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내 갑바에 힘 빡 실어준 존재
보험은 나에게 옛 동화에 나오는 산신령께서 내려주신 금도끼, 은 도끼였다.
2012년, 3월이면 내가 만 60세가 되는 해였다.
그동안 보험이 주는 든든한 맛을 본, 나는 만기가 다가오자.
우연히 걸려온 텔레마케터의 권유에, 보험 상품중 만기 환급금 없는 소멸성 보험에 가입했다.
이들은 타이밍도 절묘하게, 금도끼와 은도끼로 나에게 와주었다.
보험은 내 삶에서, 간단한 계약이 아니라,
절망의 길목에서 내 갑바에 힘 "빡" 실어준 존재였다.
기억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아이들이, 서너 살이던 무렵.
나는 그때 치질로 고생했었다.
계속 출혈이 심해져서 인근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대장암이 의심된다며, 대장 내시경 오더를 내리셨다.
병원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5월의 햇살은 화창하게 빛났고, 온 세상은 그 빛아래 평화롭게 물들어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고, 다들 행복해 보였다.
매일 걷던 익숙한 길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이방인이 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나만 낙제네...'
난 낙오자란 생각에 한참을 휘둘렸다.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아직 아기들인데."
그때 딸은 유치원의 유아반, 아들은 누나 따라 영아반에 다니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강아지 테리가 마당에 널브러져 있다.
난 경악했다.
'이게 뭐야~' 상서롭지 못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았다.
'테리야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동물병원에 왕진을 부탁했다.
선생님이 오셔서, 링거주사를 주니 벌떡 일어섰다.
테리는 임신 중이었다. 영양부족으로 이런 사달이 났던 것이다.
테리는 6개월마다 동네 총각 강아지들의 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매일 왕진료가 버거운 나는
'너는 보험도 없는데 어쩌니?' 이렇게 푸념하다,
곰국을 끓여서, 우리 가족도 먹고 테리도 먹여야겠다란 생각이, 퍼뜩 올라왔다.
곰국을 끓여 한 숟갈, 한 숟갈 떠 먹이니,
테리는 링거 맞았을 때처럼 힘없이 쓰러져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나는 곰국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애궁, 뱃속에 생명을 키우며 혼자 애쓰고 있었구나.'
테리 덕분에, 난 와중에도 고물고물 강아지들을, 상상하며 웃을 수 있었다.
'사랑꾼아~ 고마워.'
그때 나는 대장 내시경.
그 이름이 주는 "공포"앞에, 잔뜩 움츠러져 있었다.
이틀 후, 병원에서 준 물약으로 배속을 비우고, 검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 몇 분 앉아 계셨다.
어르신들은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젊은것이 어쩌나...' 이런 눈길로.
그분들 앞에서 난 이미, 대장암 환자가 되어 있었다.
그 당시엔 대장내시경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거꾸리 운동기구 같은, 기계 앞에 섰다.
낯선 기계 앞에 선, 나는 두려움 따윈 걷어버린 채,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난 "엄마"였다.
난, 선채로 기계에 묶여 있었고,
기사 선생님이 오셔서 기계를 아래, 위로 거꾸로, 좌우로 빙빙 돌렸다
"으윽"
그때 내시경검사는 그렇게 원시적이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보름 남짓 동안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통곡으로 점철된 밤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그때, 우린 아직 30대 초반.
경제적 기반도 아직이었을 때였다.
금전적인 걱정이 나를 엄습해 왔다.
그때만 해도, 암은 가산 탕진하고 죽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는 겨우 개발도상국가로 발돋움할 그때였다.
'아, 이럴 때 보험이라도 들어 두었으면 좋았을 걸!'
보험에 대한 간절함이, 저 깊은 속에서부터 끓어올라왔다.
정성을 다해 짓고 있던 나의성이, 단번에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완성도 되지 않은, 나의 성이었다
난, 이 사실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어, 홀로 속 앓이하며 버텨야 했다.
하필이면,
그 기간 동안 "어린이날"이 껴 있었다.
남편 친구들 가족과의 야유회가, 이미 예정된 상태였다.
어린이날 당일
한껏, 들뜬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쫑알쫑알 신바람이 났고,
남편도, 유쾌하게 교외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아~~ 이 그림, 너무 예쁘다...'
난 조수석에 앉아, 그 모습을 눈부신 듯 바라보다, 짐짓 환호하며 창밖 경치에 홀린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안경 밑으로,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그 녀석을 훔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만큼, 선글라스가 고마운 적이 또 있을까.
선글라스는, 나를 지켜준 방패였다.
보름 후, 결과를 보러 병원을 향했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선생님께선, 영상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곧, 돌아 앉으시며 웃음 띈 얼굴로, "암은 아니고 치질인데 수술은 아직 안 해도 됩니다."
선생님도 나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한참을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와락.
감사와 환희의 눈물이었다.
그 순간의 안도와 감사.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직은 앳되었던, 어느 봄날.
보름 남짓 동안,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마침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를 불러 당장 암 보험에 가입했다.
그 당시 암 보험은 만기가 60세, 80세로 설계되어 있었다.
"만기를 60세로 하자. 그 이후엔 자식들이 우리를 케어해 줄 거야."
당연한 듯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 보험이, 오늘 내 갑빠에 힘을 빡 주는, 고마운 역할을 할 줄 그땐 몰랐다.
더욱이, 내 생일이 3월이었기에, 진단금과 만기환급금까지 받게 되었다.
덕분에 호화 입원실도, 환경 좋은 병실도 쓰며, 나는 나에게 나름 "호사"라는 선물을 줄 수 있었다.
반갑지만은 않은 혜택이지만.
보험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었다. 절망의 순간 효자가 됐다.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보험", 하찮게 생각하시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해 두세요.
그 무게는, 예상보다 훨씬 든든하고 고마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