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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10. 2024

바깥에서 퍼 나르는 감정

근 한 달간 배가 찢어지게 웃은 적이 없다. 더 슬프게도, 오늘은 웃음소리를 내고 웃지 않았다.


몇 달 전까진 이런 날이 올 때마다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만 쳐다봤다. 날 자지러지게 웃겨줄 것을 찾아내, 하루를 허탕 친 거 같은 생각을 버리고 싶었다. 내 하루를 평가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과 더불어 웃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원하는 걸 찾긴 어려웠다. 무언가 고달파하며 한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내가 한심하면서도,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웃고 싶은 내 감정을 앞세우고, 결국 다음 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는 날이 늘었다.


"너처럼 웃기기 쉬운 애 없어. 왜 웃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헤프게 웃는 편이다. 어떤 사람이 던진 말 자체에 웃는 게 아니라, 상대가 말을 내뱉기까지의 사고과정을 상상하는 게 재밌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으려면 사람들과 말을 자주 해야 하는데, 갈수록 효율을 따지고 필요한 말만 하게 되니 웃음은 자연스레 줄었다.


퇴근/하굣길 대중교통 안에서 핸드폰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다. 하루 반나절을 보냈는데 마땅히 집에 들고 갈 게 없어서, 우물에서 물을 퍼 나르듯 화면 속에서 감정을 훔치려 들었다.


나에게 이런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내가 잘 웃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얼굴의 동태가 느껴지지 않을수록 내 주름은 옅어졌지만, 이것이 나잇살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오히려 파이길 바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원동력이 근성장이 아니라 감정성장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맞았다. 몸을 쓰면서 무표정이었던 나를 잊으려고 했다.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게 아니면 난 스탠드 하나 켜놓은 방에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헤드셋으로 노래를 들으며 술집 거리를 혼자 걸어 다녔을 거다.


나이가 들수록 씁쓸함, 떨떠름함 같은 한숨 하나로 나타내기 어려운 속마음이 생겨나는데, 아직까지도 이걸 잘 채우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몸을 쓰는 게 좋다고 하지만, 요즘은 몸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감정을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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