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방사선 그 보이지 않는 검

그 침묵은 더욱 낯설었다

by 산수골지윤핼미

방사선 치료가 시작됐다.



'방사선을 쬔다'


그 한마디는 낯설고 무서웠다.


종일토록 집안을 서성거리며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시간은 느린 배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둑해질 무렵, 난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와, 이렇게 추울 줄이야."

영하 15도. 예보되어 있었지만.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였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바람이 몰아쳤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작년에 사두고 한 번도 못 입었던 토퍼를 꺼내 입고 다시 길을 나섰다.

털 달린 모자는 머리까지 훈훈하게 감싸주었다.


'아~ 좋아라'
'이 녀석에게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찬스가 주어졌네.'


흐뭇 미소 날리며 유유자적하게 매운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나는 이 매콤한 공기가 뺨에 닿을 때의 느낌을 좋아한다.

왠지 그 매움이 나를 깨우는 듯했다. 이건 좀 과하지만.

버스 안은 훈훈했다.
안도감에 어깨가 풀렸다. 도퍼를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영하 15도란 숫자 아래, 세상은 모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사람도, 나무도, 건물까지도. 마치, 내 마음처럼.






방사선 실에 들어가 침대에 눕혀지고, 만세 자세로 팔을 위쪽으로 올렸다.
꼼짝없이 고정된 자세로 5분을 버텨야 했다.


'5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팔이 저려왔고, 어깨는 심하게 쑤셨다. 그러나 정작 방사선은 별 느낌이 없었다.


그 침묵이 더욱 낯설었다.

치료가 끝나고 나오니 사방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함춘 서재에서 책장을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내용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이 주어진 시간들을 즐겨보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늘 읇조리던 구절을 떠올리며.


잠시 후, 딸의 하얀색 차가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차로 향했다.

"엄마, 어땠어? 받을 만 해?" 딸은 눈을 동그랗게 하고 물었다.

나는 최대한 씩씩하게 대답했다.

"응. 팔 아픈 것만 빼면 괜찮았어."

"우리 맛있는 곳에 가서 맛난 저녁 먹자."


아들이 가르쳐준 곳. 유로구르메로 향했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지고,
우린 '맛있다.'를 연발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열심히 움직였다.


딸내미의 '종알종알'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느 음악 소리보다 듣기 좋았다.


'행복하다!


얼마 만이야? 딸과의 데이트.' 아픔이 선물해 준, 뜻밖의 행복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맛집 순례'는 아름답게 시작됐다.
친구들도 딸을 거들겠다며 나섰다.


"갸 숨통도 틔워줘야지..." 하며,


연이. 유치원 때부터 함께 울고 웃던 친구다. 늘 내 일에 앞장서 나서주는 '오지랖퍼.'

전시회 오픈 때도, 그 긴 검사 시간에도 곁을 지켜주었다.


이번에도 한몫 단단히 해준 고마 운 친구다.

S사 입사 동기였던 친구 봄이도 있었다. 이른바 우린 사회에서 만난 친구다.

맡은 업무는 달랐지만 묘하게 통했고, 닮고 싶은 점이 많은 친구이기도 하다.


그녀는 나를 종로에 자리한 '탑 클라우드'로 데려갔다.
그곳 분위기를 좋아해서, 우린 가끔씩 점심 약속을 그곳에서 하곤 했었다.


내가 좋아하던 곳을 잊지도 않고...


저녁시간엔 거금이어서 엄두 내지 못하던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화려한 야경을 즐기며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섬세한 친구에게 감동하며...






어느 날 난 조금 일찍 도착해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석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한 귀퉁이에 앉아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젊고 가냘픈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난 다가가서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그녀도 노교수님께 수술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울어요?."


그녀의 첫마디는 "아이가 어려요."였다. 십 수년 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런데 왜? 노교수님께서 훌륭하게 수술하셨을 테고, 크기도 1cm 정도였다며...

잘못되지 않을 건데 왜 우냐고요?"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덕분에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내 차례가 되어 일어서려는데.


"언니, 혹시 전번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나는 흔쾌히 가르쳐 주었고,
후에 그녀는 내 집에도 두 번이나 방문해 주었.


그 어리다던 아기가 대학 입시생이 될 즈음까지 관계가 이어졌었다.


우리는 답답한 심정을 나누기도 하고, 정보도 나누면서, 다정한 자매처럼 그렇게 지냈다.






이렇게 날들이 지나고 마지막 주간이 왔다.


이미 방사선에 지친 피부에선 진물이 나고 주위는 발갛게 부어올랐다.

고약한 냄새와 아픔이 지속되는 가운데 3회가 연장됐다. 끔찍했다.


그 최후의 3일은 그야말로 고통의 정점을 찍고, 긴 고난의 여정도 끝이 났다.


기세 등등 했던 동장군은 물러갈 채비를 하고

어느새 봄이 오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피부과를 찾아 두피크리닉을 받을 여유도 생겼다.


병원 문을 나서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공기는 상쾌했고, 세상은 밝은 빛을 내며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토닥토닥 수고 많이 했다'는 듯이.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난 참, 좋은 친구를 많이 둔 복인이구나.'


딸과의 데이트, 친구들과의 맛집 순례, 낯선 젊은 친구까지.

아픔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 소중한 관계들이 있었다.





방사선 치료는 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선물들을 받았다.





"순천만습지의 해어름" watercolor on paper mixed media 53.0*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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