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랑소울 Jun 05. 2024

이게 실화냐? 몸이 기억하는 자전거 타기

조심하세요! 저 초짜에요!

비틀비틀 “조심하세요. 저 초짜에요!”, 어느새 큰소리로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청초호 엑스포 광장의 자전거 도로에 비명같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는 모양새가 우스웠는지, 다행히 사람들이 다들 비켜주었다.


이제 무슨 일이냐고? 초등학생 때 이후로 자전거를 탄 적이 없는 내가, 자전거를 타면서 벌어진 일이다. 아름다운 호숫가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풍경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수영장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를 꼬드겼다.


“너 자전거 잘 탄다고 했지?” 

“응, 왜?”

“그럼 나, 자전거 몇 번 만 잡아주라.” 하고서, 그 친구가 수영을 마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



곧장 픽업해서 청초호 엑스포 광장으로 가서는 곧장 청소년용 자전거를 빌렸다. 친구에게 뒤에서 잡아주다가 조금 가는 것 같으면 손을 놓아 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다.


무슨 근자감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차하면 넘어지기 밖에 더하겠어? 삐뚤빼뚤 "어어, 간다, 간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친구한테 “이제 손 놔.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는데, 벌써 놨단다. 



넘어질 듯 안 넘어지는 묘기를 부리며 겨우 광장을 한 바퀴 돌다 보니까, 친구는 내가 준 찐 밤을 다람쥐처럼 까먹기에만 바빴다. 사실 걱정을 하며 각오를 했었단다. ‘쟤를 몇 시간이나 자전거 잡아줘야 되면 어쩌지?’ 하고. 


한 20분쯤 더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계속 소리치며 몇 바퀴 돌고 오자, 알밤 먹던 친구가 한마디 툭 던졌다.

“너 이제 영랑호 가서 타도 되겠다.”

“오잉? 정말?” 

나는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영랑호로 가자.”


영랑호 윗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우리는 자전거를 다시 한번 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인 여성용인데? 안장은 왜 이렇게 높은 거야.”하고 툴툴거리면서 자전거에 올랐다.



좀 전에 청초호에서 탈 때 보다 더 크게 휘청거리면서, 바짝 긴장하고 몇 번이나 씨름 끝에 자전거 페달을 제대로 밟을 수 있었다. 출발이 왜 이리 어렵냐고! 한번 나아가니까 바퀴를 구르며 달리기는 곧잘 되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번 멈추면 출발이 또다시 어려워져서 그냥 고고씽 할 수밖에 없었다.


영랑호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걸으면서 호숫가 둘레길을 산책하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 상쾌함과 자유로움이란! 


기분 좋게 달리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뒤에 오는 줄 알았던 친구가 안보였다. 전화받는다고 잠깐 멈춘 사이에 내가 기세 좋게 달려서 호수 반대편까지 가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흐릿하게 초점이 안 맞기는 하지만, 인증샷도 찍었네? 기특해라.



에잇, 기분이다. 오늘은 한우쌀국수 내가 쏜다! 자전거 1일 선생님을 자처한 친구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워서 함께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너무 재밌고 나름 뿌듯해서 내일부터는 혼자 영랑호 와서 1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속초살이 중에 나의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이렇게 또 하나 실현하다니. 이게 실화냐? 나도 몰랐던 나의 운동신경이 이렇게 대단했었나? 몸이 기억하는 자전거 타기 능력에 감탄하면서, 행복감을 가득 안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