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주야!, 엄마, 아빠의 증손주
2013년 5월 17일
그날은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세상이 온갖 연등빛으로 물들었던 날.
종교를 떠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경배하는 날과 겹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의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게다가 아빠가 거북이 태몽을 꾼 덕분에
"북이"는 이름처럼 단단하고 상서로운 존재감으로, 세상에 오기 전부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런 아기가 우리에게 온 날이다.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당 벤치에 앉아 식후의 갓 내린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한참 꽃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 젖어 있다 보니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 엄마, 나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가고 있어요."
와..., 심장이 곤두박질치듯 요동 쳤다.
얼른 안으로 들어와 그동안 마련해 놓았던 보따리를 들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딸의 얼굴을 보는 게 우선이었으므로...
딸은 이미 땀에 범벅이 되어 애를 쓰고 있었다. 진통이 고조에 다른 듯했다.
나는 딸과 뺨을 비비며, 전해지는 아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 고통은 그 무엇에 비길 수 없을 만큼의 큰 고통이지만, 최고의 기쁨을 머금은 아픔이다.
산고는 여자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또한 숭고한 권리이기도 했다.
한참을 다독여주고 아파트로 달려가 준비물을 챙겼다.
이것저것 챙기면서, 싸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러 기저귀와 목욕시킬 때 쓸 수건을 꺼내 짐 속에 넣었다.
거의 한 달여 동안을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준비한 것들이다.
한 땀 한 땀 홀치기를 했고, 몇 번이고 삶아내어 보드랍게 만들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 바람에 날리는 뽀얀 기저귀를 보노라면 마음이 개운해지고 뿌듯했다.
지나가던 이웃 분들도 들어와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라며 나의 기쁨에 동참해 주셨다.
그날들은 축복의 시간들이었다.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감사함에 절로 손을 모으곤 했었다.
걸음을 빨리해 병원 문 앞에 섰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 애기가 나왔어요. 순산했어요."
"벌써?" 급히 올라가 보니 딸은 땀에 범벅이 되어 지친 모습으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엔 "엄마"가 된 자부심과 기쁨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하다. 수고했어. 어여 푹 자렴."
딸을 토닥여 주고 신생아실로 달려갔다.
아가는 강보에 싸여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다.
'야~~ 내 핏줄이야...' 저 깊은 속에서 뿌듯함이 올라왔다.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내 손주야! 엄마 아빠의 증손주. 감사합니다.
축복해 주세요. 그리고 지켜주세요.
두 손을 모으고 주님께도 감사기도 올렸다.
딸도 무탈하게 조리원에서 산후조리 충분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연스레 육아는 나의 몫이 되었다. 모두들 무리라며 말렸지만,
나의 핏줄 사랑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대신 슈퍼바이저만 할게. 힘든 건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이렇게 시작된 손녀 사랑.
신생아가 밤에 깨지도 않고 8시간을 잤다. '저랑 똑같은 딸 낳아 키워보랬더니...
이런 복댕이 딸을 낳았네...' 하며 웃었다.
아가는 엄마 젖을 빨며 잘도 자랐다. 에미 젖이 참젖이라고 했다.
이래 저래 "복댕이"다.
아기와 눈 맞추며 웃을 때마다 내 마음은 녹아내렸고, 옹알이 한마디에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낮은 거실장을 짚고, 얼떨결에 일어서버린 날.
낯선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던.
처음 마주한 놀람과 두려움 앞에서의 당황한 서아 표정. 지금도 소환하며 웃는다.
나는 서아를 재우며 에미와 삼촌에게 불러주었던 자장가도 불러 주고,
해인 수녀님의 글을 읽어 주기도 했다. 그러노라면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던 서아.
말문이 터지며 "애기서아"는 제 자장가를 핼미보다 앞서 부르곤 했다.
별 투정도 없이 지치지도 않고 잘도 노는 아기,
그래서 난 서아를 "놀순이"라 불렀다.
두 돌을 지나자 어린이 집엘 가게 되었고, 배워온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면, 나는 감탄 속에 어쩔 줄 몰랐다.
기꺼이 "서아바보"가 됐다.
이 앞에서 "후유증"이란 놈은 맥도 못 췄다.
심한 불면증이 있었는데, 머리를 댔다 하면 잠이 들었다.
우울증이란 녀석은 범접도 못 했다.
이렇게 서아는 내 암투병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무렵, 딸의 직장이 여의도로 이전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서, 이사를 결정했고,
육아는 자연스레 가까이 사시는 친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낯선 어린이집. 낯선 환경에서,
서아사랑 "뿌우"에 의지하며 잔뜩 긴장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송되면 가슴이 미어졌다.
"우째..." 그저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돈께서 난소암 진단을 받으시면서 아가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서아는 핼미를 천만년만에 만난 양,
내 목에 매달리며, 뛰고, 구르고, 격하게 환영의 세레머니를 펼쳤다.
나도 감정 이입이 되어 눈시울을 붉혔다.
'야~ 저렇게 좋을까?' 딸 내외도 눈을 동그랗게 하며 웃었다.
나는 다시 주말 부부가 되어 서아와 함께 보냈다.
그동안 서아는 부쩍 자라 있었다.
쫑알쫑알 이야기도 많았고, 휴지 흘린 아저씨를 쫓아가 꾸짖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마주한 아저씨는 "ㅎㅎ 아가씨, 아저씨가 잘못했어요." 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엄마 생각이 나서 피식 웃는다. '피는 못 속인다니까.'
이렇게 서아는 밝고 씩씩한 어린이로 잘 자라고 있었다.
지금도 어쩌다 함께 잠자리에 들게 되면, 잠들기 전에 꼭 당부를 한다.
"할머니, 나보다 먼저 잠들면 안 돼!."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애기야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유행가 가사를 들먹이며,
"핼미가 불면증이었는데 애기가 핼미에게 와준 그날부터 이렇게 된걸! 애기는 핼미의 수호천사야."이러면
서아는 "으쓱"하며 잠에 들곤 한다.
지금도 서아는 핼미가 "애기"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 "애기"는 우리 둘 만의 애칭이 되었다.
2013년 5월 17일, 수호천사가 내게 와준 날.
그날은 나의 삶을 다시 빛나게 만든 기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