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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안메아 Oct 02. 2024

그녀는 집을 떠나고

4. 하나의 사실, 두 개의 거짓

 

그의 차가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방학이라 아침부터 골목길을 점유하고 야구를 하던 아이들이 골목 한쪽으로 몰려 섰다가 차가 지나가자 다시 흩어졌다.


"다 왔다."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쇠창살을 엮어놓은 듯한 검은 대문가로 둥글고 매끄러운 돌들을 차곡히 쌓아 올린 담장이 햇살에 반들반들하게 윤을 내고 있었다. 아담한 크기에 아이보리 빛깔의 돌을 박은 2층집이었다. 그의 차가 돌담 곁에 멈춰 섰다.


"자, 우선 짐부터 들여놓자."


그가 트렁크에서 내 짐들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빠!"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동시에 대문이 열리고 여자아이 하나가 뛰어나왔다.


"아빠가 시키는 건 다 해놨니?"


"응."


커다란 리본머리띠를 하고 프릴이 달린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는 입술을 오므린 채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희원아, 인사해. 서은이 언니. 아빠가 얘기했지? 앞으로 우리랑 같이 살 거라는…."


… …!


"서은아! 얘는 희원이."

 

그는 희원이라는 이름을 알려준 뒤 그 아이에 대해 설명할 말을 찾는지 아니면 망설이는지 뒤가 잘려나간 듯 갑작스레 말을 멈추었다. 기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그는 왜 푸들 같은 아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쾌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라일락꽃 향기가 나."  


내가 말했다.


"그래서 그 희원이는 누군데?"


그녀가 물었다.


"아빠의 여자친구가 버리고 간 딸."


내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니네 아빠 딸이 아니란 거야?"


"유전적으로는. 아빠의 여자친구가 잠시만 봐달라고 맡겨두고선 종적을 감췄어."


"딸을 맡겨놓고 종적을 감췄다고? 죽기라도 한 거야?"


그녀가 놀란 듯 다시 물었다.


"희원이는 그러길 바란다고 했어. 하지만 사실이 아냐."


"뭐가 사실이 아니란 거야?"


그녀는 당혹감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하나는 사실이고 두 개는 사실이 아냐."


내가 대답했다.

 

"다행이네."


안도의 짧은 한숨에 이어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말했다.




나는 그날을 떠올리면 그 어떤 것보다 라일락 향기가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그의 집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라일락꽃 때문일 것이다. 그가 '얘는 희원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리본 묶은 푸들 같던 희원 대신 그 뒤로 보이는 나무를 보았다.


"저건 이름이 뭐예요?"


그는 내 손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라일락나무."


그 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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