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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안메아 Sep 30. 2024

그녀는 집을 떠나고

3.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엄마가 돌아가신 이듬해 할머니조차 지병으로 숨을 거두셨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내가 어이 살겠냐 시던 말처럼 그렇게 뚜렷한 병명도 모른 채 며칠을 앓다가 그만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난 다시 그리 많지도 않은 내 짐들을 꾸려 이모 집으로 옮겨갔고, 이후로 줄곧 그들의 삶에 얹혀살아야 했다. 가방에 달아둔 쓸모도 없고 그다지 적절하지도 않은 장신구처럼 말이다. 이모는 외할머니가 관리해 오던 내 상속재산들을 맡게 되었고 그래서 처음 한동안은 모두들 내게 친절했다. 이모부조차도. 그런데 이모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모든 건 달라졌다. 내가 물려받은 모든 것들을 날려 버렸고 이모부와 이모의 잦은 다툼 끝엔 언제나 내 양육에 대한 불평이 쏟아졌다. 이모네 아이들조차 그들 부모님의 싸움은 나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걸 다시 죽은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디 가고 싶은데 있니?"


한참을 달려온 그가 별안간 그렇게 물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나는 그의 질문을 고쳐주었다.


"음, 동해바다에 가고 싶은데 서은이는 어때?"


"상관없어요. 어딜 가도 좋아하진 않을 테니까."


그는 한동안 대꾸 없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창 밖을 봤다. 낯설다고 의식할 새도 없이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지나쳐 가는 전봇대의 개수를 세려고 온 정신을 거기에 쏟아붓고 있었는데 76개까지 세었을 때 갑자기 한 무리의 전봇대가 지나가버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된 채 우울해졌다.


"별로 재밌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나?  어떻게 알았지?"


그는 새삼 놀라는 척했다. 


"놀라는 척할 거 없어요. 나 말고도 서른 명쯤은 얘기했을 텐데."


그는 웃었다. 


"얼마나 남았어요?"

    

난 차창에 이마를 갖다 대며 물었다.


"이제 다 왔어."


이제 다 왔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멀미가 났다. 그래서 그는 도로 가장자리에다 차를 세우고 내 등을 두드려야 했다.  난 먹은 걸 다 토한 후 그에게서 두 번 다시 '이제 다 왔어.'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다시 차에 올랐다.  내 예상대로 한 시간쯤 더 달린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속 100 Km 속도로 한 시간을 달려야 할 거리를 이제 다 왔어라고 하다니…. 

  

우린 도착하자마자 호텔을 정하고 해변이 보이는 음식점에서 빈 속을 채운 뒤 바닷가를 조금 걷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바닷가는 피서인파로 넘쳐났지만 그는 그곳에서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하며  발에 차이는 게 사람인지 돌부린지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생각에 잠긴 채  두 시간이나 머물러 있었다. 

그날 밤 난 잠결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몇 번인가 같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우리 집 마당 귀퉁이에 매여져 있던 낡은 그네 위에 앉아, 음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게 무슨 자장가 같은 걸 읊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반가운 생각에 달려가면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그네 아래로 힘없이 내동댕이 쳐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이 깬 새벽엔 목구멍으로 덩어리 같은 게 치솟아 결국엔 호흡이 가빠질 만큼 울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난 잠이 깼고 어둠 속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그를 보곤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놀라며 다가와 나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술냄새가 났다. 그렇게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 만큼 울고 나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는 팔베개를 해주며 자장가인지 무언지 모를 청승맞은 노랠 불렀고 나는 견디다 못해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아마 내가 잠든 후 그도 울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올 즈음 우린 제법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몇 통의 편지와 몇 번의 선물을 보내왔다. 그러는 동안 2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는 한국에 교수 자릴 얻어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곧 귀국하리라는 엽서를 장갑이 붙은 목도리와 함께 보내왔다. 내가 그의 귀국소식을 이모에게 알리자 이모는 나를 볼 때마다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전전긍긍하더니 일주일쯤 지난 뒤,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서은아!"


그녀는 나를 부른 지 삼십여 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말도 없이 연거푸 이름만 불러댔다. 아마 쉰 번쯤 불렀을 것이다.


"네."


난 쉰 번쯤 대답했다. 그리고 이모는 쉰한 번째 한숨을 쉬었다. 


"저으기, 그 아저씨… 미국에 사는…"


난 고갤 끄덕였다. 1분만 더 지체하면 졸 것 같았다. 


"네 아빠야. 네 친아빠… 죽은 게 아니고… 네 엄마랑 이혼하고 미국에 사느라 니가 태어난 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엄마가 죽고 나서야…."


이모가 눈물을 훔치며 말을 멈추었다. 


"이 얘길 들으면 충격받을 줄 알지만, 알 건 알아야 하니까."


이모는 그 얘길 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 듯 콧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나를 살폈다. 


" … …."


이모의 기대와는 달리 그리 충격을 받거나 하진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개구리 뱃속을 해부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뭐, 그런 류의 생소함만을 잠시 느꼈을 뿐이었다. 


"괜찮니?"


이모가 물었다. 


"끝이에요?" 


내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이모의 표정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내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그 책임이 누군가에게 전가되는 것처럼 이모는 내 충격을 대신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그래."


이모의 일그러진 표정을 뒤로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화가 났다. 물론 그건 그가 그동안 나를 방치해 두었다는 등의 감상주의적인 것에 기인하는 분노가 아니라 이모가 이제 와서 굳이 그 사실을 밝힌 의도 때문이었다. 난 창고에 넣어둔 슈트케이스를 꺼내 짐을 쌌다. 이모가 내게 이별을 고하기 전에 내가 아빠에게 가겠다 말하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난 그때까지 아버지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 필요한 존재들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콜라병을 받은 부시맨처럼 말이다. 이모의 집에 얹혀 지내던 얼마간을 지켜보건대 아버지란 돈을 벌어오는 대가로 호텔에서처럼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며- 굳이 차이를 설명하자면, 호텔에선 방값이 모자라면 쫓아내지만 이모는 잔소리를 해댄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간간히 먹을 것을 사 오듯, 아이들 역시 그를 위해 간간히 재롱을 떠는 아주 기묘한 존재였다. 또 하나, 온 가족의 대표 격으로 세워지는 대신 이웃과의 분쟁에서 사투를 벌여야 하는 군사적 임무도 있는 듯했다.  그게 내가 관찰자 입장에서 본 형태론적 가치였다. 나는 그와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이모부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는 나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너를 위해서 뭐가 가장 좋을지 생각해볼게." 


예상대로 이모의 입에서 '너를 위해서'라는 선제적 이별어가 나왔고 나는 싸놓은 짐가방을 들이밀었다. 


"… …!"




"무슨 일이 있거든 이모에게 전화해."


그의 차가 나를 태우고 출발하자, 이모가 손을 흔들며 눈물을 훔쳤다. 나는 이모를 향해 짧은 손인사를 하고 창밖 멀리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그가 물었다.


"뭐가요?"


내가 대답했다.


"이모 가족이랑 헤어져서 섭섭해?"


그가 물었다.


"아뇨. 그냥 … 어딜 가나 피곤한 건 마찬가지라서 그래요."


그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듯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음악을 틀었다.


"차이코프스키"


내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그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엄마가 늘 듣던 곡이에요."


"아! 그랬다, 참."


그가 반가운 기억을 떠올린 것 마냥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날도 이걸 듣고 있었어요."


"그날?"


"엄마가 떠났던 날요."


… ….

그는 가만히 음악을 껐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에 오디오 위를 돌고 있던 음반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더 이상 말 걸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는 나의 바람대로 침묵했고 나는 엄마와 살던 그때처럼 조용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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