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LG트윈스 우승 스토리 12
(2013년에 쓴 글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8게임 남은 시즌, 선두 빙그레를 한 경기 차로 뒤쫓는 LG에게 마지막 4일 연휴 일정이 왔다.
9월 22일 개최되는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뉴스의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연초만 하더라도 남북한 단일팀 분위기가 있었고 고위급 회담도 열렸지만 결국 무산되고 남북한이 따로따로 출전하게 되었다. 여러 남북한 접촉 과정에서 해태 김응룡 감독의 형인지 누님인지가 아직 북한에 생존해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가족 상봉을 주선하던 정체불명의 단체가 거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 만남이 무산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산가족이라 하면 남북간 이산가족과 같은 남한 내 어딘가 살면서 서로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 두 가지 종류의 이산가족이 있다. 월남한 이북 출신 가족에서 태어난 나에게 이산가족 뉴스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이 문제는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서로 남쪽에 살면서도 소재를 모르던 사람들은 80년대 초에 이르러 KBS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을 통해서 많이 만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나고 30년이 흐르도록 국가가 (‘국가’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다른 말로는 공무원들이) 그런 서비스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이 그런 기본 서비스 결여를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살고 있었다는 게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형제 자매는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아들 딸이나 부모를 관공서가 아니라 방송국 광장에 팻말 들고 가서 찾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남북간 이산가족 문제도, 책임이 남북 어느쪽에 있건 간에 전쟁이 끝난지 오륙십년이 지나도록 만남도 가지지 못한다는 건 세계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서 접촉을 완전히 차단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런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 사람 사이 왕래 및 통신이 전면 통제되는 일은 영화나 소설 같은 허구의 세계에서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경기도 없고 아직 아시안게임이 개막을 하지 않아 무료한 LG 팬들에게 낭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하루 또 하루.
9월 15일. 조계현의 투구에 힘입어 해태가 빙그레를 13 대 7로 이겼다. 이제 선두 빙그레와의 승차는 불과 반 게임.
9월 16일. 앞서가던 빙그레가 해태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LG와 빙그레의 승차는 이제 사라졌고, 승률에 뒤진 2위가 되었다.
9월 17일 월요일, 해태가 빙그레를 상대로 더블헤더 두 경기를 싹쓸이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해태의 대 빙그레전 싹쓸이 4연승, 빙그레로서는 충격적인 4연패였다. 쉬고 있던 LG는 가만히 앉아서 1위로 올라섰고, 해태는 삼성을 제치고 3위가 되었다.
그러니까 9월 들어 LG가 10승 2패를 기록하는 동안 빙그레는 5승 9패를 하면서, 도저히 극복 불가능해 보이던 다섯게임 차이가 불과 2주일 여 사이에 역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여기엔 외부 변수가 하나 있었다. 빙그레 김영덕 감독의 ‘종신계약설’이 퍼졌던 것이다. 빙그레는 당초 김영덕 감독의 계약이 끝나면 강병철 코치가 감독직을 승계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고, 김영덕 감독의 계약기간 만료가 바로 '90 시즌까지였다. 그런데 9월 초, 구단주가 김영덕 감독에게 종신감독직을 제안했다는 설이 퍼졌고, 이에 강병철 코치가 반발하며 팀 분위기가 망가졌다는 게 이 파문의 요지였다.
이 해는 유독 감독 교체가 많았다. 우선 태평양 김성근 감독이 ‘임호균 각서’ 문제로 감독직을 물러나는 게 기정사실이었다. 시즌 전 '임호균이 분명히 크게 활약할 것이니 선수 재계약을 해 달라'는 김성근과 '선수 생명이 끝났으니 방출하겠다'는 프런트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자 ‘임호균이 5승을 거두지 못하면 감독직을 물러난다’는 각서를 김성근 감독이 썼다 한다. 이후 구단 측의 요구로 ‘선발 5승’으로 내용이 변경되었고, 이런 구단 측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김성근 감독은 시즌 내내 임호균을 단 한번도 선발등판 시키지 않으며 스스로 감독직을 내던졌다. 그러고보면 김성근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OB 이광환 감독은 시즌 초에, 롯데 김진영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시즌 후반에 이미 물러났고, 삼성도 포스트시즌에는 진출했지만 정동진 감독을 교체한다는 게 정설이었다(프런트에선 혹시나 우승할까봐 걱정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왔다). 7팀 중 LG와 해태 빼고는 내년 감독이 누구일지 불확실했고, 그 까닭에 여기저기서 김영덕 감독에게 다음해 감독직 제의가 들어오자 그 연쇄반응으로 빙그레에서 감독 연임을 확정지었던 것이다.
사실 현 감독의 연임이 확정되어서 팀 성적이 곤두박질친다는 건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몰라도 말이다. 후일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김영덕 감독은 천안북일파, 강병철 코치는 비 천안북일파의 선두주자였는데 김영덕 감독의 종신계약설을 기화로 그 갈등이 표출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냥 야구장이나 찾아가는 팬의 입장에서는 빙그레의 팀 분위기가 어떻게 냉랭한지, 어떤 갈등이 있고 그것이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길은 없었고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데 집안이 조용하겠느냐" 정도의 스포츠신문 기사로 막연한 추측만을 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빙그레의 순위가 떨어지고 우리 팀이 올라간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강병철 감독은 다음해 롯데 감독으로 갔고, 9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영덕 감독의 빙그레를 맞아 승리를 거둔다. 롯데의 84년, 92년 우승은 두 번 모두 강병철 감독의 지휘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어부지리로 올라선 1위, 다음 주가 찾아왔고 LG 야구도 다시 시작되었다. 대구에서의 삼성 3연전, 인천에서의 태평양 3연전이 일주일 동안의 일정이었다. 이 6게임이 끝나고 나면 부산 롯데전, 잠실 OB전으로 정규시즌은 끝이었다.
4강은 결정되었지만 1위와 4위의 차이는 불과 2.5게임. 4위나 3위는 포스트시즌에서 큰 차이가 없으니 되도록이면 2위를, 이왕이면 1위를 차지하려는 각 팀의 치열한 경쟁이 불을 뿜었다.
9월 18일 화요일. LG는 대구에 갔고 1선발 김태원을 등판시켰다. 기대대로 김태원은 7회까지 산발 4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았고, 공격에서는 2회 타자 일순하며 4득점, 승부가 일찌감치 기울었다. 5 대 0으로 앞서가던 8회 김태원이 난조를 보이자 김기범 정삼흠이 올라왔고, 2점짜리 홈런을 맞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5대 4 승리. 스코어만 보면 아슬아슬하게 이긴 것 같아도 나름 편안한 경기였다. 이 해 LG는 유독 삼성만 만나면 성적이 좋았다. 이 경기까지 13승 5패였고, 김태원은 삼성을 상대로 무려 5승을 올렸다. 개인 성적으로는 시즌 16승째였다.
새롭게 떠오른 관전포인트는 노찬엽의 수위타자 여부. 이날 노찬엽은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같은 날 빙그레는 태평양과의 더블헤더 두 경기를 모두 이기고 반등했다. 해태 역시 광주에서 롯데를 이겼다.
9월 19일 수요일. 김용수가 선발등판하고, 김동수가 13일만에 부상에서 돌아와 합류했다. 7게임 남겨놓고 팀 순위는 1위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날엔 3등 4등까지 밀릴 수도 있는 상황, 백인천 감독은 무려 세 명의 투수를 라인업에 넣는 위장 오더를 제출했다.
삼성은 좌완 정윤수를 선발등판 시켰다가 2회 1실점하자 곧바로 언더핸드 이태일을 넣었다. 이태일은 신인 첫 해지만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김동수와 치열한 신인왕 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신인왕 타이틀이라는 게 아무래도 팀 성적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어서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팀 순위가 중요했다.
통계까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 느낌으로는 백 감독이 위장오더를 제출하고 상대 투수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타자를 넣고 그에 따라 수비위치를 자주 변경시키는 날은 그다지 승률이 좋지 않았다. 이날도 타순의 연결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고 결국 투수전 끝에 류중일에게 결승 솔로홈런을 맞고 1대 2로 패하고 말았다. 9회초 이광은의 타구가 크게 담장 쪽을 향해 날아갔고, 삼성 투수 이태일도 그만 동점 홈런을 맞은줄 알고 고개를 떨궜는데 그게 플라이로 잡히면서 LG의 패배가 확정되었다. 이태일의 시즌 12승째였다.
같은 날 빙그레는 태평양에게 패했고, 해태는 전날에 이어 롯데를 연파했다. 1,2,3위가 한 게임 차로 좁혀졌다.
9월 20일 목요일. 삼성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 3선발 문병권이 선발투수였고 또 두 명의 위장 투수가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다. 삼성은 김성길-성준-김상엽의 에이스투수 총동원을 했고 LG도 문병권에 이어 5회부터 정삼흠을 조기투입하며 총력전으로 맞붙었다. 2대 2로 팽팽하게 흘러가던 경기는 8회말 삼성이 1점을 득점하며, 결국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2대 3 패배. LG는 중요한 순간에, 그것도 1,2,3 선발을 넣고도 삼성과 3연전에서 1승 2패를 하며 주춤한 셈이었다.
노찬엽도 3타수 1안타를 기록했지만 타율 .335로 이강돈의 .340과는 격차가 벌어지고 말았다.
같은 날 인천에서 빙그레는 태평양에게 또 패했고, 해태는 롯데에게 또 이겼다. 전날은 조계현, 이날은 선동열의 완봉승이었고 해태로서는 무려 8연승이었다. 그야말로 '괴력의 연승 행진'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기세였다. 해태가 시즌 막판이나 포스트시즌에 강하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감해보니 정말 무서웠다. 8연승 덕분에 해태는 1위로 올라섰다.
해태가 빙그레에게 4연승을 할 때만 해도 세상은 밝아 보였지만 8연승을 하며 선두에 오르자 갑자기 모든 게 어두워졌다. 불과 이삼주 전만 해도 시즌 1위를 놓고 빙그레냐 삼성이냐 하던 분위기였고, 일주일 전에는 해태가 과연 2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초점이었는데, 세상에 해태의 단독 1위라니......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딱 3주 전 해태는 선두에 무려 8게임 뒤진 4위였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해태는 LG보다 게임도 많이 남아 있어 유리했다.
1위부터 4위까지 단 1.5게임 차. 팀별로 남은 경기는 4 내지 6 경기. 조마조마한 하루하루였다. 1위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 정규시즌 종료일로부터 한달 가까이 쉬어야하고 게임 감각이 문제가 되니 차라리 2위를 하는 것이 낫다....... 애써 그렇게 자위를 해 보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1위를 할 수 있을 때 차지해버리는 것이 백번 나은 방법이었고, 불길한 예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9월 21일 금요일. LG는 인천에서의 시즌 마지막 태평양 3연전을 시작했다. 4선발 김기범이 등판했고, 상대 선발은 박은진. 하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마음이 조급했을 것이다. 초반부터 매회 기회를 잡고도 1회 삼진으로 무산, 2,3,4회 연속 3회 병살타가 나오며 계속 끌려가기만 했다. 백인천 감독은 병살을 막으려 전매특허 히트앤드런을 남발했지만 작전이 걸리지 않은 투구마다 귀신같이 계속 병살타가 나왔다.
9회초 뒤늦게 연속 3안타를 치며 추격을 하려 했지만 대주자 조필현이 1루에서 3루로 뛰다 아웃되며 맥이 끊겼고, 경기는 결국 1대 3으로 패하고 말았다. 노찬엽마저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팀도 지고 노찬엽도 못 치고..... 가히 최악이었다.
이 경기에서 김동앙 구심이 파울팁 타구에 맞아 왼쪽 쇄골에 전치 8주의 부상을 입는 사고도 있었다. 김동앙 심판이 누구던가? 지난 5월 삼성-OB 난투극에서 누군가의 발에 채여 갈비뼈 골절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간 바로 그 사람이다. 파울팁에 맞은 것 치고 꽤 큰 부상이었는데 아마도 같은 부위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어쨌든 김동앙 심판으로서는 최악의 한 해였을 것 같다.
이날 해태는 경기가 없었고 삼성이 빙그레를 잡으며 승차없이 3,4위 순위를 바꿨다. 이제 1위 해태와 4위 빙그레의 승차는 단 1게임. 그야말로 숨가쁜 막판 드라마였다. 영화에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면 지나친 설정이라고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치열한 막장 레이스였다. 네 팀은 남은 경기에 모든 걸 쏟아부었고 이미 경쟁에서 탈락한 태평양도 만만치만은 않았다.
사실 키는 태평양 돌핀스가 쥐고 있었다. 태평양은 시즌 내내 4위 자리를 놓고 해태와 다투는 입장이었고, 인천 공설운동장 야구장의 그라운드 사정도 있었겠지만 조금 어려운 팀을 만나면 웬만하면 다 우천 연기를 시켰다. 그 덕분에 마지막 한달동안 상위권 팀들과 엄청나게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만 했다.
9월 22일 토요일. 북경 아시안게임이 개막했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두근두근했고, 야구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기다려졌다. 다만 월드컵 축구에 하도 단련이 되어서인지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골치가 아프진 않았다.
이제 태평양과의 시즌 19차전. 다시 1선발 김태원이 나섰다. 상대는 걸끄러운 좌완 에이스 최창호. 나웅의 솔로홈런으로 1대 0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서가던 경기는 7회초에 결판이 났다. 김선진과 노찬엽의 안타, 그리고 곧이어 이광은 나웅의 연속 적시타가 터지며 결국 4대 2로 승리한 것이다. 3안타 3타점의 나웅이 이날의 히어로였고, .332까지 타율이 떨어졌던 노찬엽은 4타수 2안타를 기록, .334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살려갔다. 김태원은 시즌 17승을 거두었고, 7회부터 나온 정삼흠이 22세이브째를 기록했다. 휴식일로 경기가 없는 해태에게 다시 승차 없는 2위로 따라붙었다.
대전에선 빙그레가 유승안의 3점 홈런으로 삼성을 4대 2로 제압했다. 이로써 삼성의 정규시즌 1위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남은 네 경기를 전승하고 나머지 세 팀이 전패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누가 보아도 해태가 유리했다. LG로서는 남은 세 게임을 전승하고, 해태가 남은 여섯 게임 중 두 게임에 패배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엔 없었다. 혹시나 2승 1패를 한다면 해태가 3패를 해야 LG가 우승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해태가 여섯 경기 중 탈락이 확정된 태평양과 무려 네 경기, 그리고 최하위 OB와 한 경기를 남겨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9월 23일 일요일. 태평양과의 최종전. 순서에 따라 사흘 쉰 2선발 김용수가 다시 선발로 투입되었다. 태평양도 에이스 양상문을 투입했다.
태평양은 4강 탈락이 최종 확정되고 김성근 감독의 교체도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일주일 전 빙그레를 순위에서 끌어내렸고 LG와도 호각세의 경기를 했으며, 그 다음주 일이지만 해태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모 스포츠신문에서는 김성근 감독에게 주간 MVP를 수여하기도 했다.
이날 김용수는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6회까지 내야안타 1개만을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막았고, 7회말 김경기에게 2루타를 맞긴 했으나 곧바로 행운의 유격수 직선타 병살이 나오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공격에서는 2회 이광은의 적시타로 한 점, 7회 2사 후 심재원의 기습 스퀴즈번트로 한 점을 냈다. 8회부터는 정삼흠이 올라와 무안타로 막고 경기를 끝냈다. 2 대 0 LG 승리. 김용수의 12승, 정삼흠의 23세이브였다. 투수 두 명밖에 등판하지 않았지만 LG는 초반부터 불펜에서 계속 구원투수들 몸을 풀게 하며 만전을 기했다.
경기가 없던 해태가 드디어 반게임차 아래로 떨어졌다. 빙그레도 전날에 이어 삼성을 꺾고 해태와 승차없는 3위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소식. 이날 노찬엽은 4타석 2타수 1안타 1볼넷 1희생타를 기록했고, 빙그레 이강돈은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두 경기를 남겨놓고 드디어 노찬엽이 대망의 타격 1위에 올라선 것이다.
9월 25일 화요일. 시즌 막판답게 이날은 광주의 태평양-해태 한 경기만이 열렸다. 괴력의 8연승 중에 만난 4일 휴식은 과연 해태에게 약일까 독일까..... 선동열 이강철 조계현 투수 세 명에 의존하는 해태로서는 나쁠 것이 없어 보였다.
이날 태평양을 상대로 해태의 선발 투수는 태평양 킬러 선동열. 이기면 해태의 단독 1위 탈환이 예정되어 있었다. 태평양 선발 투수는 조병천. 이름값에서부터 무게가 기울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선동열을 상대로 김경기가 쓰리런 홈런을 뽑아냈다. 일년 반 동안 이어지던 선동열의 무피홈런 행진은 이렇게 중요한 날 깨지고 말았고, 선동열은 무려 5실점을 하고 강판되었다. 22승을 한 선동열은 "팀에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최종 스코어 5 대 1 태평양 승리. 이틀 전까지 1위이던 해태는 빙그레와 승차없는 3위로 떨어졌다.
9월 26일 수요일. 시즌 마지막에서 두 번째 경기인 대 롯데전이 부산에서 열렸다. 지난 토요일 선발로 나왔던 김태원이 6이닝, 일요일 선발이었던 김용수가 3이닝을 던졌다. 1,2선발이 모두 투입된, 포스트시즌을 방불케 하는 투수운용이었고 역시나 두 투수는 산발 5안타 무실점으로 맥빠진 롯데 타선을 막았다.
이날의 수훈선수는 김선진. 1,2,3루타를 하나씩 쳤고 나갈 때마다 득점을 했으며 김동수가 승리타점, 대타 김영직이 쐐기 적시타를 치며 4대 0으로 승리했다. 김태원은 시즌 18승으로 선동열에 이은 다승 2위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한편 해태도 광주에서 OB를 4대 2로 꺾었다.
노찬엽은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는데, 갑자기 해태 한대화가 무서운 기세로 타율을 올리며 추격해 왔다. 타율 1위가 굳어져가는 것 같던 이강돈은 이 덕분에 순식간에 3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팀 순위도 팀 순위지만 타율 경쟁도 가히 점입가경이었다.
9월 27일은 LG 해태 빙그레 모두 경기가 없었고, 태평양이 삼성을 꺾고 삼성의 4위를 확정지었다.
9월 28일, 전날 삼성을 꺾으며 4위에 주저앉혔던 태평양은 이번엔 빙그레를 상대로 1대 0 완봉승을 거두었다. 양상문의 완봉승이었고 빙그레는 이 패배로 우승이 산술적으로 불가능해졌다. 해태는 삼성을 맞아 백인호의 9회말 끝내기 안타로 어렵게 승리하며 LG에 반게임차로 따라붙었다.
팀은 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게임이었던 이 경기에서 빙그레 이글스 이강돈은 4타수 2안타의 맹타를 휘둘렀고 극적으로 타격 1위로 복귀했다. 노찬엽과 한대화의 잔여 경기 성적에 따라 수위타자 타이틀을 잡을 수도 놓칠 수도 있었지만 이강돈은 이날 경기를 마친 후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렇게 운명의 9월 29일 토요일이 다가왔다. 마침 5일간의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오후 두 시엔 LG와 OB의 잠실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고, 인천에서는 역시 오후 두 시부터 해태와 태평양의 더블헤더가 기다리고 있었다. LG의 시즌 마지막 게임이었다. 여기서 LG가 이기고 해태가 더블헤더에서 1승 1패를 하면 LG의 우승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LG가 지고 해태가 더블헤더를 모두 이긴다면 반대로 해태의 우승 확정이었다.
아무리 전력이 처지는 태평양 돌핀스였다 하지만 더블헤더 두 경기를 싹쓸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태는 선동열을 구원투수로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고, 이기고 있거나 박빙이면 선동열을 등판시켜 두 게임을 모두 잡는다는 계획이었다. 혹시 첫 경기에서 선동열 등판 없이 이길 경우엔 두번째 경기에 선동열을 선발로 내세울 예정이었다.
시즌 막판을 맞아 띄엄띄엄 경기가 있었던 LG는 김용수를 선발로 내세웠고, 나머지 투수 모두를 불펜 대기시켰다. 상대인 OB는 비록 시즌 성적은 최하위여도 서울 라이벌에게 호락호락 정규시즌 우승을 내어줄 수 없었다. 그리고 노찬엽에게도 수위타자를 허락해줄 수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 싸움을 위해 에이스 구동우가 등판했다. 구동우는 일년 동안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타력이 약한 팀 사정 때문에 9승에 머물러 있었다. 모든 OB 팬들은 구동우의 10승, 그리고 노찬엽의 타격 1위 저지를 한마음으로 성원했다.
이강돈이 시즌 마지막 경기에 극적으로 타격 1위에 복귀했기에 노찬엽도 최선을 다해 안타를 때려내야만 했다.
LG는 전년도 꼴찌에서 두 번째 순위를 차지한 팀이었다. '90 시즌 개막 당시 이 팀이 1위를 다투고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 120번째 경기에 총력전을 펼치며 정규리그 우승 문턱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게다가 경쟁 상대는 해태였다. 시즌 내내 멀찌감치 중위권에서 헤매던 해태가 막판 스퍼트로 갑자기 선두 다툼에 끼어들어 더블헤더 두 경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마라톤으로 치면 42km를 달린 후 스타디움에 들어와서 마지막 400미터 트랙을 도는 셈이었다. 그런데 아직 두 선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90 시즌 최종 120차전, 9월 29일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