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의 가을 하루

1990 LG 트윈스 우승 스토리 13

by 에덴의아래

(2013년에 쓴 글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13) 파란 하늘의 가을 하루




1990년 9월 29일 토요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연휴 하루 전이었다. 이 해 추석은 그 다음주 수요일인 10월 3일이었고 월요일 10월 1일이 국군의 날 공휴일이었기에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5일의 연휴가 주어졌다.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기 전이었으므로 토요일은 공식적으로는 일하는 날, 하지만 이날 오후부터 실질적인 연휴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당연히, LG 트윈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오후 두 시부터 열리는 OB와의 홈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 했다. 우리가 승리하고 해태가 인천 더블헤더에서 두 게임 중 한 경기에 지면 LG가 대망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짓는 날이었다. 더블헤더 두 게임을 싹쓸이하는 것은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LG가 유리했다.


만일 LG가 이기고 해태도 같은 날 더블헤더 두 게임을 모두 이기면, 10월 2일 해태-태평양 전을 기다려야 했다. 그 게임마저 해태가 이겨 버리면 이번엔 해태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틀간의 공백이 있기에 해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주력 투수들을 총동원할 수 있었다. LG로서는 우승을 놓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였다.


반대로 LG가 자칫 OB에게 지고 해태가 더블헤더 두 게임을 싹쓸이하면 이번엔 해태가 우승 축배를 들게 된다. OB가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과 선동열이라는 존재를 감안하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설사 인천 더블헤더에서 1승 1패가 된다 하더라도 10월 2일 해태가 태평양에게 이기면 역시 해태의 우승이었다.


어쨌거나 결론은 OB에게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히 결전의 날이라 할 수 있었다.


노찬엽의 수위타자 등극도 걸려 있었다. 2타수 1안타를 기록하면 타율 .335로 이강돈을 넘어설 수 있었다. 물론 세 게임을 남겨둔 3위 한대화의 타격감이 좋았기에 변수는 있었지만 적어도 이강돈은 제칠 수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노찬엽은..... 결혼식을 올렸다.


생뚱맞은 뉴스였다. 팀의 운명, 그리고 일생에 한번 올까말까 한다는 개인 타이틀 획득이 걸린 날, 그것도 오후 2시로 예정된 경기에 앞서 노찬엽은 방망이를 들고 타격감을 가다듬는 대신 턱시도를 입고 결혼행진곡에 맞추어 하객 앞을 걸어갔다.


결혼식 날짜란 게 몇 달 전에 잡히기 마련이고 9월 29일 정도면 충분히 시즌이 끝날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하필이면 그날 우천 연기된 잔여경기가 열렸던 것이다. 결혼 날짜를 갑자기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식을 끝낸 후 서둘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신부의 축복 속에 경기에 나가 맹타를 휘두른 후 바로 그 날 타격왕 타이틀을 따내고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그런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아니면 새벽부터 일어나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사진찍고 정신없이 헐레벌떡 오는 바람에 집중력이 떨어져 타이틀을 놓치게 될 것인가? 십중팔구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나름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판명된 현실은 두 가지 모두와는 조금 달랐다.)


경기를 앞두고 또다른 이벤트도 있었다. 백인천의 선수 은퇴식이었다. 84년 법적 문제로 예기치 못하게 선수생활을 중단해야 했던 백인천 감독은 이날 뒤늦게 은퇴식을 가졌다. 팀 순위가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다면 타석에도 한두 번 설 욕심이 있는 백인천이었지만 (실제로 시즌 막판엔 경기 전 선수들과 함께 배팅 연습을 하기도 했고 꽤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다) 애석하게도 그런 운은 따르지 않았다. 다만 상대팀 주장이었던 김광수가 OB 선수를 대표해 꽃다발을 증정하는 흐뭇한 모습은 볼 수 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구름관중을 예상한 나는 이른 시간에 여자친구를 야구장으로 불러냈지만, 예상 밖으로 관중은 일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일주일 중 토요일 경기가 관중 동원에 가장 불리했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토요일 경기는 오후 2시였는데, 규정상은 오전근무를 하게 되어 있지만 점심까지 먹고 두세 시쯤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직장인들의 참여가 어려웠다. 그리고 추석 귀성이 시작된 점, 북경 아시안게임이 한창이어서 프로야구의 언론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요인도 있었던 것 같다.


선수단은 사흘 전 수요일 한 경기를 했을 뿐,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였다. 가장 믿을만한 투수 김용수가 선발 등판이었고, 여차하면 모든 투수가 다 투입될 수 있었다.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다.


1번 윤덕규 7
2번 김재박 6
3번 김상훈 D
4번 유종겸 9
5번 김선진 3
6번 이광은 5
7번 김동수 2
8번 이병훈 8
9번 민경삼 4
투수 김용수


4번타자에 투수 유종겸이 나온 건 위장 오더였다. 상대 선발에 따라 탄력적인 기용을 하기 위한 전술적 위장 오더가 아니라, 결혼식을 하는 노찬엽이 미처 경기 시간인 2시까지 도착하지 못할까 염려한 조처였다. 다행히 노찬엽은 1회부터 경기에 출전했다.


이날 라인업에는 주전 두 명이 빠져 있었다. 우선 2루수 김동재가 발목 부상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즈음 2루엔 민경삼이나 나웅이 나오고, 공격력 강화를 위해 이광은이 외야에서 돌아와 3루를 보는 연쇄 이동이 있었다.


또 한명은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박흥식. LG는 ‘90 시즌 1번타자를 몇 번 바꿨는데, 초반엔 김재박, 중반엔 윤덕규가 많이 출전했고, 후반에는 박흥식이 1번타자로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계속되는 타격 슬럼프 때문에 이날 이병훈이 대신 선발 중견수로 출장했다. LG 타선의 특징은 거포가 없이 빠른 발과 작전 수행 능력, 연속되는 안타 등으로 상대의 혼을 빼는 것이었는데 그런 이유에서라도 타격감이 좋지 않은 박흥식을 선발로 기용하기는 어려웠다. 상대 선발도 좌완이었고 말이다. 1번 자리는 다시 윤덕규에게 맡겨졌다.


여담이지만 박흥식은 팬들 사이에 꽤나 인기가 있는 선수였는데, ‘빵식이’라는 별명도 친근했고 심지어 개인 응원가도 있었다.


엘~지의 박흥식 (빵식이!)

밤만 되면 나간다 (나간다!)

지금쯤은 칠거다 (칠거다!)

안타칠거다


하는 응원가는 대한민국 야구선수 개인 응원가의 최초가 아닐까 한다. 혹자는 개인 응원가의 시초가 2000년대 초반 두산 김동주의 ‘떴다 떴다 김동주’라고 주장하는데, 분명히 단언컨대 ‘빵식이’ 응원가가 김동주보다 월등히 먼저였다. 다만 이 노래는 원래 우리 옆집 여대생 / 밤만 되면 나간다 / 지금쯤은 할거다 하는 일종의 ‘저질송’에서 따온 거라 오버그라운드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혹시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멜로디는 솔-솔 라솔미솔도 솔-솔 라솔미솔레 이렇게 진행된다)


내가 야구장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전인 80년대부터 박흥식과 관련된 무슨 스토리가 있었으니 인기도 많고 그런 저질송을 바탕으로 한 응원가도 생겼을텐데, 그 사연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승엽 박병호 등을 키워냈다고 알려진 박흥식 코치의 선수시절 이미지는 지금과는 꽤나 달랐다.


2370044E51E8EA1016.jpg 귀한 자료를 올려주신 분이 있다. 출처는 https://blog.naver.com/green014/90137664545


LG에 맞서는 OB는 좌완 에이스 구동우. 9승 8패 2세이브를 거두고 있었지만 OB가 아니었다면 너끈히 10승을 넘어섰을 구위였다. 10승 투수가 한 명도 없는 OB의 마지막 희망이 바로 이 경기였다.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1회초, 김용수가 삼진 두 개를 잡으며 삼자범퇴로 처리. 출발이 좋았다. 2회초엔 단타를 하나 맞았지만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 3회초엔 선두타자 볼넷을 허용했으나 희생번트에 이은 유격수 땅볼 때 3루에서 잡아내며 별다른 위기 없이 넘어갔다.


그 후 김용수는 8회초가 끝날 때까지 단 한명도 주자를 내보내지 않으며 그야말로 완벽한 피칭을 해 냈다. 8회 종료시까지 안타 한 개, 볼넷 한 개, 그리고 9탈삼진으로 막았고 OB는 3루조차 밟아보지 못했으며 그나마 2루를 밟은 단 한명의 주자는 주루사로 객사했다.


하지만 지나친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공격이 풀리지 않았다. 1회초 2사 후 김상훈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타석에 노찬엽이 등장했다. 열화와 같은 팬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볼넷. 관중들은 야유했다. 결국 후속타자 김선진의 범타로 무득점. 2회말 역시 1사 후 단타 두 개가 나왔지만 적시타 불발로 또 무산됐다.


3회말 2사, 다시 노찬엽 순서가 돌아왔다. 그리고 구동우의 공을 쳐냈고, 누가 봐도 안타인 이 공은 좌익수 곽연수의 다이빙캐치로 그만 아웃이 되고 말았다. 이것만 안타가 되었으면 타격 1위에 올라서는 것이었는데! 많지 않은 OB 팬들은 열광했고 1루 LG 팬들은 탄식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선 채 안타까움에 앉을 줄 몰랐다.


4회말 공격. 실책으로 선두타자가 출루했으나 병살타로 무산되었다. 5회말에도 선두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으나 희생번트에 이은 적시타 불발로 또다시 무득점으로 끝났다. 계속 주자가 나갔지만 강공을 해도, 번트를 대도 답답한 0 대 0 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인천에서는 해태가 첫 게임에 이기고 있다는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6회말, 선두 3번타자 김상훈이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곧바로 대주자 박흥식으로 교체. 박흥식은 초구에 2루로 뛰었고, 타석에 있던 노찬엽은 한가운데 공을 일부러 뒤늦게 헛스윙해서 주자의 2루 도루를 도왔다. 그렇게 무사 2루가 되니 OB에선 당연히 노찬엽을 고의4구로 걸렸다. 또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꽤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만일 도루가 성공한다면 1루가 비게 되고 OB에서 볼 것도 없이 1루를 채울 것임이 명백했다. 그런데도 벤치는 도루 사인을 냈다. 안타를 쳐야 하는 노찬엽 타석에서 말이다. 그리고 노찬엽은 일부러 헛스윙을 함으로써 고의4구를 자초했다. 개인성적보다 무조건 팀 우선이었다.


하지만 노찬엽의 안타 기회를 희생한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사 1,2루에서 곧바로 병살타가 나왔고 결국 찬스가 무산되었다. 경기 두 번째 병살타.


8회말, 드디어 선두 2번타자 김재박이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다음 타자는 박흥식이었지만 대타 유지홍이 나왔고, 히트앤드런이 걸리면서 주자가 뛰고 타구는 내야 땅볼로 굴러갔다. 1루에서 아웃되며 1사 2루. 다음 타자는 노찬엽.


OB 포수 조범현은 여기서 또 일어서서 공을 받았다. 이젠 야유를 넘어 욕설이 잠실야구장을 가득 덮었지만 그런다고 정면 승부를 할 OB 배터리는 아니었다. 이날 노찬엽에게만 세 번째 볼넷이었다. 4타석 3볼넷 1타수 무안타로, 이대로 끝나면 이강돈을 추월할 수 없었다. 이미 경기는 8회말인데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1사 1,2루에서 마침내 김선진이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쳐냈다. 드디어 점수가 나는가 했지만 스타트가 늦었던 2루주자 김재박이 3루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1사 만루.


이제 이광은 차례였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기서 한 점만 내면 9회초 김용수나 정삼흠이 막고 이길 순 있겠는데 그러면 노찬엽까지 타순이 돌아오지 않을테고, 아예 점수를 계속 못 내고 연장전까지 가도 좋지 않을까..... 10회말 정도에 노찬엽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 팀도 이기고 타격 1위도 하고, 그런 만화같은 상황이 과연 벌어질 수 있을까....


응원을 열심히 하기도 안 하기도 어려운 상황, 이광은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2루 땅볼을 쳤고 그것이 경기 세 번째 병살타로 연결되며 이닝이 끝나고 말았다. 계속되는 0대 0.


옆자리에서 수근수근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인천에서는 해태와 태평양의 점수차가 더 벌어졌다고 했다. 인천 첫 경기를 해태가 이기는 분위기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 게임을 이겨야 하는데, 그런데 아뿔싸, 9회초 OB 공격, 선두타자 김광림이 좌선상 2루타를 치고 나갔다.


게다가 OB 타순도 좋았다. 2번 김광수 3번 김상호 4번 김형석. 김광수는 그러나 다행히 번트에 실패한 후 삼진을 당했다. 김용수의 떨어지는 변화구는 가히 무적이었다. 열번째 탈삼진.


이제 일방장타가 있는 3번타자 김상호. LG 벤치에선 고의4구를 지시했고, 이번엔 OB 응원석에서 야유가 나왔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이 꼴을 본 LG 팬들은 3루측 OB 팬들을 향해 고래고래 욕을 해댔다.


1사 1,2루. 다음타자는 OB의 중심타자 4번 김형석. 왼손 타자가 나오자 백인천 감독은 김용수를 내리고 좌완 김기범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안타 하나면 우승의 꿈이 사실상 물 건너가는 상황이기에 속이 타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OB가 김형석을 빼고 무명에 가까운 2할대 초반 대타 길홍규를 내보내준 것이다. 아무리 왼손 투수로 바뀌었다고는 해도 그 해 팀에서 유일하게 2할8푼 이상 치던 간판 타자를, 그것도 9회 승부처에서 빼버리다니. 결국 길홍규는 외야플라이로 아웃되었고, 다음 타자 역시 내야 플라이로 이닝이 종료되었다. 십년감수, 천만다행, 땡큐 베리머치.


9회말 LG 공격의 시작은 7번타자 김동수. 이날 9회까지 OB가 기록한 안타는 단 두개였다. 혹시 연장전에 가더라도 별로 실점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대충 9회말은 넘어가고 10회말 노찬엽까지 타순이 돌아오기를 나는 기대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김동수는 3구째를 때려 좌익수 쪽 펜스 넘어가는 끝내기 홈런을 쳤다. 그렇게 경기는 끝났다. 1대 0.


노찬엽의 타율 때문에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건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LG 선수들은 모두 마운드에 모여들었고, 해태의 남은 결과에 따라 우승을 할 수도 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모두들 성공적인 시즌을 자축하며 백인천 감독을 헹가래쳤다. 팬들도 함께 박수로 축하했다.


아직 우승을 한 것도 아니고, 해태가 3연승을 하면 우승을 빼앗길 판에 (게다가 그 중 한 게임은 이미 해태가 이겼는데) 감독을 헹가래친 팀은 90년 LG가 유일하지 않을까? 남이 보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LG의 선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다. 팀 이름과 감독이 바뀐 것 빼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만년 하위 팀이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말이다. 정규시즌 1위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긴 했어도 최선을 다한 일 년이었고 여한이 없었다.


백인천 감독.... 정말 행복해 보인다


일년간 낙담과 환희를 함께 했던 응원단장(이름을 까먹었다)은 팬들에게 큰절을 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많은 이들이 응원단상에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고 악수를 나누었다.


71승 49패. 우리의 기적의 시즌은 그렇게 끝났다. 생각보다 기분은 담담했다. 축하의 금은색 테이프너머로 보이는,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하늘이 여전히 파랬다.



1실점 완투패한 구동우는 9승 9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태평양은 더블헤더 2차전에서 결국 해태에게 이겼다. 뒤지고 있던 5회말에 조계현을 두들겨 역전에 성공했고, 5 대 2로 최창호가 완투승을 거두었다.


서울 반도 유스호스텔(현 역삼역 GS 강남타워)에서 시즌 납회식을 진행하던 선수단은 해태가 졌다는, LG의 시즌 1위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에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김선진은 경기 후 복통을 일으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급성 맹장염 진단으로 수술을 받았다.


3볼넷으로 수위타자를 저지당한 노찬엽은 그날 저녁 신혼여행을 떠났다.


김동수는 이날의 끝내기 홈런에 힘입어,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13승 투수 삼성 이태일을 물리치고 신인왕 타이틀을 따냈다.


그리고 나는..... 내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여자친구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해태가 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국시리즈까지 한 달 가까운 긴 방학이 찾아왔다.


다만 그 추석 연휴, 어느 해보다도 날씨가 맑았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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