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준 눈빛들, 딸과 아들의 손길
머리카락이 나의 행로를 알리고 있었다.
베개 위는 매일 더욱 까맣게 물들어 갔고, 손에 잡히는 머리칼은 힘없이 빠져나갔다.
마침내 수술 전 입원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2012년 1월 2일.
새해가 밝자마자
거창한 신년 맞이 행사를 치른 셈이다.
링거줄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몸을 속박했고, 머리카락은 손에 잡히는 대로 뭉텅이채 수욱 숙 빠졌다.
TV에서 보던 장면은 너무 약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 현실은 훨씬 더 처참했다.
'아직 수술 전인데....' 왠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노교수님께서 회진 오셨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 절대 믿고, 걱정도 안 하는데... 머리가 이렇게 빠져요.”
노교수님은 조용히 웃으며 두피 클리닉을 연결해 주셨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후 피부과에 가서 처방받은 약은 두병이었는데 아침저녁으로 바르니 금방 머리카락 빠짐이 멈췄다.
신기하게도.
아침용 약은 엘. 크라넬 알파액 0.025%, 저녁용 약은 "마이녹실"이었다.
권교수님께선
“이 약을 꾸준히 바르면 나이가 들어도 지금 머리숱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의 말씀은
희망처럼 다가왔다.
이틀이 지나고, 수술날 아침이 왔다.
어젯밤 레지던트 선생님이 정성스레 꽂아둔
발등의 굵은 바늘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다.
침대에 실려 수술장 앞에 도착했다.
한 손에는 늘 수술실까지 동행해 주는 보라색 "세레타이드"가 들려 있었다.
그 녀석은 혹시 모를 상황에 천식을 대비한 내 절친이다.
괜스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울어?”
머리맡에 있던 남편이 싱긋 웃으며 짓궂게 묻는다.
“아니... 그냥.”
남편과 딸의 눈을 맞추고 아들은? 하는데,
급히 달려오는 아들이 보였다. 또 뭔가를 처리하고 오나 보다.
이번 프로젝트에 총대 메고 나서준 든든한 아들이다.
‘아들 얼굴 봐서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걱정 안 한다면서도 마음은 흔들렸나 보다.
세 사람은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차가운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이제, 나 혼자다.
맞닥뜨린 차가운 공기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성호를 그으며 위대하신 분께 나를 맡겼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한 뒤
유방에 굵고 기다란 대바늘을 마취도 없이 꽂았다. 자리가 깊어 위치표시하는 거란다.
"아악~".
잠시 기다리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기분 좋게 한숨 자고 일어나니,
내 가슴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고,
팔에는 작은 주머니들이 링거줄 아래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수술은 끝났다.
그 녀석은 떨어져 나갔지만 나는 제대로 '암환자'가 되어 있었다.
무통주사 덕분인지, 주사를 떼어낸 후에도 통증은 약했다.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데...
자궁수술땐 개복수술이었기에 형언키 어려운 고통이 계속되어 "다시는 수술 절대 안 한다."라고 했었는데
일이 전격적으로 진행되는 덕분에 이런저런 고민할 염도 없이 수술을 받고 말았다.
이 수술은 장기를 안 건드리니 그런대로 견디기 괜찮았다.
그제야 나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창경궁이 정면으로 내려다 보였다.
'와우~ 멋지다~, 와중에도 운이 좋았는 걸!
밖으로 달려 나가 창경궁 안을 거닐고 싶다. 하얀 눈 맞으며'
이곳은 초등학교 1년부터 3 년까지 봄소풍 오던 곳이었고,
여중시절엔 꽁꽁 얼은 춘당지에서, 알록달록 불빛 아래 야간 스케이트를 신나게 지치기도 했었던 곳이다.
이렇게 우리에겐 문화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저 너머엔...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까지의 추억이 빼곡히 쌓여 있다.
세례 받은 가회동성당도 있는데...
첫 영성체 받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 고향마을이 살짝 머리만 내민 채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잠시 추억에 잠겨 그리운 아빠도, 사촌오빠도 만났다.
마음이 따사롭게 데워지며 '주님께 감사!' 자연스레 성호를 그었다.
병원에 있는 4박 5일 동안 휴가를 낸 딸은 머리를 감겨주는 등 내 몸을 살뜰히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었다.
교육도 같이 듣고, 어디든 함께 했다.
마치 샴쌍둥이처럼.
아들은 운동해야 한다며 침대에서 나를 끌어내렸다.
나는 아들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병원 안을 헤집고 다녔다. 이상하게도 아들에겐 그리되었다.
'이래서 어른들께서 아들, 딸 다 있어야 한다고 하셨구나...'
그제서야 단 딸 하나 키워내신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딸이 암이라 해도, 수술한다 해도 아무 반응이 없으셨다.
인지능력 정상이시고, 스스로 일상이 가능하신 상태셨는데...
입원하면서 홀로 계실 엄마 걱정이 심했지만, 그땐 그 모습이 그렇게 서운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큰 충격으로 그러셨던 거 같다.
얼마나 인정하기 싫은 상황이었을지..., 지금 와서야 깨닫는다.
난 환우들과 어울리는 게 싫었다. 주치의 선생님 말씀만 듣겠다고 마음먹었기에.
각종 수많은 정보들이 무서웠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암환자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깨너머로 들려온 그녀들의 이야기 중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유방암과 자궁절제수술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빈궁마마님들께선 유방암에 신경 쫑긋하시고,
초음파검사 정기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대다수의 환우들이 10년 전 그 수술을 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