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완치입니다

내 삶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선언

by 산수골지윤핼미

5년 동안 풀방구리마냥 드나들었던 유방암 병동.



그 문을 다시 열면서, 내 심장은 얼어붙은 듯 차갑게 조여왔다.
“이번엔 제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스스로 다독였지만, 두 손엔 식은땀이 번져 있었다. 수없이 반복된 검사와 수치. 그래도 늘 안정적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했지만, 정작 결과를 받아야 하는 순간이 되니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대기실은 늘 그렇듯 환자들로 가득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공기 속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연대감이 흐르고 있었다.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 같은 기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제발, 무사히.'


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문을 열자 노교수님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맞아주셨다.

예감이 좋았다. 좀처럼 뵐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결과는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입에서, 오랫동안 꿈꾸던 단어가 흘러나왔다.


“완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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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오랜 시간 항암제와 방사선,

통증과 두려움으로 얼룩졌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토록 간절히 기다려온 한마디.

그러나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믿기지 않아 나는 되물었다.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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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며 이제부턴 박교수 님께 인계되어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계속 검진을 해야 하는데 왜 다른 교수님께 인계하시나요? 저는 선생님 계속 뵙고 싶은데요.”
노교수님은 미소를 머금고 담담히 대답하셨다.


“이제 저는 더 중한 환자들을 봐야죠, 저와는 여기까지입니다.”


알고 있었다. 내가 회복된 건 기적 같은 일이었고, 이제는 다른 이들이 그 기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지난 긴 세월 동안 나는 얼마나 이 분께 의지해왔던가.

힘들 때마다 건네주시는 말씀 한마디, 믿음 어린 시선이 내게는 약보다 큰 힘이었는데.


교수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덧붙이셨다.
“정말 잘 해내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3개월마다 박교수 님 주치의로 내 몸을 돌봐야 한다.'
병원 문을 나서자 매서운 한겨울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맵싸한 바람 맛이 어찌나 달고 시원하던지...

오랫동안 가슴을 옥죄던 무거운 납덩이가 눈 녹듯 사라진 기분이었다.


‘이제 페마라 먹지 않아도 된다.’
'그 약 때문에 몸에 나타나는 자욱들, 마치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흔적들.

그 자욱들도 지워질까? 워지겠지?


그동안 제일 먹고 싶었던 회도, 간장게장도 먹을 수 있겠지?'

역시 난 먹순이였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초밥, 게장이라니...

그러나 그 먹성 덕분에 이렇게 살아난 거다.


나는 온 세상이 제 것이 된 양 의기양양해져 혼자 자주 가던 일식집을 찾았다.

사실 결과가 두려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온 길이었다.


조심스럽게 식집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초밥 특선으로 주문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스탠드 바에 앉아 천천히 한 점 한 점 맛을 음미면서 오물거리고 있었다.

늘 그러하시듯, 인심 후하신 주방장님은 간간히 맛있는 부분을 올려 주신다.


결국 참지 못하고 주방장님께 자랑을 해버렸다.

“저, 오늘 완치 판정받았어요.”


순간, 주방장님은 얼굴을 환히 밝히시며 회무침 샐러드를 한 접시 더 올려주셨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나는 접시를 받아 들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식당을 나와 한참을 거리를 쏘다녔다.

바람도, 불빛도,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도 모두 새로운 세상의 노랫소리처럼 들려왔다.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외침을 꺼냈다.
“나 살아냈다. 나 이제 페마라 그 녀석 안 먹어도 된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 다시 한번 교수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완치입니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의학적 판정이 아니라 내 삶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톡실마을의 봄" watercolor on paper 45.5*37.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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