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불길이 주는 위로
어릴 적 수련회만 가면 꼭 그 시간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처음 집을 떠나 1박 2일 야영을 다녀왔다. 야영활동을 마치고 저녁이 되자 운동장에 커다란 나뭇더미가 쌓이더니 그곳에 불을 붙이고 빙 둘러앉았다. 선생님들은 우리들의 손에 종이컵에 끼운 초를 하나씩 쥐어주었다.
"다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세요"
아이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엄마아빠에게 잘못한 것들을 고해성사했다. 엉엉 우느라 말을 제대로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이들이 울자 나도 눈물을 쏟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버린 것이다. 나도 눈물을 쥐어 짜내려 노력했지만 메마른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첫 캠프파이어였다. 그 뒤로 나에게 캠프파이어는 '억지로 감성을 쥐어 짜내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캠프파이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은 우연히 찾은 캠핑장에서였다. 4년 전 추석, 친한 선배가 장박을 한다며 놀러 오라고 했다. 캠핑에 진심인 그 선배는 캠핑을 하기 위해 차도 사고, 장비 모으는 재미에 사는 매주 캠핑을 떠나는 사람이었다. 한 사이트에 두 달 동안 텐트를 설치해 두는 장박. 나는 연휴를 이용해서 캠핑을 경험해 보기 위해 그곳에 다녀오기로 했다. 4명이 한 텐트에서 잘 수 있을 정도로 텐트는 넉넉했고, 텐트 안에는 TV와 전기장판, 각종 식기구까지 없는 게 없었다.
해가 지면 불빛하나 없는 깜깜한 시골. 해가 떨어지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피웠다. 옆 텐트와 옆옆 텐트까지 다들 지인들이라 6명이 옹기종이 불 앞에 모여 앉았다.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LP판 노래를 배경 삼아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졌다. 지지직거리는 LP판의 노랫소리마저 완벽했다. 그저 멍하니 말없이 타오르는 불을 바라봤다.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캠프파이어였다.
나의 세 번째 캠프파이어 장소는 키르기스스탄 여행지였다. 저녁을 먹고 잠시 숙소에 들어갔다 나오니 마당에 가득 쌓인 장작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방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티타늄 컵,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불길에 이끌리듯 모여들었다. 흩날리는 재와 뜨거운 불길, 우리의 열정까지 함께 타올랐다.
멍하니 불길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울컥했다. 낯선 곳에 와서 어색했던 사람들과 성큼 가까워졌고,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일렁이는 불길을 그저 말없이 한동안 바라봤다. 마음과 머리에서도 모든 생각을 비웠다. 순간의 공기와 내 눈에 담긴 불길에만 집중했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면서 내는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타고 귓가에 크게 들려왔다. 날이 흐려서 달과 별은 볼 수 없었지만 재가 흩날리는 것이 마치 반딧불이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한잔 두 잔 술을 걸치고 나니 다들 기분이 한껏 올라왔다. 기가 막히게 감성을 자극하는 배경음악까지 더해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노래에 맞춰 몸을 고개를 까딱이던 우리들.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자 댄스파티가 열렸다. 그저 무아지경 노래와 술에 몸을 맡긴다. 장작 위로 일렁이는 불꽃처럼 우리들도 일렁이며 빛을 내뿜었다. 누가 본들 어떠하리, 부끄러운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나는 춤을 추고 싶을 뿐. 한국에서 일에 치여 살던 날들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다. 행복이 입꼬리를 타고 자꾸만 삐져나왔다.
이 순간의 나는 그저 여행객. 낭만을 좇아 다니는 여행자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이 순간에 어떤 수식어가 필요하랴. 그저 웃고, 떠들고, 마시고, 즐기고, 춤추면 그만이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는 순간들. 마감 시간에 허덕이지 않아도 되고 아무 생각 없이 리듬에 몸을 맡겨도 되는 그런 순간. 이런 해방감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나 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여행의 행복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소중한 순간들을 캠프파이어 불꽃에 가둬놨다. 그 넘실거리는 불꽃을 다시 꺼내 볼 때마다 그 순간의 감정들이 떠오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