시작 됐다.
다행히 감기는 점점 호전되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아름답게 물들었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나목이 되어 있었다.
이미 겨울로 접어든 것이다. 달력을 보니 12월 초가 되어 있었다.
열흘 남짓인데..., 두어 달쯤 지난 느낌이었다.
여러분은 "12월 초" 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크리스마스, 연말, 선물?
나는 "김장".
우리는 해마다 12월 초에 김장을 해오고 있었다.
산수골 밭에서 무럭무럭, 아니 이미 다 자라서 동여매 놓여 있을 배추가 쥔장을 지둘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김장을 해야 한다.' 생각이 정해지니 마음이 급해졌다.
선생님께 하얀 거짓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곤 집안에 피치 못할 일이 생겨서 퇴원을 청한다고 말씀드렸다.
역시 선생님께선 "아직"이라시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
그리고 혹여라도 몸이 힘들어지면, 즉시 달려와 입원하겠노라고 선생님을 설득시켰다.
퇴원 후 즉시, 여사님을 모시고 산수골로 달려가 성공적으로 "김장"이라는 거사를 치렀다.
한편, 정성껏 지으심이 느껴지는 약을 열심히 먹으면서 몸이 편해짐을 느꼈다.
나에게 맞는 감기약을 처방해 주신 선생님을 만난 것에 감사했다.
그런데 암까지 발견해 주셨네...,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사촌 올케언니였다.
“1588-**** 빨리 전화하고.
예약 잡아놨으니 기다려.”
서울대학병원 전화번호였다.
'환자 본인만이 해야 할 절차가 있나 보다' 하며, 전화를 하고 언니께 알렸다.
날짜가 잡히고 일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입원 2012년 1월 2일, 수술 1월 4일.
'야~~ 언니 실력! 살아 있네...'
한편으로 언니의 아픔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 찌릿해왔다.
"언니!! 감사합니다."
며칠 후 또 반갑지 않은 연락이 욌다.
제출한 검사결과를 보니 폐에도 뭔가가 보인다며 암병동의 호흡기내과로 내원하라는...
'그동안 긴 감기로 고생했으니 폐에 뭐가 보이는 게지...' 하면서도
'근데 왜? 암병동이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기인 긴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혜화동 암 병동의 호흡기내과로 향하는 아들과 나의 발걸음도 마음도 납덩이가 되어 무겁디 무거웠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50년 지기 천식으로 감기에도 취약하다는 점, 그간의 병력들을 블라블라 말씀드리며
나는 비참함 속에 구겨져 내동댕이 쳐졌다.
'그게 보였을까?' 김교수님은 따뜻하게 손을 잡주시며 기관지내시경검사 오더를 내리셨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직접 볼 거야."라는 말씀과 함께.
얼어붙었던 마음이 살짝 따뜻해지며, 뭉클했다.
검사 날자는 12월 28일로 잡혔고, 1박 입원을 필요로 했다.
원무과에 내려가 병실을 알아보니, 병실은 병원 통 털어 딱 1실이 남아 있다는 거다.
점입가경으로 하루 입원료, 150여만 원.
"우유유~ 이거 비싸도 너무 비싸잖아 이걸 해야 하나? 미룰 여유도 없는데..., 어쩌지?"
옆에 있던 아들이, "인생 뭐 있어? 그냥 해. 내가 반 낼게요." 한다.
순간, 마음속에서 ♡♡가 뿅뿅.
"그래 까이꺼"
문득, 수십 년 전 들어 놓았던 보험이, 떠올랐다 갑빠에, 힘이 빡!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기관지내시경" 검사를 위해 입원을 하게 된다.
초 호화병실에...
“주님 제발 이 고비 별 탈없이 넘기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