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개처럼 죽고 오징어처럼 태워졌다. 화장터 희뿌연 연기를 삼키며 굴뚝 위로 빗물이 떨어지는 동안 방앗간에 쌀 빻으러 온 것처럼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모여 땅 잘 사서 떼돈 벌었다는 사람 이야기와 별 볼일 없는 사람의 별 볼 일 없는 자식이 대단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떠들다가 상자에 담긴 뼛가루를 받아 쥐곤 돌아들 갔다. 나는 외할머니 다릴 베고 누워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며 사탕을 빨고 있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깼다를 대여섯 번 반복하고 초록색 눈깔사탕을 네 개나 먹어치워 온 입안이 파충류 뱃속처럼 흐물흐물해졌을 즈음에야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그녀의 뼛가루가 장식 없는 사각통에 초라하게 담겨 나왔다. 그리고 별안간 울음이 났다. 그렇게 사각통에 들어가 앉은 그녀는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난 3박 4일 동안 울기만 하다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고 혼미한 의식 속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다고 기억된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온 것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헛것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봐요."
이모의 목소리가 구름 뒤에서 들렸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얜 내가 키운다."
외할머니도 구름 뒤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난 잠에서 깨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엄마 나이가 몇인데 쟬 키워? 지 애비가 멀쩡히 살아있는 애를 고아 만들 거예요? 그럼 얘가 이담에 커서 아이고 고맙습니다 할 것 같아요?"
이모의 목소리가 좀 더 또렷이 들렸다.
"얜 내가 키울 테니 그리 알고 그 얘긴 그만둬."
"그 사람도 자기 애가 있는 줄 몰랐다잖아. 언니가 이혼하면서도 애가진 걸 입도 뻥긋 안 했으니까 그런 거지. 자기도 여태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서 제자식 데려가겠습니다 할 면목이 없을 거잖아. 그러니까 이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 여기 교수자리 얻는 대로 귀국한대잖아."
할머니는 더 이상 대꾸를 않으셨다. 이모는 차라리 엄마 죽고 나면 그땐 내가 키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싫어요, 싫어!라고 했다면 할머니는 결심을 달리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깨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징어처럼 태워진다는 건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었어."
난 그가 듣거나 말거나 하며 술병에다 대고 소리 질렀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머릴 긁적였다. 음악소리가 지독스럽게도 큰 술집이었다. 스피커에서 드럼소리가 울릴 때마다 테이블 위에 까놓은 땅콩껍질들이 경련을 일으킬 만큼이었기 때문에 난 줄곧 소리 지르듯 말해야 했다.
"사람을 태우면 오징어처럼 탄단 말이지?"
그가 미간을 일 그리며 말했다. 취기가 제법 돈 얼굴이었다.
"그렇다니까."
"뼈를 발라낸 것도 아닌데?"
"허리가 꺾이면서 오그라 들겠지."
난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고 그는 고갤 끄덕였다.
"극적이구나."
"뭐가?"
"아버지란 걸 안 것 말이야. 넌 어땠어?"
" … …."
"TV드라마처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니?"
"글쎄. 그런 건 아니었어. 그저, 아버지이길 바랐겠지. 사실 난 그때 아무 아저씨나 보면 아버지인 줄 알았거든."
"돌아가셨댔다며?"
"상상할 순 있으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이 얘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니?"
난 불만스럽게 물었다.
"니가 원할 때까지."
"그럼 이제부터 그만해야겠어."
내가 말했다.
"좋도록 해."
"… 기억해 내긴 쉽지 않아. 그런데 잊는 건 더욱 어렵지."
술병에게 말했다.
"이름이 서은이 라고?"
그가 물었다.
"네."
"서은이는 뭘 제일 좋아하니?"
"없어요."
이모는 나가기 싫다는 날 기어이 끌어다가 그의 앞에 앉혀놓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본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랬다. 자신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기들 내키는 대로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나 역시 이모와 같이 돌아가길 간절히 원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말하는 속도만큼이나 걸음이 빨랐기 때문에 난 그녀의 손을 잡고 걸으면 러닝머신에 올라서서 22세기로 나아가는 초일류기업이라는 광고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서은아!"
아무 말 없이 앉은 나를 보고 그도 한동안 말이 없더니 갑자기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난 사람처럼 불렀다.
"… …."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 …."
엄마는 죽었고, 자, 내가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요? 맞춰보세요.라고 되물을 뻔했다.
"아저씨가 누군지 어른들이 말씀해 주셨어?"
"… …?"
질문이 너무 많았다. 그 어색하던 마주함을 그는 질문으로 피해볼 생각이었을까?
"고아원에서 온 것만 아니면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생존의 기로에 선 어린 나의 대답은 어떤 의미에서 처절함이었다. 엄마가 죽은 이후로도 이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이 세상과는 달리 나의 세상은 무너진 흙더미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오징어 같아요."
난 어쩌면 철학자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람하고 오징어가?"
"죽고 나서 오그라드니까요."
그는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말을 멈추고 멍하니 나를 봤다.
"고아원엔 절대 안 갈 거예요."
나의 말에 그의 버퍼링이 풀렸다.
"누가 고아원에 데려간대?"
그의 말투는 마치 넌 고아원에서도 안 받아줄걸? 하 듯 들렸다.
"… …"
창밖을 봤다. 엷은 갈색으로 선팅 된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타고 흐르는 플라타너스를 지나, 길 건너 고층건물에 매달려 유리를 닦는 사람이 보였다. 엄마가 떠올랐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서 바라보는 세상이 가장 좋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겨워졌을 테지.
"나는 커서 유리창 청소부가 될 거예요."
길 건너 유리창 청소부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도 내가 보고 있는 쪽을 흘깃 보았다.
"왜?"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건너편 고층건물유리에 매미처럼 매달린 사람이 여전히 여전히 걸레질을 해대고 있었다. 서커스의 공중곡예를 보 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치 그가 떨어지길 기다리기라도 하 듯. 그런 날 쳐다보는 그의 모습이 유리에 반사되었다. … ….
시간이 제법 흐르고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 꿈틀거리던 어머니의 기억으로 온통 엉망이 되어버린 내 유년시절에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이 또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방학식이 끝나고 교실을 막 나섰을 무렵 복도 한 끝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던 그를 기억한다. 머쓱하게 큰 키에 나이에 비해 일찍 솟아오른 새치들. 나는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서은아!"
"… …?!"
"아저씨 기억나니?"
나는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느리게 고갤 끄덕였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내 가방을 들어주려 했다. 나는 불안하게 몸을 뒤로 빼며 그가 무언가 더 말하길 기다렸다. 그의 표정이 허약해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게 그 존재의 불확실성만큼이나 불완전하다는 걸 그는 커가면서 잊은 모양이었다. 그는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어떡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무릎을 굽히고 나와 눈을 맞추었다.
"… 아저씨가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었잖아."
그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웅얼댔다.
'아…!' 그는 내게 몇 번이나 선물과 편질 보내왔었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 대답 대신 고갤 끄덕였다.
그가 웃었다.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기억해 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잊는 건 더욱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