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만남 뜻밖의 방문자

그 겨울 내 몸속에서 낯선 덩어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by 산수골지윤핼미

유난히도 추웠던 그 겨울.



나는 암이란 녀석과 첫 대면을 해야 했다.
2011년 12월 20일.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거리엔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으로 반짝였고, 온 세상 골목 구석구석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난무하는 겨울 저녁.

난 아무런 행선지도 없이 그저 멍하니 차를 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분하고, 억울하고, 누군가가 원망스럽다고도 했다.

공연히 값비싼 옷을 몇 벌씩 지르기도 하고, 허공에 대고 마구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했다.


갑상선 결절 진단을 받았던 친구의 이야기다.


나는 그 친구를 끌고 서대문의 독립영화관에 가서 추억의 명화를 보고,

효자동의 유로구르메에서 가지그라탱과 피자를 먹기도 했다.


종일토록 전철을 몇 번이고 갈아타며 그렇게 친구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내 깜냥의 애씀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사촌 올케언니였다.


"잘 지내지?
짧은 안부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언니는 언제나,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다.'



"왜? 무슨 일야?

다급한 언니 목소리에

나는 한참을 추스른 뒤에야 겨우 말했다.





언니, 나 암 이래
다음 주에 수술하기로 했어



우물거리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덧붙였다.

"집도 가깝고, 부인과는 잘한다는 2차 병원이니까..."


2차 병원이라는데 애써 힘을 주며, 하지만 언니는 여지없이 화를 냈다.


"어떻게 그런 큰일을 혼자서 결정하냐? 고모 몸이 얼마나 소중한 줄 몰라? 혼자 몸이냐고..."


전화는 겼다.




이상하게도 난 마음이 후련했다. 심지어 가쁜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언니께 털어놓아서였을까...?'


'어떻게 알려야 하나...'

그 생각이 내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올 것이 온 거야.


넌, 40세 이후로 덤으로 사는 삶이라며,

주님께서 "오너라" 하시면 "ok"하고 달려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잖아.


암이면 준비할 시간도 주어진다며... 예상보다 선전한 거지...'




즉시 핸들을 꺾었다.






집에 도착하니 마침 딸내미가 일찍 퇴근해 와 있었다.

"엄마, 오늘 병원 가는 날이지? 뭐래?"


딸은 지난주 감기로 입원했다 퇴원한, 결과를 묻는 눈빛로 묻는다.



"응... 그게~ 나 유방암 이래.

입원했을 때 검사를 많이 해놔서 수술 전 검사가 다 되어있다네. MRI만 찍으면 된다고.


크리스마스면 어떠냐면서,

한 달이 지나면 검사해 둔 자료들도 못 쓰게 된다고 해서 다음 주에 수술하기로 했어."


나는 단숨에 속사포로 털어놓았다.


딸은 섭섭하리만큼 담담하게 말했다.


"그 병원 유방암 수술 잘한대. 지니엄마도 거기서 수술하셨잖아~"


"응? 그랬어?"

"응. 결과도 좋으시대...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그제야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우리는 암 이야기를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담담하게 나누고 있었다.


"아빠한텐 아직 말하지 말자.

괜히 놀라시니까.


입원 결정 되면 그때 이야기하자."


우리는 주말부부였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말을 맞췄다.


그날 밤.


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온종일 놀라고 힘들었던 몸과 맘이 그제야 무너져 내린 것이다.


딴엔 에지간히 지쳐 있었나 보다.





그렇게 2011년 겨울,
내 몸속에서 작은 암 덩어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리움" watercolor on paper mixed media 40.9*4.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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