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리즈!

1990 LG 트윈스 우승 스토리 14

by 에덴의아래

(2013년에 쓴 글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14) 한국시리즈!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무려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다리 방식 포스트시즌 제도가 시행된 지 두번째 해,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KBO는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서 모든 포스트시즌 경기가 3,5,7차 최종전까지 다 열린다는 가정하에 휴식일까지 사이사이 낀 경기 일정을 확정해 버렸다. 앞선 시리즈가 일찍 끝나도 날짜는 고정되어 있었기에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오는 팀도 충분한, 어쩌면 지나치게 긴 휴식일이 보장되었다. 페넌트레이스 1위의 체력적 이점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정규시즌 종료와 함께 하루 아침에 뚝 끊어진 야구 일정, 게다가 최고의 빅매치 한국시리즈를 기다려야 하는 20여일의 시간.... 금단 증상이 찾아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야구가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친구로부터 결별을 통보받는 불상사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사실 어느 정도 예견은 했었다. 마지막 한 달 정도 우리는 뭔가 겉돌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더 프로야구 순위 싸움에 몰입해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권태기(?)일 것이고, 야구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면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고, 그렇게 애써 외면했던 것도 같다.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 이삼주 정도는, 그 이후에도 때때로, 혼자 있을 때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자꾸 상상이 상상을 낳았다. 이제 곧 나의 그녀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그 사람과 만날 시간을 기다리게 되겠지, 그놈의 허튼 말에 내게 그랬던 것처럼 밝게 웃어 주겠지, 그리고 그놈 품에 안겨 세상에서 오빠가 최고야 뭐 그따위 말을 해대겠지, 설마 새로 만난 놈이 OB 팬이어서 내년부터 둘이 사이좋게 OB 응원하러 잠실에 다니는 거 아닐까, 그렇게 조금씩 그놈이 그녀를 채워가고 나의 모든 흔적들을 다 지워버릴까, 그러면 나는 이 공허함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LG 경기조차 없는 10월 한 달은 정말 길고도 길었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것은 없다고,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고, 애써 믿어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단풍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도 불었다. 설악산 대청봉에 처음으로 올랐고,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단풍물이 흠뻑 든 설악산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아직 전두환이 백담사에 있을 때라 산길에서 불쑥불쑥 전경이 출몰해 우리를 놀래키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산은 너무나도 예뻤다.



나와 함께하는 것이 행복하지가 않다고, 그러니 이제 헤어지자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남녀 애정문제에 잘잘못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의미도 없고 맞지도 않는 일이지만, 따지면 모든 게 나의 잘못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닌 새로운 사람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빌어줄 의무가 내게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기원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흔적만큼은 그녀의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기를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소망했다.


공허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세상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지방자치제 시행 등을 놓고 야당 김대중 총재가 단식에 돌입했다. 아직 서울시장 도지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던 시대였고 이승만 때 하던 지방 선거 부활이 정치권에서 합의되어 있었으나 3당 합당과 거대 여당의 출현 이후 보류되고 있었다. 보안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민간인 사찰 목록 리스트가 담긴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 군의 민간인 감시를 폭로하는 초대형 사건도 터졌다. 디스크 안에 있던 사찰 대상 인물 및 단체가 깨알같은 글씨로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웠다.


여당이 내각제 추진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김대중이 단식을 중단하고, 그러자 이번엔 거기에 불만을 품은 여당 내부에서 김영삼의 내각제 추진 각서를 공개했다. 3당 합당 당시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내각제를 추진한다는 문서에 서명했던 것인데, 김영삼도 김대중도 김종필도 노태우도 연일 정치 생명을 건 승부수를 띄워댔다.


예쁘게 물들어가는 산자락, 긴박한 정치상황,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는 불안과 설레임, 새파란 가을하늘, 시원한 바람, 그리고 상상 속 미래의 ‘그놈’ 생각에 가슴 답답하던 나날....


나는 그 해 가을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시즌 막판 아주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90 시즌을 앞두고 태평양으로 자리를 옮긴 왕년의 MBC 청룡 투수 이길환이 10월 1일 롯데전에 타자로 등장했다. 중간계투로 1승을 기록 후 7월부터 자취를 감췄다가 갑자기 타자로 나온 것이다.


이길환은 82년 한국 프로야구 개막 경기 MBC 청룡 선발투수였다. 잠실 경기라 청룡의 홈게임이었으니 1회초에 등판하여 한국 프로야구 첫 공을 던진 주인공이 바로 이길환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한국나이 32세에 뒤늦게 (당시는 지금보다 선수 수명도 현저히 짧았다) 대타로 깜짝 등장했고, 안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은퇴했다. 무언가 사연이 있을 듯한데 정보가 제한된 일개 팬으로는 알기 어려웠다. 안타깝게도 그는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타격왕 타이틀은 결국 한대화에게 돌아갔다. 해태와 태평양과 10월 2일 시즌 마지막 경기. 한대화는 3타수 2안타면 타격왕에 오르고 4타수 2안타로는 모자랐다. 첫 타석은 평범한 외야 플라이. 두번째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뽑아낸 그에게 5회 세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태평양 투수는 조병천이었는데 한대화는 평소 조병천에게 강했다.


그런데 태평양 김성근 감독은 여기서 마운드로 올라가더니 팀의 에이스 최창호로 투수를 교체해 버렸다. 순위와 상관없는 게임임에도 태평양은 전력을 다했다. 후일 한대화는 ‘한때 모시던 감독님인데 그렇게까지 하다니 섭섭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대전고를 졸업한 한대화는 원래 OB 출신이고 당시 OB 감독이 김성근이었다).


어쨌든 여기선 볼넷. 7회 돌아온 네번째 타석에서 그는 마침내 안타를 뽑아냈다. 유격수 직선타로 잡힐 수도 있었는데 글러브를 맞고 튕긴 아슬아슬한 안타였다. 이 안타로 한대화는 이강돈을 0.00007 차로 제치고 수위타자를 차지했다.


시즌 막판 타율 경쟁엔 흔히들 밀어주기 혹은 상대팀의 견제로 찜찜함이 남는 경우가 많지만 90년의 수위타자 경쟁만큼은 정말 치열했고 정정당당했다. 이강돈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위에 복귀했고, 노찬엽은 마지막 경기에서 곽연수의 다이빙캐치로 1위 탈환에 아슬아슬하게 실패했으며,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하며 한대화가 타이틀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3-4위 간의 준플레이오프 전. 시즌 막판 1위에서 3위로 내려앉은 빙그레는 삼성에게 맥없이 졌고 빙그레 선수단 내분으로 인한 사보타지 설까지 그럴듯하게 퍼졌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장 외야에서 관전하던 빙그레 이강돈의 딸이 삼성 이만수의 홈런 공에 맞는 사고까지 당했다. 수위타자도 아슬아슬하게 빼앗기고 경기에도 지고 상대 선수 홈런 타구에 딸도 다치고.... 이강돈 입장에서 그보다 더 나쁜 경우의 수도 있을까?


그렇게 올라간 삼성은 기다리고 있던 해태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다.


누구나 해태가 이길 거라 예상했다. 첫 두게임이 광주였던 데다 해태는 단기전엔 그 어느팀보다 강했다. 나 역시 한국시리즈는 LG와 해태의 사생결단 빅매치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1차전에서 예상을 깨고 김용국이 선동열로부터 결승 투런홈런을 뽑아내며 4대 1로 삼성이 승리했다.

플레이오프의 백미는 2차전이었다. 0대 2로 뒤지던 삼성은 7회초 1대 2로 따라붙은 뒤 1사 1,3루 찬스를 맞았다. 여기서 좌익수 플라이가 나왔으나 홈 언더베이스를 의식한 해태 좌익수 이호성이 (후일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질러 지금도 한국 범죄사에 이름이 오르내르는 그 이호성이 맞다) 포구 에러와 송구 에러를 연이어 저지르는 바람에 순식간에 역전을 허용했다.


해태는 3대 5로 패색이 짙던 8회말 1사 1,2루에서 장채근의 극적인 쓰리런 홈런으로 다시 재역전했다. 곧이어 홍현우의 백투백 홈런까지 터지며 점수는 7대 5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삼성은 9회초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선동열을 상대로 박승호의 안타에 이은 김용철의 동점 투런홈런으로 경기를 극적으로 연장으로 끌고 갔고, 결국 연장 11회 접전 끝에 8대 7 케네디 스코어로 승리했다.



원정에서 2연승을 거두고 돌아와 이어진 대구의 3차전은 삼성의 시리즈 승리를 확인하는 게임에 불과했다. G의 한국시리즈 상대팀은 그렇게 삼성으로 결정되었다.


해태보다는 삼성이 부담이 없었다. 일년 간 상대전적은 13승 7패로 LG의 압도적 우세. 김태원이 5승 무패, 문병권이 5승 1패를 기록했고, 반면 삼성에서는 성준이 2승을 거두었을 뿐 특별히 LG에 강한 투수가 없었다. 특히 잠실에서 LG가 8승 2패로 우세했는데 3,4차전만 제외하면 모든 경기가 잠실에서 열린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삼성은 역시 시즌 상대전적 7승 13패로 열세이던 해태를 3연승으로 격파하고 올라온 팀이기도 했다. 단기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지쳐있어야 마땅한 삼성 선수단은 KBO의 일정 덕에 무려 8일간을 쉬고 쌩쌩해져 돌아왔다.



드디어 대망의 한국시리즈!


10월 24일 수요일. 어마어마한 인파가 잠실에 몰렸다. 경기는 오후 6시였지만 새벽 5시부터 매표소 앞에 줄이 만들어지더니 오전 10시경에는 인근 도로까지 대기줄이 넘쳐났다. 나는 감히 그 대열에 낄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집에서 TV나 보기로 했다.


현장 판매 표는 금방 동이 났다. 삼성과 럭키금성 양 회사에서 입장권을 대거 입도선매했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5천표, 럭키금성에서 약 8천표 정도를 쓸어갔고, 한국시리즈 1차전은 그렇게 동원된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들이 과연 야구팬이기는 했을까? 일년 내내 팀을 응원해왔던 팬들을 위한 장치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구단에 대한 배신감을 처음으로 느껴본 순간이었다.


(지금도 시즌티켓 구매자는 포스트시즌에 입장할 수 없다는, 외국 사례에 비추어 봐도 말이 안 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시즌 경기는 구단, 포스트시즌 경기는 KBO 주관이라는 행정적 문제 때문에......)


상대 선발은 좌완 성준임이 거의 100% 확실했고, LG는 끝까지 연막작전을 폈는데 누가 봐도 김용수가 나올 게 뻔했다. 18승 투수이자 다승 2위인 김태원이 시즌 중 1선발 역할을 맡았지만 이런 게임엔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투수가 유리했다. 한 달 가까이 컨디션을 관리하여 나온 LG의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좌완을 상대로 한 베스트 라인업이었다.


1번 박흥식 8
2번 김재박 6
3번 김상훈 3
4번 노찬엽 9
5번 김동수 2
6번 이광은 5
7번 김선진 D
8번 나웅 4
9번 이병훈 7

투수 김용수


막이 올랐다. 1회말 LG 공격, 1번 박흥식이 안타를 치고 나갔고, 2번 김재박의 번트 실패 후 빗맞은 타구마저 투수앞 내야안타가 되고 말았다. 타석에 김상훈이 들어섰다. 주자만 나갔다 하면 작전을 거는 백인천식 야구에 대항하느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삼성은 3루수가 얕은 수비를 펼쳤다. 상대가 거포 1루수 김상훈이었음을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안 가는 수비 포메이션이었다. 감독은 번트 대신 강공을 걸었고, 김상훈은 보란듯이 3루수 옆을 꿰뚫는 좌전안타를 쳤다. 선취점이 들어왔다. 그렇게 1회말에만 집중 5안타가 나왔고, 삼성 선발 성준은 채 1회도 채우지 못한 채 강판 당했다.


점수 차는 3회말에 결정적으로 벌어졌다. 11명의 타자가 나와 5안타, 볼넷 두개, 상대 실책을 묶어 5점을 추가 득점했고 승부는 7대 0으로 기울었다. 무려 세 번의 히트앤드런이 안타로 연결되어 삼성의 혼을 빼놓는, LG 특유의 기동력 야구가 빛났다. 경기감각 문제 따위는 없어보였다.


김용수가 7이닝 4피안타 1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 정삼흠이 2이닝 무피안타 2탈삼진으로 삼성을 영봉하는 동안 타선은 무려 21안타를 쳤다. 의도적으로 깎아치는 다운스윙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백인천식 타법이었다. 13 대 0의 승리. 한국시리즈 최다점수차 완봉(13점), 팀 최다안타(21개), 최다득점 승리(13점) 신기록이었다. 워낙 일방적인 경기여서 새벽 5시부터 줄을 선 사람들은 (개중엔 암표상도 많았겠지만) 맥이 풀렸을 것이다.



다음날 2차전. 비가 내리다 그친 날씨가 으슬으슬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TV나 보려던 나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종종 야구장에 같이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였다.


"야! 표 샀어. 빨리와! 내가 혹시나 해서 야구장에 와 봤는데, 생각보다 줄이 안 긴 거야."


서둘러 찾아간 잠실엔 제법 추운 가을 저녁이 펼쳐져 있었다.


LG는 김태원, 삼성은 김성길을 내세웠다. 전날 좌완을 상대로 한 것과는 다른 타순이 제출되었다. 왼손 타자들이 1번부터 4번까지 전진배치되었다.


1번 박흥식 8
2번 윤덕규 7
3번 김상훈 3
4번 김영직 9
5번 노찬엽 D
6번 김동수 2
7번 이광은 5
8번 김동재 4
9번 김재박 6

투수 김태원


감독의 우려대로 큰 경기 경험이 없는 김태원은 심리적인 문제인지 초반에 흔들렸다. 볼넷에 이어 박승호에게 2루타를 얻어맞으며 1회부터 한 점을 실점했다. 2회초에도 3연속 볼넷을 허용했으나 삼성의 더블스틸 실패, 이어진 우전안타 때 우익수 김영직이 2루주자를 홈에서 아웃시키며 다행히 무실점으로 넘길 수 있었다.


3회말 LG 공격에서 무사 1,2루 찬스가 왔다. 타석의 노찬엽은 그러나 번트 실패 후 병살타를 치고 말았다. 그렇게 기회가 물건너가는가 싶던 순간, 다음타자 김동수의 안타가 나오며 1 대 1 동점이 되었다.


삼성은 6회초 박승호의 솔로홈런으로 다시 한 점을 달아났다. 3회부터 올라온 삼성 투수 김상엽은 무실점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1 대 2로 뒤진 채 경기는 흘러갔다.


9회말 마지막 공격. 1번 박흥식이 안타를 치고 나갔다. 벤치는 2번 윤덕규 타석에서 히트앤드런을 걸었고, 이것이 안타가 되며 무사 1,2루의 찬스가 왔다. 이제 3번타자 김상훈.


전날 1차전 1회말에서 똑같은 상황에 강공이 성공했었다. 이번에도 강공을 할 것인가, 번트를 댈 것인가? 허를 찔릴 것을 우려한 3루수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전진수비를 했다.


LG 벤치의 선택은 강공. 그러나 타구는 유격수 병살타가 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2아웃에 주자 3루로 상황이 변했다. 3루엔 대주자 민경삼. 대기석의 다음 타자는 노찬엽. 타자는 김영직.


김상엽은 김영직에게 승부를 걸었고, 결과는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짧은 중전 안타였다. 9회말 2사후 극적인 김영직의 동점 적시타였다. 잠실의 관중석은 폭발했다. 3회부터 잘 던지던 김상엽은 9회말 2아웃 마지막 91구째에 동점타를 허용하며 교체되었다.


LG가 3회와 9회에 각각 한 점씩 낸 점수 모두 병살타 후 2사 3루에서의 적시타였다. 삼성 배터리의 성급한 승부였을까, LG의 집중력이었을까. 김영직은 2회 초 수비에서 홈 송구로 주자를 잡아낸 데에 이어 극적인 동점타까지 터뜨렸다.



연장전. 마운드에 정삼흠이 올라왔다. 10회초 삼성 공격은 삼자범퇴. 삼성 역시 이태일이 투수로 올라왔다. 10회말 LG 공격도 삼자범퇴.


11회초 삼성 공격에서 1사 후 김용철의 안타가 나왔으나 포수 견제에 걸려 아웃되며 기회가 사라졌다. 김동수는 타격도 타격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포수 견제구 혹은 도루 저지가 팬들에겐 너무나 멋졌다.


11회말 LG 공격. 1사후 대타 이병훈이 등장했다. 그는 좌익수 왼쪽 깊은 곳에 떨어지는 2루타를 쳐냈다. 다음 타자 윤덕규마저 중전 안타. 덕아웃 밖에 나와서 초조하게 경기를 보고 있던 백인천 감독은 2루주자 이병훈이 3루에 멈춰 서자 흙을 한 움큼 집어 덕아웃에 뿌리며 아쉬워했다.


이제 타순은 김상훈 김영직으로 이어지는 좌타 라인. 삼성은 좌완 정윤수를 올리고 김상훈을 고의4구로 내보내며 만루를 채웠다. 연장 11회말 1사 만루. 타석에는 9회말 동점타의 주인공 김영직.


김영직은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냈다. 끝내기 밀어내기였다.


3루측 삼성 팬들은 무료로 나누어주었던 노란색 플라스틱 응원도구(메가폰?)를 일제히 그라운드로 투척하며 자리를 떴다. 삼성 선수단은 날아오는 응원도구 세례에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이런 귀한 표를 구해준 친구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술을 한 잔 샀다.







야구를 이기니 답답하던 가슴이 풀어졌을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경기가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야구가 나의 인생 문제나 연애 문제를 풀어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어쨌든 LG는 잠실 홈에서 단 3명의 투수를 쓰며 2연승을 거두었고, 선수들은 대구 2연전마저 다 이겨 네 번으로 끝내버리겠다고 공언했다. 나는 대구에서 한두번쯤 지고 서울로 돌아오길 바랐다.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야구의 신은 나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3차전, 누구나 선발투수 문병권을 예상했다. 시즌 내내 팀의 3선발이었으며, 문병권 본인에게도 경기 전날 선발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당일 갑자기 투수가 김기범으로 변경되었다. 김기범의 컨디션이 갑자기 올라와서, 라는 게 감독의 설명이었지만, 어쩌면 내부인까지도 철저히 속인 위장술이었는지도 모른다. 문병권으로서는 참 김빠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언더핸드 문병권을 예상하고 라인업을 짠 삼성은 느닷없이 등장한 좌완 김기범을 상대로 고전했다. 6.2이닝 동안 단 2안타 무득점의 빈공에 시달렸다. 한편 삼성 선발투수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회도 채 못 채운 성준이 다시 등판했다.


2회초 LG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무사 만루에 타석에 이병훈. 마음이 조급한 삼성은 경기 초반이었음에도 극단적인 전진수비를 펼쳤다. 그런데 이병훈의 타구는 공교롭게도 원바운드로 3루수 키를 넘어가는 2타점 안타가 되었고, 이어 김영직이 외야 희생플라이를 치며 LG가 3 대 0으로 앞서나갔다.


6회 2아웃부터는 투수가 정삼흠으로 교체되었다. 삼성은 계속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그렇게 이미 승부가 기운 9회말 2사 1루, 삼성 이만수가 투런홈런을 쳤다. 그리고 주먹을 흔드는 기운찬 세레모니를 하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래봤자 3 대 2이고 9회말 2아웃 주자도 없는 상황에 마치 역전 홈런이라도 친 듯한 너무나 힘찬 세레모니가 생뚱맞았다.


홈런을 맞았던 정삼흠은 후일 '이만수가 좋아하는 바깥쪽 높은 직구를 던지라는 벤치 사인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차피 3점 차이고 홈런을 맞아봤자 승패가 바뀔 것도 아니니 이럴 때 이만수에게 안타를 하나쯤 맞아줘서 다음날 4차전에도 선발 포수로 출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LG는 이만수가 포수로 들어와 있을 때의 공배합에 자신이 있었다. 삼성은 별다른 위압감을 주지 못했다.



이어진 4차전은 LG 우승의 확인 절차에 불과했다. 에이스 김용수가 다시 나왔고, 공격에서 선발 전원안타를 치며 삼성을 6 대 2로 제압하고 대망의 우승을 실현했다.







네 게임 총합 점수 25 대 6, 안타 51대 23의 일방적인, 다소 김빠지는 시리즈였다. 타선의 폭발력도, 수비력도, 그리고 경기를 대하는 여유까지도, 모두 압도적인 승리였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역시 투수력이었다. ‘90 시즌 프로야구 방어율 순위를 보면 김용수, 김태원, 정삼흠이 각각 2, 3, 7위를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LG는 김용수, 김태원, 정삼흠, 김기범 단 네 명의 투수만 등판시키며 4연승을 만들어냈다.


백인천 감독은 투수의 하체훈련만 되면 밸런스는 저절로 잡히는데 한국 투수들은 일본 투수들에 비해 하체훈련이 부실하다는 지론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정규시즌 종료 후 한국시리즈가 다가오는 20여일 간 투수들의 하체훈련을 주로 실시하는 특이한 훈련법을 썼다. 김용수도 시즌 초반 부진하자 하체훈련 위주의 훈련 프로그램을 짜서 시즌중 한달 간 체력훈련을 시킨 끝에 선발 전환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다.


우리의 첫 우승은 그렇게 찾아왔다. 장소가 서울이 아닌 대구였음이 아쉬울 뿐이다. 서울에서 우승을 차지했었다면 (불법이지만) 축제의 시가행진이라도 벌였을텐데 말이다.


한 시즌에 두 번이나 헹가래를 받는 백인천. 여전히 굉장히 행복해 보인다


참고로 4년 후인 94년 LG 우승 때의 이광환 감독 헹가래 장면. 위와 비교해보면 참 심심하기 짝이 없다....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 등으로 보강했던 최일언, 김신부 등의 투수진은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89년 MBC 청룡에서 전혀 전력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은 팀이었다. 심지어 코치진도 백인천 감독이 원년 청룡 멤버들을 전격 발탁한 멤버들이었는데, '무명코치 4인방'이라고 불리던 김봉기(주루) 정순명(투수) 김용달(타격) 최정기(배터리) 코치는 야구판을 떠나 각각 보험영업사원, 스포츠용품점, 불펜포수 등을 하다 야구판에 돌아온 코치들이었다. 언론에선 LG 코치진마저 최약체라 했었다.


역시 시즌 전 예상대로 개막 두달 후 이 팀은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 LG 트윈스의 우승은 가히 기적이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스포츠서울 지면


돌이켜보면 94년 우승 때의 LG는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신인 3인방을 비롯, 이상훈 김용수 한대화 등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시즌이 재미 없을만큼 승리가 당연했다. 하지만 90년 우승의 주축 멤버는 김재박 신언호 심재원 이광은 김용수 김상훈 정삼흠 박흥식 노찬엽 윤덕규 유종겸 등등 MBC 청룡부터 뛰어온 선수들이었다.


우승 한 번 못하고 역사의 뒤로 사라진 MBC 청룡, 80년대 내내 축적된 팬들의 한과 무력감은 이 뜨거운 한 해를 거치며 비로소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내가 지금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청룡을 회상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건 오로지 그 해, 청룡의 멤버들로 LG 트윈스가 창단 첫 해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MVP에는 2승을 거둔 김용수가 선정되었다.


김용수와 MVP 경합을 벌였던 시리즈 리딩히터 김상훈은 “한국시리즈 한 번 출전 못 해보고 은퇴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감격에 겨워했다.


82년 MBC 청룡 창단멤버 이광은은 “시즌 초반엔 우승 한번 못해보고 방망이를 놓는구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의 야구인생이 슬펐다”면서 “내일 은퇴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9회말 마지막 타자를 3구 삼진으로 잡으며 두 손을 높이 들어올렸던 정삼흠은 “90 시즌은 우리팀을 위한 해였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렇다. 1990년은 우리를 위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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