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언어
비엔날레로 열리는
창미회전이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렸다.
창미회전시를 마친 뒤 나는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게 된다.
서아네가 이사한 후,
나는 그곳을 향하는 길을 유난히 사랑했다.
남산터널을 지나 사직터널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내 청춘이 배어 있었다.
도로가 막혀도 지루하지 않았다.
달콤 쌉쌀했던 옛이야기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말을 걸어왔으니...
'흠~ ' 이들이 뿜어내는 향기로움.
"고향"이라는 따스한 얼굴로 늘 나를 보듬어주었다.
창미회 전시에 들뜬 나날도 잠시,
하원하는 서아를 맞으러 가다 다친 다리는 두어 달여의 시간을 집 안에 묶어 두었다.
그러나 불편 속에도 웃음은 피어났다.
에프론을 두른 남편이 차려주는 식탁은 선물처럼 고마웠다.
난감한 속에도 즐거움이 자리를 틀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수골의 고요를 흔들어 깨는 전화 한 통.
낯선 큐레이터의 전화를 받았다.
창미회 도록을 보았다며 내 화실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멀리 산수골까지 찾아온 그녀는,
루브르의 가루솔 아트 쇼핑몰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다.
루브르의 아트페어 초대. “완치의 선물”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저 다리가 긴 비행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망설임은 길었지만,
마침 시즌을 끝낸 아들의 한마디 “엄마, 제가 함께할게요.” 그 순간 나는 날개를 단 듯 가벼워졌다.
망설임은 사라졌다. 그림을 들고 파리로 가는 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공항의 혼잡은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숙소를 정하고,
우리는 모네의 지베르니와 쟌다르크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루앙을 거쳐,
꿈에 그리던 에트르타에 도착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벅참"이 있었다.
모네와 꾸르베가 즐겨 그리던 코끼리 절벽이 있는 곳.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하던 그곳.
그러나 에트르타의 절벽 앞에서 나는 다른 세계에 서 있었다.
바람이 광풍처럼 몰아쳐 몸이 풀밭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지만,
바로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광풍에 쓰러지면서도 나는 감탄했고, 이 노르망디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감사했다.
광풍과 그들이 몰고 온 먹구름, 멀리서 비쳐오는 빛이 빚어내는 장엄함 앞에서 심장이 멎는 듯했다.
울트라마린과 비리디안이 혼재된 속에 곁들여지는 빛나는 옐로가 만들어내는
그 오묘한 감동은,
돌아와 나의 "The Blue"시리즈로 이어졌다.
내 그림에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가 되었다.
아직 많이 미흡하지만 시작이었다.
루블의 가루솔 아트쇼핑몰 전시장에 들어서자 또 다른 각개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들의 치열한 경쟁,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세레머니. 샴페인을 터뜨리고 잔이 부딪으며 내는 명징한 소리...
우리는 그저 묵묵히 그림을 걸었다.
언어의 벽은 높았고 대화는 아들의 입을 빌려야 했다.
그러나 그림은 이미 언어를 초월해 있었다.
낯선 이들의 눈빛은 내 작업에 오래 머물르며 많은 질문을 해왔다.
'됐어! 내 작업이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어!'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내 그림이 예술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벽안의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루브르 지하의 전시장. 낯선 언어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그림은 말했다.
통역에 의지해야 했던 답답함 속에서도, 내 그림은 그들의 눈길을 잡았다.
관람객들의 질문과 호기심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예술은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언어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속에 내 그림을 보여주며 직접 소통하지 못한 점은
오래도록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들의 세레머니 문화를 보면서 자극이 되어 연말에 열리는 "서울 아트쇼"에 참여하면서 벤치마킹해 보았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역시 붐업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짧았지만 뜨거운 3박 4일의 전시. 나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확신했다.
암을 이겨낸 내 삶, 그들이 증명해 준 내 작업,
그리고 아들과 함께한 여행.
이 모두가 위대하신 분께서 예비하신 길이었음을 나는 안다.
주님!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