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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링 Jan 15. 2024

메리키르기스마스

낯선 타국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날이다. 매년 특별할 것 없이 보냈지만 2023년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조금 특별한 한해였다.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낯선 여행지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으니 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알라투광장을 찾았다. 이곳은 이슬람국가다보니 '성탄절'의 의미가 담긴 크리스마스를 지내지는 않는다. 크리스마스 축제가 아닌데에도 거리에는 트리와 화려한 조명처럼 크리스마스를 연상케 하는 장식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연말부터 1월 중순까지 키르기스스탄은 새해 맞이 행사가 열린다.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인이 하나 되어 반짝이는 마음을 나누는 축제 기간임은 틀림없었다.


 

내가 시장에서 산 양말(왼쪽) / 각자 원하는 구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들. 이를 보고 누군가는 대환장 파티인 우리 여행을 한 장에 요약한 모습이라 말했다.(오른쪽)


오늘 우리는 '관광객'으로 이곳에 담겼다. 키르기스스탄의 유명 셀럽들이 즐겨 찾는다는 애비뉴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즐겨보고 시장에서 파는 음식도 먹고 양말도 구입했다. 아침에 미리 뽑아뒀던 마니또 선물을 각자의 방식대로 구입하기도 했다. 나는 양말을 한켤레 사고 길거리에서 파는 빵을 해치웠다. 아이들을 보며 귀여워하기도 하고 키르기즈어로 깎아달라는 말을 배워 상인들에게 해보기도 했다. "살람~" 현지언어로 인사를 나누면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살람~" 같은 말로 화답했다. 우리 나름대로의 키르기스스탄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일행들이 다들 사진찍는 것에 진심이었다는 점이다. 신기한 것들을 마주하면 모두가 소리없이 카메라를 켰다. 멋진 배경이 보이면 지체없이 달려가 포즈를 취했다. 그러면 다들 달려와서 멋진 인생샷을 남겨줬다. 누군가는 영상을 찍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는 우리를 찍고 또 찍고. 클라우드 용량이 넘쳐 매번 사진을 삭제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진을 남겼다. "역시 남는건 사진 뿐이야!"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으며 말이다.


2023년 12월 24일 알라투 광장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한창이었다.


기분좋은 그날. 나는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알게된 사람들과 함께했다. 아직 여행 이틀차다보니 여행 중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특히나 광장 너머로 보이는 설산은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꿈인가?"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 그림속에 나도 살포시 몸을 던졌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멜로디만 들어도 흥겨운 노래가 거리에 울려퍼졌다. 크리스마스의 흥겨운 노랫소리에 몸을 맡기고 사람들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도 하나가 되어 즐겼다. "메리키르기스마스~"




한국은 지금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는데. 이곳은 하나도 춥지가 않았다. 영상 15도까지 오르는 기온에도 사람들은 털모자를 눌러쓰고 패딩을 꽁꽁 챙겨입었다. 나도 이들을 따라서 모자를 살포시 눌러썼다. 비슷한듯 다른 외모의 한국인 일행을 본 사람들은 신기해했고 우리 일행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이방인으로서 맞이한 크리스마스. 국적도 종교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웃고있었다. 나도 웃고 떠들고 춤추며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여행 이틀 만에 이곳의 냄새와 온도가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저녁엔 우리들만의 숙소로 이동했다. 커다란 펜션에서 다같이 고기를 구워먹고 술을 한잔씩 기울였다. 도란도란 앉아 한국 음식을 즐기며 어제오늘 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들었다. 이틀 만에 우리들은 제법 가까워졌다. 낮게 고심끝에 고른 마니또 선물을 나눠주는 시간은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누군가는 선물을 받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누구는 행복한 미소를 잔뜩 지었다. 크리스마스가 준 선물은 우리가 함께 이순간 키르기스스탄에 오게됐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밤새 웃고 떠들고 술한잔씩 걸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난 사람 하나 없이 둥글둥글한 사람들이 모여 춤도추고 노래도 했다. 고산병일까? 아니면 피곤해서일까? 2층 방으로 올라와 세수를 하는데 코피가 팍 터졌다. 코피는 멎지도 않고 세면대를 빨갛게 물들였다. 코를 휴지로 막아보기도 하고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새빨간 코피는 눈치도 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날은 코피 터지게 즐거웠던 내 생에 손에 꼽히는 크리스마스가 아니었을까. 이 순간만큼은 어떤 근심도 없었고 그 모두가 행복해보였다. 나역시 내가 하고싶은대로 느끼는 대로 흘러가는 시간을 풀어놨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행복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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