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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소울 May 29. 2024

50대 서핑 도전, 이게 되네?

“언니, 나랑 서핑 배워 볼래?”


속초국민체육센터 수영장에서 평형과 접영을 어설프게 배웠을 즈음, 드디어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근자감이 생겼다. 수영장에서 친해진 언니에게 서핑을 도전해 보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혹시나 언니의 마음이 변할까 봐, 그 자리에서 즉시 서핑스쿨에 전화를 걸었다. 설악 양양해변에서 서핑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오전 강습을 예약했다. 



마침 설악 양양해변 지점 10주년 차 기념으로 10% 할인을 해준단다. 2시간 강습, 서핑 슈트, 서핑보드, 수건, 바디워시, 샴푸 및 샤워실 대여, 그리고 자유시간 즐긴 후 7시 전 반납 조건이었다. 둘 다 50대 첫 서핑 도전인데, 왠지 시작부터 횡재한 느낌이었다.


두근두근 생애 첫 서핑 도전을 앞두고,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간단한 영상교육으로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배운 후 강사가 눈썰미로 건네준 서핑슈트를 입고, 서핑보드를 배정받았다. 헉, 근데 이거 왜 이리 무거운 거야. 서핑하기 전에 바닷가로 서핑보드를 들고 나르는 일이 난관이었다. 백사장에 질질 끌다시피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서핑보드를 백사장 위에 놓은 채로, 평지에서 강사의 구령에 맞춰서 기본자세 취하는 법을 배웠다. 보드 위에 손바닥을 가슴부근에서 짚고 엎드려 있다가, “하나” 하면 상체를 들고, “둘” 하면 한쪽 무릎을 세우 듯 쪼그려 앉고, “업” 하면 보드 위에서 일어서면 된다. 이때 무게 중심은 뒷발에 가 있는 게 포인트였다. 


그런데 반복 연습 중에 강사가 우리 둘을 부르더니, 보드를 들고 다른 한쪽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박치도 아닌데,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와 나는 마음과 다르게 몸이 삐그덕거리고 있었나 보다. 강사는 하나, 둘에 그치지 않고 무려 ‘세 박자’에 맞춰 다른 동작을 훈련시킨 후 우리를 일어나게 하였다. 좀 민망하긴 했지만, 뭐 어찌 되겠지.



우리는 자꾸만 소심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강사를 따라 파도를 거슬러 보드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파도가 마주쳐오면, 보드의 뒷부분을 손바닥으로 눌러야 했다. 그러면 보드 앞이 살짝 띄운 상태가 되는데,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파도를 넘어가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처음이다 보니까, 힘을 주는 요령과 타이밍이 어긋나서 보드가 뒤집히기도 했다. 그 바람에 몇 번이나 서핑보드에 여기저기 얻어맞기도 하고 바닷물에 빠지기도 했지만, 용케 파도를 헤쳐 나갔다.


파도가 어느 정도 높이 치는 지점까지, 강사를 찾아 간신히 도착했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서핑 보드 앞방향을 돌려 파도 탈 준비를 했다. 보드 위에 엎드린 채로 앞서 배운 훈련이 무색하게, 어찌어찌 급히 일어섰다. 그런데, 어라, 이게 되네? 



모래사장 위에서 연습 당시에 열등생이었던 나는, 너무나 운 좋게 단 한번 만에 서핑보드 타기를 성공했다. 함께 간 언니는 두 번 만에 성공했다. 이게 웬일이야? 아직도 다른 젊은이들은 물에 빠지기 바쁘구먼. 50 이들이 먼저 성공하다니.


우리는 성공했다는 기쁨에,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도 아닌데, 반복해서 설악 양양해변의 파도를 거슬러 서핑을 계속했다. 벌써 두 시간이 지났나? 강습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수제버거 가게에서 버거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보드를 밀며 바다로 향했다. 



보드를 밀며 나아가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희한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응? 언제 저기까지 갔지? 근데 저 언니가 왜 다른 사람한테 지도받고 있는 거야?” 어찌 된 일인가 했더니, 같은 서핑센터 사장님이 서비스로 추가 강습해주고 있다고 했다. 오후 강습 수강생들이 파도를 거슬러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기다리는 참에 해준단다.  “아싸, 그럼 나도!”





과유불급 이랬는데, 너무 열심히 서핑을 즐겼나? 7시 다 돼서 반납하고 돌아오는데, 속초로 오는 내내 눈이 시리고 눈물을 펑펑 흘러서 운전하기 힘들 정도였다. 다음날 안과에 가봤더니, 자외선에 수정체 망막이 손상되었다고 했다. 당분간 선글라스 꼭 끼고 다니라며, 치료 및 처방해 주었다. 나는 혹시나 서핑을 다시 못하게 될까 봐 의사에게 “그럼 서핑 다신 하면 안 돼요?” 했더니, 나으면 ‘적당히’ 하란다. 아, 다행이다.


함께 갔던 친한 언니는 보드에서 내릴 때 잘못된 자세인 무릎으로 착지하더니, 무릎 연골에 탈이 났다고 했다. 정형외과 의사가 한 달은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고 아쉬워했다. 마음은 즐겁고 좋았는데, 몸이 안 따라주네. 살짝 서글퍼질 뻔했다. 





나는 일주일쯤 지나 눈 상태가 낫자마자, 자외선 세기를 고려하여 오후 강습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20대 초반의 Z세대 대학생인 수영장 친구랑 두 번째 서핑을 갔다. 어라? 그런데 우리 젊은 친구는, 처음에 일어서기를 몇 번 실패하더니, 해변으로 돌아갔다. 자기는 실내수영장 체질인 것 같다며, 서핑은 안 하겠단다. 


백사장에 서핑보드를 놓은 채 앉아 있는 어린 친구에게 마음이 쓰여, 서핑 중간중간 나와서 함께 사진도 찍고 놀아주었다. 나는 바닷물에 빠져서 머리가 비록 물미역처럼 되기도 했지만, 직접 패들링까지 하면서 너무 재미있게 놀았다.



서핑보드를 끌다시피 들고 반납하기 위해 오는 길에, 누군가 모래사장에 파 둔 하트모양을 발견하였다. 잠시 보드를 내려놓고, 하트 구멍 안에 핸드폰을 넣고 어린 친구랑 셀카놀이를 했다. 선크림을 두껍게 발랐지만 바닷물에 풍덩풍덩 빠졌더니, 검게 그을고 군데군데 기미도 올라왔다. 하지만 뭐, 어때? 사뿐히 커버하고 다니면 그만이지.


속초살이 10개월 만에, 나는 서핑도 할 줄 아는 속초 시민이 되었다. 나 이만하면 속초 일년살이 잘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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