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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링 Feb 05. 2024

눈 덮인 산속에서 캠핑? 글램핑!

자연에 파묻혀 잠이 들다

거대한 천막집은 러시아어로 '요르따', 키르기스어로 '보쥬위'라고 부른다.


산속에 웅장하게 우뚝 선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곳. 바르스콘 밸리의 글램핑장은 북유럽을 연상케 했다. 눈 덮인 산속에 자리하고 있는 글램핑장은 꽤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먼 길을 떠나온 여행자들을 따스하게 맞아주는 듯 친절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날이 추운 탓에 일행 중 몇 명만 글램핑장을 체험하기로 하고 나와 다른 일행은 빛바랜 오두막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인심 좋은 북유럽 할머니가 아침마다 거대한 통에 수프를 끓이고 있을 것 같은 숙소였다. 정갈한 침구는 깨끗하고 단정했다. 오래됐지만 손님 맞을 기대감에 부풀어 정갈하게 정돈해 놓은 할머니의 집 같았다. 거대한 통창 밖으로는 산의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하룻밤만 머물기에 아쉬운, 너무나 아늑하고 근사한 숙소였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보니 멋진 풍경이 눈에 담긴다. 거대한 셰퍼트 두 마리는 사람을 참 잘 따랐다. 마크와 맥스였나? 저 멀리서 사람이 있는 곳을 보고 달려와 내 앞에 벌러덩 눕는다. 내가 열심히 보듬어주면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서 쳐다본다. 그 모습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어디에나 이 녀석들이 함께했다. 


이곳에서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눈 속에 파묻혔다. 눈과 하나 되고 자연과 하나 되어 만끽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바르스콘 밸리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면 어떠한 근심도 없이 해맑다. 한국에서 가져온 걱정을 눈 속에 꼭꼭 파묻고 눈을 밟고 또 밟았다.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근사한 저녁도 빼놓을 수 없다. 한식당에서 사 온 반찬과 소고기와 돼지고기 바비큐를 함께 즐겼다. 쌈채소에 쌈장까지. 여기 키르기스스탄 맞나? 내 눈을 의심할 정도다. 한국에서 먹는 식사보다 더 푸짐하게 바비큐 파티를 만끽했다. 상추 위에 고기 한점 얹고, 양파 절임과 김치까지 야무지게 싸서 한입 꿀꺽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여기가 어디인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진 저녁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훈오빠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글렌피딕까지 함께했다. 다 같이 위스키 잔을 채우고 키르기스스탄의 밤을 위해, 우리의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잔을 부딪혔다. 밤이 무르익어 간다.



바르스콘의 밤은 전날과 달리 공기가 차가웠다. 산속이라 그런지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술자리가 아쉬웠던 터라 자리를 옮겨 술을 더 마시기로 했다. 천막으로 된 작은 글램핑장에 9명이 빼곡하게 모여 앉아 술을 한잔 기울였다. 침대에 깔려있는 전기장판이 절절 끓는다. 나는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뜨끈한 기운을 느끼며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침대 2개로 끝인 글램핑장 내부에는 우리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천막을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노랫소리와 뒤엉킨 웃음소리. 갑자기 시작한 귀신 이야기로 오싹한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글램핑장 안을 가득 채우던 웃음소리가 잠시 멈출 때면 밖에서 들려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천막을 뒤덮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글램핑장 안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다른 숙소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점. 곰도 출몰한다는 말에 괜스레 겁이 났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기도 하고 어둡고 미끄러워서 누군가 길을 밝혀주지 않으면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들은 2~3명이 팀을 이뤄서 옆건물에 다녀왔다. 바람소리도 거세고 날이 추워서일까. 그때의 나는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홀짝이던 맥주를 내려놨다. 참고 참다가 결국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나갈 채비를 했다. 막상 다녀오니 별거 아니었다. 바람소리에 날아갈까 걱정할 체격도 아닌데 말이다. 



행복의 정의.

나는 행복에 대한 기준이 조금 낮은 편이다. 아니 관대한 편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누군가는 이게 행복해?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도 나는 확신을 갖고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키르기스스탄의 여정도 그랬다. 오늘 하루 맛있는 밥과 따뜻한 침실이 있어서 행복했고, 이곳의 멋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또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별것 아닌 소소한 대화로도 까르르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참 행복했다.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시간. 그 설렘과 짜릿함은 내 마음을 커다랗게 부풀게 했다. 두둥실 떠오른 마음을 안고 오늘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오늘은 또 내 인생에 어떤 장면을 기록하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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