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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링 Jan 22. 2024

자연 속으로, 모험의 시작

설산의 매력에 빠져들다

키르기스스탄 여행 3일 차. 드디어 모험을 시작한다.

오늘은 춘쿨착 스키장으로 이동하는 날. 시내를 벗어나 본격적인 로드트립의 시작을 알렸다. 나와 일행들은 3대의 밴에 몸을 싣고 첫 번째 모험 장소인 춘쿨착 스키장 리조트로 향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짜릿한 해방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굽이굽이 험한 길을 시원하게 내달렸다. 해발고도 2000m의 산을 넘어 바퀴는 쉴 새 없이 굴렀다. 창문을 내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연신 찍어댔다. 이산에서 저산으로 이동할 때마다 바뀌는 눈 덮인 산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피곤함도 잊었다. 간혹 말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우리들은 모두 한껏 들떴다. 산꼭대기에 다다르자 잠시 차가 멈췄다. 사진을 찍고 가기 위해서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대로 그림 같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눈을 못 뜰 정도로 뜨거운 햇살 아래서 반쯤 실눈을 뜨고 설산을 감상했다. 아름답고 경이롭다.



그렇게 부지런히 달려 도착한 리조트는 아늑하고 따뜻했다. 나무로 지어진 리조트를 둘러싼 산들이 너무 낮게 느껴졌다. 그만큼 하늘과 가까워진 기분이다. 여기 산꼭대기구나 새삼 실감한다. 뽀얀 눈을 만져도 보고 눈 위를 연신 뛰어다녔다. 통신도 잘 터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불안함보다는 세상을 떠나 온전한 나의 시간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매일 수십 통씩 울려대던 업무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숨 막힐듯한 단톡방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속보와 뉴스들을 모니터링하지 않아도 되고, 선전지를 퍼 나르고 떠드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자유란 이런게 아닐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누구보다 흠뻑 즐겼다. 내가 온전히 즐겨야 좋은 기사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비로소 내 것이 되어 소화됐을 때 글로 뿜어져 나올 수 있을 테니. 첫날인데 벌써부터 자연의 경이로움에 압도된다. 내가 설산을 이토록 오랫동안 볼 일이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았을 때 내 인생에서 눈 덮인 산에 폭 안겨 잠드는 날은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어린아이마냥 신나서 눈을 밟으며 뛰어다녀본다. 뒷모습에서도 느껴지는 해방감. 자유로움. 나는 이곳에서 그동안 나를 억누르고 억압하던 것들을 모두 벗어던졌다. 매일 마감에 쫓기던 삶. 마감 이후에는 다음날 써야 할 발제(기사 아이템)에 대한 걱정. 취재에 대한 부담감 그 모든 것들은 이 순간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 기자 동료들이 있는 단톡방에서는 급박하게 속보를 전하고 마감을 알리는 대화들이 속속 올라왔다. 친구들아 미안~ 나만 행복해서!



이날 밤은 더욱 신이 났다. 종아리까지 쌓여있는 눈 위가 놀이터였다. 한발 한발 눈을 꾹꾹 밟으며 뽀드득한 감각을 느꼈다. 부츠를 가져오길 잘했다. 신기하게도 날씨가 하나도 춥지 않았다. 영상 15도에 가까운 날씨는 패딩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눈이 녹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눈은 차가웠다. 눈 위에 누워 한참을 있었다. 눈을 폭신한 매트리스 삼아 누워서 커다랗게 뜬 달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 행복하다" 그 생각뿐이었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나를 잔뜩 괴롭히던 생각들을 탈탈 털어내고 눈 속에 묻어버렸다.



멋진 밤. 텐트를 치고 드론을 띄우고 멋진 사진을 찍었다. 나도 기웃기웃 근처를 맴돌다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인생에 지금까지 없었던 풍경과 나의 모습을 담아냈으니 이것이 '인생사진' 아닐까.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던 시간들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행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자 다들 "엄청 추운가 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렇게 눈이 쌓여있으니 누가 봐도 추워보이겠지?  사실 롱패딩을 입은 등에는 땀이 줄줄 나고 털모자 안으로는 머리에서 김이 나고 있었다. 사진 속 그 자리에 있던 우리만 아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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