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렌 Jun 09. 2024

내가 나를 속였다

한 달 전 강점 코칭을 받은 뒤, 내 속의 나를 발견했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싶은데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시작도 하지 못하는 나를 바꾸려 했다.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이 기회가 없어.'라는 나만의 잣대에 눌려 글에 나를 쏟아붓고 혼자 지쳐버리는 참사를 줄이고 싶었다.


한다고 해놓고 매주 꾸준히 하지 못했다. '나는 듣는 걸 좋아해'라는 프레임을 나에게 씌웠는데, 실은 말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제한적이고 긴 글을 뽑아내야겠다는 목표가 있으니, 내 욕구를 갯지렁이가 물아래로 숨듯 나를 아래로 밀어버렸다.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질문으로 유도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올라가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커피챗을 가장한 인터뷰가 아니라, 인터뷰를 가장한 1:1 대화였다.


이처럼 나를 속이는 발화 문장이 2가지 더 있다. "결혼 안 할 거야."와 "요리하기 싫어."였다. 최근 3년간 "넌 결혼하고 싶어?"와 "아이 낳고 싶어?"를 주기적으로 서로 물어봤다. 꽤 웃기게도, 나는 한 달 주기로 답변이 바뀌었다.


하고 싶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가 대답이 무아지경이었다. 한 달 전 나의 대답은 이랬다. "결혼하면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잖아. 나는 지금 이대로 살아도 좋아. 그냥 혼자 살래." 그런데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 말하고 주말마다 애인이 아닌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가 외로워한다는 걸 알았다. 혼자 할 줄 아는 영역에서만 놀면서 괜찮다고 날 다독인 것이다.


대답은 바뀌었다. 퇴근 이후에 가족들끼리 모여 하루를 이야기하는 행복을 즐기고 싶어. 그런데 이것만 바라보기엔 현실이 두려워. 지금 내 가족도 지키지 힘든데, 상대의 가족까지 신경 쓰려니 버거워. 난 이 문장들을 짧게 '안 한다.'라고 말했던 거다.


두 번째. 식단을 챙긴 뒤, 요리를 싫어한다는 문장의 의미가 달라졌다. 채소를 썰고 콩을 삶고 불 앞에 있는 것이 귀찮다고 차라리 음식 사 먹을 돈을 벌겠다고 했는데, 실은 시간에 쫓겨 이 행위에 내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피했던 거였다. 결국 싫다가 아닌, 하고 싶은데 지금은 여유가 없다가 맞는 표현이었다.


다른 이에게 나를 나타내면서 말했던 것이 순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일단 생각난 대로 내뱉은 거다. 그 문장의 의미가 나에게 해당되는지는 혼자서 확인해봐야 할 문제다. 내가 나를 안정시키기 위해 나를 속인 문장이 얼마나 더 많을까.

이전 29화 반대의 미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